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오빠들 덕에 살아요!

2021.06.26





                  오빠들 덕에 살아요! 


 필자의 단골손님 이신 박 여사님은 팔자 박복하여 결혼을 세 번이나 하였으나 모두 실패하고 현재 독신이신 분이다. 여기에 더하여 어찌된 영문인지 세 번의 결혼생활 속에서도 한 번도 임신이 되지 않아 무자식 팔자이기도 하다. 어려서의 생활은 유복했다. 부모님 모두가 의사 분이셔서 꽤나 풍족한 생활환경 속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어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몇 대 없다는 명품 피아노를 가지고 피아노 연습을 할 만큼 부모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 음악가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여러 번의 결혼 생활의 파경 속에서도 그나마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의지가 되어 생활에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는 의지처가 없었다. 허나 ‘사람은 다 살게 되어있다’는 말처럼 처음 필자가 이런 고립무원인 박 여사님 팔자를 보았을 때 관살이 왕성하고 이를 억제할 식신상관이 없고 다만 비견 및 겁재가 관살과 합이 되어 관살의 예리한 기를 완화시켜주고 있으니 남편이나 자식에게 의지할 수는 없겠으나 다행히도 형제 덕이 많으니 이에 기대하며 살아갈 수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왈 “현재 어디에다가도 의지할 곳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라고 보여 집니다. 귀하게 자라 신분이 애정에 여러번 실패하시고 ‘눈 덮인 들판에 홀로서서 눈을 맞고 있는 소나무처럼 아름다우나 고독한 형상’으로 보입니다. 허나 다행히도 형제 운은 다복하여 우애 있는 형제들의 보살핌에 의지하고 살아갈 수는 있겠군요!” 라고 하니 이 분 그 큰 눈이 갑자기 빨개지며 눈물이 그렁그렁 해진다. 이분은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났다. 전기(前記)한대로 유복한 집안에서 3남1녀 중 외동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사주팔자 속 남자 복이 박복하여 세 번씩이나 결혼에 실패한다. 그 인생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 지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무튼 이런 인생의 풍파 속에서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변함없는 부모님의 사랑과 오빠들의 따뜻한 배려와 위로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시고 나자 너무도 허전하고 외로워 세상을 살고 싶지 않았지만 오빠들에 의지하며 마음을 달랬다. 어려서 부터 유난히도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는데 형제간은 물론 이지만 하나뿐인 여동생인 이분에 대한 오빠들의 배려는 거의 전적이다. 큰 오빠는 모신문사에 근무하는 언론인으로 정 재계에 많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유명 인사였고, 둘째 오빠는 유명 성형회과 의사로 강남에 개업을 하고 있었고 돈에 대한 감각이 좋아 강남에 빌딩은 몇 채 가지고 있을 정도의 재력가였다. 막내 오빠인 셋째오빠는 변호사였는데 모 법원부장 판사를 퇴직하고 개업 중이였다. 이런 든든한 오빠들이 신세 가여운 동생을 후원했다. 원래 박 여사님은 미국에 연고가 전혀 없어 미국에 건너와 살 이유가 없었으나 세 번째 결혼했다 이혼한 남편이 모기업체 미국지사장으로 근무했던 관계로 잠시 미국에 함께 나와 있다가 이혼을 하게 된 관계로 어정쩡하게 LA에 머물게 되었지만 그래도 몇 년 머물면서 피아노 레슨도 하고 음악계 인사들과 교류도 있어 갑자기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가기에도 어려움이 있어 사실 가지도 못하고 머물 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고민을 하다 필자와 인연이 된 것이다. 


박 여사님 왈 “선생님 말씀대로 저는 부모형제 덕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야 어차피 두 분 다 돌아가셨으니 지금은 형제 덕이 있다고 해야겠군요. 사실 오빠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저는 생활을 해 나갈 수가 없었을 겁니다. 결혼에 몇 번 실패하고 나서 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병든 육체와 옷 몇 가지가 전부였습니다. 지독히도 남자 복이 없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지요. 세상이 깜깜하고 막막할 때 내손을 잡아준 것은 오빠들 이었습니다. 특히 막내오빠는 제가 이혼하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하던 일도 다 접어두고 급하게 미국에 건너와 이런저런 역성을 들어주고 위로도 해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나이차이가 제일 조금 나는 막내오빠와 더 친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피아노레슨을 한다고 해도 수입이 생활비에는 턱없이 모자란데 오빠들이 매달 번갈아가며 보태주시는 돈으로 보충해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고민이 생겼습니다. 얼마 전에 셋째 언니가 갑자기 저에게 전화를 해서 ‘오빠에게 돈 꿔 준일이 있냐?’ ‘왜 정기적으로 아가씨한테 돈이 빠져 나가냐?’ ‘오빠에게 꿔 준돈이 없다면 예전에 맡겨놓은 돈이라도 있는 거냐?’ 하며 따지듯이 묻더라고요. 아니라고 했더니 저에게 하는 말이 ‘큰 형님과 둘째형님(큰며느리, 둘째며느리를 지칭하는 듯)과도 의논을 해 보았는데 두 분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가씨에게 불만이 많더라고요. 돈이 필요하면 정식으로 언니들에게 부탁을 해야지 왜 여우처럼 오빠들을 꼬셔서 돈을 빼 가느냐? 하면서 불만들이 많으세요. 내가 나서서 이러는 것은 아가씨가 미워서가 아니라 집안 여론이 이러니까 아가씨가 참고하라고 하는 이야기예요.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라고 하지 뭡니까? 


저 때문에 오빠들 가정에 불화가 생기게 생겼으니 어쩌면 좋지요? 오빠들 도움 없이는 당장 생활대책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죠?” 라고 하시며 울상을 지었다. 필자가 가만히 박 여사님의 운을 살펴보니 쪽박 차고 길가에 나가 앉지는 않을 팔자였다. 필자 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일을 계기로 아마도 조만간에 오빠들 사이에 의논이 오갈 것 같고 동생분의 생계 대책을 힘을 합쳐 세워 주실 것으로 보입니다.” 라고 하니 걱정으로 잔뜩 찌푸렸던 박 여사님 인상이 조금은 밝아지는 듯 했다. 형제 복 이라도 남아있어 정말 다행인 한 여자분 과의 상담이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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