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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대자유인 역산선생

2021.12.10

 



 

                        대자유인 역산선생   


 옛날 뚝섬에는 경마장이 있었고 한강이 가까이 있어 공기도 좋았다. 필자도 옛날 뚝섬 나루터에서 멱을 감던 기억이 있다. 이 뚝섬에다 자리를 잡고 평생 지나가는 행인을 상대로 사주팔자를 보아주다 100세 넘어 훌쩍 떠나신 분이 있으니 이이가 명리학계에서 유명한 역산 선생님이시다. 필자의 스승님과도 인연이 깊으신 역산선생은 자신의 출생을 기억 못한다. 고아로 이곳저곳 눈칫밥 먹으며 떠돈 기억 밖에 없다. 이렇게 떠돌아다니다 어느 스님을 만나 따라가서 삭발하고 중이 되었다. 배고픔에서는 벗어난 것이다. 몇 년간 행자생활부터 시작하여 공부를 하던 중 은사스님이 갑자기 아프시더니 돌아가시고 만다. 죽기 전 은사스님께서 유언하시길 “역산아! 너는 중국에 건너가서 귀한 책을 구하여 중생을 구제해야 하는 命이다. 그리하도록 해라!” 라고 부탁하시고는 먼 길을 떠나셨다. 


혼자 남은 역산은 열반하신 스님을 정성껏 태워드린 뒤 중국으로 향했다. 이때가 30세 때였다. 몇날 며칠을 걸어 압록강을 드디어 건넜다. 걷다가 날이 저물어 다 쓰러져가는 원두막에 들어갔고 지쳐 곧 잠이 들었는데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렸다 한다. “천하의 참된 도는 정직과 진실뿐이다. 중생을 제도하고 저 한다면 사대성인(四大聖人)이 힘을 합쳐야 하나니 공자님과 부처님 예수님과 노자님을 모두 함께 모셔야 그 힘을 얻을 수 있느니라!” 이런저런 당부를 마음속에 깊이 새기다가 잠을 깨었고 원두막 한구석에 버리듯 흩어져있는 종이뭉치들을 보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천문, 지리, 주역, 관상에 관련된 귀한 내용이었다. 잘 수습하여 귀하게 몸에 지니고 발걸음을 돌려 백두산으로 향했다. 백두산에 들어가 10년 작정으로 공부하기로 하고 호구지책으로는 약초를 캐서 팔았다. 


백두산 중턱에 천연동굴을 하나 발견하고 거처로 삼았다. 한 달에 3일만 약초를 캐러 나오고 나머지는 수도에 전념했다. 약초는 지천에 깔려있어 이틀만 캐도 한 짐이 넘었다. 읍내까지 50리가 넘는 거리였지만 힘든 줄 몰랐고 약초를 팔아 쌀도 사고 소금도 사서 돌아왔다. 이렇게 10년을 공부한 끝에 역산은 천문(天文) ‧ 지리(地理) ‧ 주역(周易) ‧ 관상과 수상 ‧ 사주 등을 깨우친 명리(命理)의 대가(大家)가 되었다. 역산은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중생을 제도하는 것에 힘을 다하였다. 항상 정도(正道)의 길만 걸었고, 정당하지 않은 길은 억만금이 생긴다 해도 사양했으며, 정도의 길이라면 목숨이 위협 받아도 겁내지 않았다. 역산은 누구와 대화를 하든지 ‘우주 근본의 원리’와 ‘인생의 근본문제’를 가르쳐 주었다. 세상의 근본이 하늘이므로 하늘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만사만리(萬事萬理)가 빗나간다고 주장하며 하늘을 바르게 알고 하늘의 뜻대로 바르게 살 것을 가르쳤다. 


