즐거운 인생
필자와 예전부터 인연이 있는 R사장님은 자바 시장에서 의류 도매업을 운영하고 계신분이다. 미국에 이민 오신지가 20년 정도 되었고 처음 봉재 업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여성의류 도매업으로 이 분야에서 꽤나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분이고, 지금까지 오직 한 분야에 매진해 오셨다. 필자가 많은 사람들을 상담 하다보면 여러 유형의 성격을 지닌 분들을 실로 다양하게 만나게 되는데 이분은 매우 긍정적이고 낙천적 이며 어떤 어려운 상황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 하며 넘기는 특별한 재주를 지닌 분이다. 긍정적인 성격도 너무 긍정적인 성격이다.
이분은 충청도 천안이 고향이신 분이다. 필자와 동향 이어서 이런저런 고향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상담자와 피상담자가 아닌 고향 동네 사람으로서 친근감을 느끼게 된 분이기도 하다. 이분은 최종학력이 중학교 중퇴다. 하지만 자신의 ‘짧은 가방끈’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철도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시게 되는 바람에 장남인 이분이 올망졸망 주렁주렁 달린 동생들을 어머니와 함께 먹여 살려야 했기에 학교를 다닐 형편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어린나이 여서 취직도 쉽지 않았지만 친척 어른의 소개로 먼 친척뻘 되는 분의 가죽공장에 겨우 취직이 되었다. 이 공장은 소가죽을 약품처리 해서 지방질을 빼내고 가죽을 두둠질 하여 재단해서 납품하는 공장 이었는데 약품이 너무 지독해서 늘 골치가 아팠고 장갑을 끼고 일을 하지만 손은 독한 화공약품에 헐어 늘 쓰라리고 고통스러웠다 한다.
이런 작업 환경이다 보니 일하러 왔다가 2-3개월이면 다 그만두고 마는데 이분은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3년 이상을 일했다. 어린나이여서 마땅히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작업 후 남겨지는 수구레(가죽에 붙어있던 힘살 같은 찌꺼기들 이름)를 얻어가서 식구들과 삶아서 먹을 수 있어 식생활에도 보탬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열악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R군은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낙천적 이여서 공장 사람들의 신임을 받아 인기가 좋았고 결국 사장님도 이런 R군을 믿고 경리부분과 거래처 수금하는 일을 맡겼다한다. 일이 끝나고 저녁에는 경리학원을 다니며 부기를 배우고 거래처 수금은 밤을 세워서 라도 차질이 없게 해내고 정직한 성격대로 일원짜리 한 장 차이가 없으니 전에 경리와 수금 일을 담당했던 사람이 그동안 얼마나 나태하고 많이 해 먹었는지가 단박에 표시가 났다. 이러니 사장의 신임은 깊어만 갔고 10여년 후 작은 가죽공장을 차려 독립할 때 사장님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다. 군대는 생계 곤란자로 하여 6개월 근무로 간단히 끝낼 수 있었고 20대 중반의 어엿한 젊은 사업가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사람이 성실하여 여기저기 혼처가 많이 들어왔고 그중에 상고를 졸업하고 모 은행에 근무 중인 여성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R사장님의 다섯명의 동생은 R사장의 희생과 헌신 속에 모두 대학을 졸업했으며 다 짝을 찾아 결혼을 시켰다. 다섯명의 동생들을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다 결혼까지 시키는 데에는 R사장님의 남다른 헌신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대견한 일을 다 해내면서도 R사장님은 결코 자신을 한번도 내세운 일이 없고 동생들이 스스로 미안해서 아르바이트라도 할라치면 ‘그런 쓰잘데 읍는 생각 말고 니는 그저 공부만 하는겨! 고생은 내가 다 헐텐께 니는 아무 생각 멀고 공부만 허면 되는겨!’ 라고하며 동생들을 격려했다. 훌륭한 형님이자 오빠였던 것이다. 항시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다보니 ‘소문만복래’ 라고 여러 가지 행운이 R사장님에게 다가왔다. 근검절약하여 틈틈이 모은 돈으로 천안과 서산, 아산 일대에 여기저기 논, 밭, 임야 등을 사두었는데 ‘서해안 개발바람’이 불면서 땅값이 열배 스무 배씩 올라 갑자기 돈방석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런 행운을 R사장님은 혼자 누리지 않았다.
동생들 에게 이런저런 명목으로 살림밑천을 뚝 뚝 떼어주니 세상에 이런 형이 없었다. 부창부수라고 착한 마누라도 R사장님 하는 일에 적극찬성하고 나서니 온 집안이 화목하고 단란하여 남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이러던 중 미국에 이민 와 살던 막내아우가 적극 권하여 미국에 와 살게 되었다. 아이들 교육문제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내린 결론이었다. 꽤나 많은 나이에 늦게 온 이민이지만 R사장님의 근면함은 변하지 않아 막내 동생이 하던 봉재 공장부터 일을 배워 20여년 꾸준히 특유의 뚝심과 근면함으로 이곳 미국에서도 또, 한번 의 성공을 이루어 내게 된다. 한국에 꽤나 재산이 있어 미국에 이민 올 당시에는 그냥 즐기며 살아도 될 정도의 재력가였지만 몸에 밴 부지런함 으로 이루어낸 또 하나의 쾌거였다.
사업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싸울 일도 많이 생기는데 R사장님은 결코 누구와도 성질을 내며 싸워본 일이 거의 없다. 돈 떼먹고 도망간 거래처에 대해서는 “아이구 참 그양반도 거시기 참 급혔나 봐유~” 라고하며 오히려 상대방을 걱정해 주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어서 그런 여유가 나온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이 아니니 R사장님의 천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번은 돈 떼먹고 도망간 거래처에 대해 연관이 되었던 이런저런 사람들이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해대며 그들을 저주하자 R사장님 왈 “똥 싸고 밑 안 딱으면 을마나 찝찝혀유~? 그 사람도 이렇게 똥을 자베기로 싸놓고 밑 딱을 새도 없이 바지춤 쥐고 도망쳤응 께 똥구멍이 아릴정도로 평생 찝집할 뀨!” 이러고서는 껄껄 웃었다 한다. 이 소리에 성내던 사람들도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니 우스개소리도 곧잘 해서 사람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항시 웃고 사는 R사장님 필자가 상담을 하며 행복하시냐고 묻자 “이렇게 하루 세끼 따신 밥 묵을 수 있고 몸 아픈디 없는디 행복안하면 뭐가 행복인디유?” 라고 하신다. 긍정은 긍정을 낳고 부정은 부정을 낳는다. 세상만사 모든 것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희망을 품으면 모든일이 술술 풀리지만 매사 모든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짜증을 내며 바라보면 만사가 꼬이게 되는 것이다. 즉,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습관을 키우자!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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