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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운명을 바꾼 여권분실

2021.11.15


  

                         운명을 바꾼 여권분실 


 어느 정도 나이가 드신 분 들 이라면 1967년 3월22일 북한 조선중앙 통신사 부사장(차관급) 이수근씨가 판문점을 통하여 극적으로 탈출, 남한에 귀순한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또한 이이가 3년 뒤(1969년 1월 27일) 콧수염과 가발로 변장한 뒤 위조여권을 이용하여 처조카 배경옥씨와 남한을 탈출하려다 월남 싸이공 탄손누트 공항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붙잡혀 온 뒤 위장간첩 혐의로 즉각 교수형에 처해진 것도 기억할 것이다. 허나 2008년 12월 29일 서울 고법에서 이수근 위장간첩 사건은 조작된 간첩사건으로 판결 되었다. 북한에서 숙청위기에 몰린 이수근은 남한에 오면 큰 환대를 받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주로 반공 강연이나 강요하고 유치한 반공연설 원고를 제대로 읽지 않는다고 툭하면 구타당하고 지나친 미행과 감시 등으로 괴로워하다 북한이 아닌 제 3국으로 탈출하려다 실패한 사건임이 밝혀진 것이다.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 김형욱은 이수근의 탈출을 모르고 있다가 후에 이를 알고 무척 당황했었다 한다. 당장 모가지감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월남에 잠시 기착한 비행기에서 극적으로 이수근을 체포하자 자신의 과오를 덮으려고 이수근을 위장간첩으로 몰고간 것이다. 즉 이수근이 위장 귀순한 간첩인 것을 알면서도 탈출하게 내버려 두었다가 일당을 일망타진하고 확실한 증거를 잡기위해 일부러 탈출하게 내버려 두었다는 것으로 몰고가 자신의 위기를 기회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래서 서둘러 이수근을 사형시켰지만 (79년 7월2일)꼭 10년 뒤 자신은 후임 중정부장 김재규에 의해 프랑스에서 납치 살해되었고, 그로부터 꼭 10일 뒤 김재규는 10.26(79년 10월 26일)사건을 일으켜 박정희대통령을 시해하고 자신 또한 사형 당한다. 


 결국 김재규가 없었으면 전두환, 노태우도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역사의 고리 중 한 고리만 끊어졌어도 역사는 바뀌었으리라. 아무튼 이 사건과 관련하여 무고한 희생자가 있었으니 이수근의 처조카 배경옥씨다.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윈 배경옥씨는 서울 장중초등학교 6학년을 중퇴하고 경기도 여주에 있는 조부 집에서 농업을 돕다가 외삼촌의 양과자 도매상 종업원으로 일하는 등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후 자동차 정비 및 운전기술을 배워 일하던 중 해외 개발공사에서 시행한 파월 기술자 선발시험에 합격하여 월남으로가 미국 R.M.K회사의 크레인 기사로 일하게 된다. 미국계 회사여서 월급이 무척이나 많아 큰돈을 모아 서울에 집도 장만하고 개인적으로 트럭을 사서 운송업도 하여 젊은 나이에 꽤나 성공한 축이 되었다. 


 누이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키 위해 한국에 잠시 나왔다가 마침 귀순한 이수근을 처조카로서 잠시 만나게 된다. 잠시 왔다 떠나려던 그에게 운명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택시를 탔다가 여권이든 손가방을 깜빡 잊고 내린 것이다. 다른 택시를 잡아타고 탔던 택시를 부랴부랴 쫓았지만 놓치고 말았고 MBC 방송국에 달려가 교통방송에 여권분실을 호소하기도 했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만다. 월남에 급한 사업상 문제가 있었기에 배경옥씨는 비상수단으로 평소 알고 있던 여권 브로커를 만나 위조여권을 부탁한다. 그런데 이 여권 브로커 가 배경옥씨가 준 돈을 다른 곳에 유용하고 차일피일 시간을 끈다. 이때 여권브로커가 제때 위조여권을 배씨에게 건냈다면 배씨는 이수근 사건에 개입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고 있던 중 우연히 이모부 이수근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벌써 외국에 나가있어야 할 배씨가 왜 그러고 있는지를 이수근이 묻자 조카인 배씨는 상황을 설명하고 위조여권을 기다리고 있다고 솔직히 답한다. 이수근은 반색을 하며 그런 길이 있다면 자신의 여권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제 3국에 나가 북한과 한국에 관련된 글을 써서 돈을 벌면 이북에 남겨두고 온 식구들을 빼오겠다는 계획이라고 하며 배씨에게 부탁을 했다. 자신의 이모의 일이기도하기에 배씨는 이것이 큰 죄가 아니라고 판단 이수근에게 가짜수염을 달게 하고 가발을 씌워 사진을 찍은 뒤 사건브로커에게 전달하며 자신의 여권을 재촉하면서 또 하나의 가짜 여권 값을 지불 한 뒤 자신의 가짜여권이 지체되는 이유를 묻자 여권브로커 는 솔직히 자신이 급한 일이 있어 돈을 유용했는데 이번에는 꼭 서둘러 주겠다고 한 뒤 며칠 후 두 개의 위조여권을 가져다준다. 


 이렇게 해서 탈출하려다 잡힌 이수근과 배경옥은 갖은 고문 끝에 간첩으로 몰려 둘 다 사형을 선고 받았고 이수근은 상고를 포기하여 사형집행이 된다. 배경옥은 상고하여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그 후 다시 20년으로 감형되었고 1989년 12월 22일 만기 출소한다. 그사이 가정은 풍지박살 났고, 아내와 당시 네 살짜리 아들, 백일 된 딸과도 영영 이별 이였다. 당시의 살벌한 사회분위기 속에 간첩의 아내와 자식들이 겪은 고초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출소 후에 천신만고 끝에 아내와 연락이 닿지만 아내는 처제를 통해 영원히 인연을 다시 잇지 말자는 대답을 보낸다. 아내는 남매를 데리고 수절했으나 아이들에게 다시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배씨는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얼마 뒤 배씨의 아들이 배씨에게 울먹이며 전화가 왔다한다. ‘보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취지였다. 배씨는 울며 ‘미안하다’소리만 수십 번 할 수 밖에 없었다한다. 


 그 뒤 얼마 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아들이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25세의 젊디젊은 아들이 어렵게 대학을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직까지 되어 다니던 아들이 죽은 이유는 당시 약혼자 집안에서 한미한 집안 출신인 아들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는데 어찌어찌하여 아버지가 돌아 가신게 아니라 간첩 사건으로 평생을 감옥에서 썩다가 출소했다는 사실을 알고 파혼을 통보한데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억울한 옥살이에 억울하게 아들까지 잃은 배씨는 이때부터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2005년 12월 2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사건접수를 하였고 이 위원회가 국가에 재심을 권고하기에 이른다. 결국 배씨는 누명을 벗었고 국가로부터 20억이 넘는 손해배상도 얻어낸다. 어마어마한 큰돈이 생기니 이제야 부인이 다가왔고 딸도 애교를 부리며 배씨를 안아주었다.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랴! 인생은 무상한 것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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