역산선생은 공부가 깊어 사람의 얼굴만 보아도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그가 무슨 처지에 처했는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히 알 수 있었고,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그의 병에 대해서도 훤히 알아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병에 대한 약은 가정에서 큰 돈 안들이고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주약재로 하는 처방 이었다. 복채(卜債)나 약 처방에 대한 사례는 주면 받고 안줘도 원망이 없었다. 오히려 어려운 사람에게는 복채 받기는 고사하고 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주기도 했다. 운세가 吉할때에는 이 복을 놓치지 않고 잘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운세가 凶할 때에는 이를 최소화해서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사람들은 이런 역산 선생을 존경하고 반가와 했다. 역산선생은 가는 곳마다 병든 자에게는 좋은 약이 되어 주었고, 약한 자 에게는 힘이 되어 주었으며, 슬픈 자에게는 위로가 되어 주었다. 역산선생은 늘 “하늘과 부모님께 충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가장 큰 복을 받는 길이다” 라고 하며 충고했다. 이렇게 10년을 중생구제를 위해 떠돌고 나니 나이 50이 되었고 이제 전처럼 전국을 떠돌아다니기에는 체력이 딸렸다. 역산선생은 아무것도 꺼리길 것이 없는 독신이여서 세속적인 욕심을 부릴 이유도 없었다. 처자식도 없고 부모형제도 없으니 물질적인 욕심을 낼 이유도 없었다. 10년 동안 백두산 동굴에서 수련하고 10년 동안 중생구제를 위해 전국을 떠돌다보니 나이 50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 뚝섬유원지 부근에 터를 잡고 돗자리를 깔았다. 


이 세월을 50년 넘게 하였다. 이러다 보니 수없이 많은 이들의 사주팔자를 보아 주게 되었고 이름이 널리 알려져 찾는 이들도 많았지만 절대로 돈을 모으지는 않았다. 뚝섬유원지 인근의 고아원과 부랑자 수용소가 있었는데 자신의 최소한의 비용 빼고는 죄다 이곳에 기부를 했다. 역산선생은 늘 한손에 막걸리 1통을 쥐고 있었는데 이것이 역산선생의 밥이자 음료수이자 약이었다. 많이 마시지도 않고 상담하다 목이 마르면 한 모금씩 목을 축였는데 이런 역산선생의 기호를 알고 누군가는 막걸리를 몇 되씩 받아주기도 했는바 이때 좋아라하며 웃는 선생의 모습은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을 받은 세 살 난 어린아이의 천진한 모습이었다. 앞니가 죄 빠져 몇 개 안남은 이를 보이며 웃는 모습은 이갈이를 하는 어린아이의 모습 같아 보였다. 


아마도 이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뚝섬유원지 길바닥의 점쟁이노인’을 기억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역산선생은 도인(道人)이셨다. 세상만사에 욕심이 없었다. 한번은 못된 사람들이 장난삼아 기가 막히게 이쁜 창부에게 “저 노인네를 꼬셔서 잠자리에 성공하면 큰돈을 상으로 주마!” 하고 적극적인 유혹 작전을 핀 적도 있건만 역산선생은 그저 “너 참 이쁘다! 이쁘다!”만 연방 외치며 그이상의 욕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다. 또, 한번은 어떤 이가 큰돈을 주며 유혹하기를 어떤 여자와 자신의 궁합이 기가 막히게 좋다고 해주고 “이 남자와 결혼 해야만 큰 행운이 있을것이다” 라고 해 달라 몇날 며칠을 쫓아다니며 애원하고 유혹 했지만 답변은 “야! 이 미친놈아 나쁜 것을 어떻게 좋다고 하냐? 네놈이 남자인 것이 분명한데 너를 여자라고 할 수 있겠냐? 껄껄껄!” 이였다 한다. 세상에서 사라지신 것도 극적이다. 전날까지 항시 그 자리에 있듯 있다가 항상 그 시각에 떠나듯 비틀거리며 자리를 떴고 그 다음날부터 영영 무소식이었다. 이분이 어디서 사는지도 어느 누구도 몰랐다 한다.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지셨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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