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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절대 죽을 때까지 꼭 쥐고 있자!

2021.12.13

 




               절대 죽을 때까지 꼭 쥐고 있자! 


 김할머니는 올해 연세가 90이 되신 분이다. 예전부터 필자와 가끔 상담을 해오셨는데 최근에는 뜸하다가 오랜만에 필자를 찾으셨다. 김할머니는 십여 년 전 남편분이 많이 아프셨을 때 필자를 찾아와 첫 상담을 하신 것이 필자와의 인연이 되었다. 당시 갑상선 암으로 고생하시던 남편분의 회생 여부를 물으셨는데 당시 필자가 할머니 남편분의 운으로 짚은 쾌가 ‘이지대유’의 쾌였다. 이 쾌는 ‘북망산하신건서옥’의 쾌로서 악쾌 중의 악쾌로서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최악의 쾌였다. 그해 8~9월 경 돌아가실 것으로 예측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시고 말았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와 관련된 헛소문도 돌았는데 필자가 돌아가신 분의 돌아가실 달과 날, 심지어 시각까지도 정확히 예측했다고 말이 돌았다. 이야기가 건너건너 가면서 조금씩 부풀려져 생긴 결과였다. 허나 이는 매우 과장된 이야기여서 필자는 이 소리를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고 웃고 말았다. 좋은 이야기 던 나쁜 이야기 던 소식이 돌다보면 어느 쪽으로든 확대‧재생산 되는 것이므로 신경 안 썼다. 김할머니는 할아버지와의 사이에 아들 3형제만을 두셨다. 딸이 없는 것을 돌아가신 할아버지나 김할머니 모두 매우 서운해 하셨었다. 하지만 옛날이나 아들! 아들! 했지 이제는 딸이 더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여성상위 시대가 오고 있으니 딸이 아들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는 세태도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필자도 딸을 키워 보았지만 딸은 키울 때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어 좋은 것 같다. 애교도 많이 부리고 재잘재잘 말이 많으니 집안에 웃음꽃을 피우는 재롱둥이 역할을 한다. 아들놈들은 조금만 크면 대체적으로 통말이 없고 밖에 나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통 근황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 무뚝뚝하고 말이 없으니 그 놈 속을 알 수가 없다. 든든한 맛은 있을지 모르나 키우는 재미는 영~없다. 딸은 나이 먹으면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준다. 옛날이나 딸이 출가외인이지 지금은 다르다. 장가가면 딴 여자의 남자가 되고마는 아들놈들과는 달리 영원한 엄마의 친구다. 엄마는 늙어서 반드시 딸이 필요한 것 같다. 아무튼 김할머니 내외분은 세 아들 모두 잘 키워 모두 출가시켰고 아무 근심이 없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호상이라 할 수도 있다. 


할머니는 이제 든든한 아들 셋에 의지하여 여생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큰아들은 사업을 크게 성공시켜 큰 부자가 되었다. 문제는 둘째와 셋째였는데 형에 비해 아우들은 큰 빛은 못보고 노상 허덕였다. 똑같이 먹이고 똑같이 입히고 똑같이 가르쳤건만 똑같을 수는 없었다. 다들 지 팔자대로 사는 법이다. 둘째 아들도 사업을 했는데 노상 실패를 거듭하여 곤란지경에 처했다. 이때도 김할머니는 필자를 찾아와 상담을 하셨었다. 이때 김할머니에게 필자가 충고한 말이 “절대로 둘째 아드님 돕는다고 돈쓰지 마십시오. 아드님의 현재의 운은 누가 아무리 옆에서 도와주어도 벗어날 수 없는 악 운기에 있습니다. 깨진 독에 물붓기이니 도와주지 마세요. 힘 드시겠지만 눈 찔끔 감고 참아내세요! 도와주어도 나중에 보람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몇 년 뒤에나 반짝하는 운이 있으니 굳이 도와주시려거든 그때나 도와주시던지 하세요.” 였다. 


하지만 부모 맘이 다 그렇듯 초췌한 얼굴로 애를 태우며 동분서주 하는 아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덜컥 남편이 남겨주고 간 적지 않은 목돈을 아들에게 디밀었다. 물론, 돈도 없어지고 아들도 망했다. 막내는 세 아들 중 제일 수완이 없어 작은 회사에 다니며 어렵지만 부부가 근근이 먹고 살았다. 셋째 며느리가 다행스럽게도 생활력이 있어 식당 웨이츄레스로 열심히 일해 아이들 키우며 겨우겨우 생활은 가능해서 다행이었다. 항상 둘째가 문제였다. 이리저리 돈을 다 말아먹고 홈리스 신세가 될 위기에 처하자 둘째 아들은 어머니를 꼬득여 하나 남은 집까지 팔게 했다. “엄마 혼자 사는데 이렇게 큰집이 무슨 필요가 있어요? 집 관리하시느라 노인네 힘만 부치지! 그러지 말고 이집팔고 작은집하나 사서 나랑 같이 살아요! 아들들이 있는데 노인네 혼자서 무슨 청승 이예요?” 어머니가 큰 집 관리하며 애쓰는 게 너무 안타까운(?) 효자는 몇날 며칠을 설득하여 대궐같이 큰집을 팔고 적당한 집을 사서 자기이름으로 등기하고 남은 돈으로는 사업에 투자했다. 


김할머니는 둘째 아들과 살기 시작했다. 헌데 이제 아무 이용가치가 없는 시엄마가 미워 둘째 며느리는 노상 구박을 해대었다. 견디다 못한 김할머니는 첫째 아들네 집으로 갔다. 그래도 믿을 건 역시 장남 밖에 없었다. 장남은 “제가 장남인데 당연히 제가 모셔야죠! 둘째네 집에 사시는 게 저도 그렇게 마음이 좋지는 않았어요” 라고 하며 어머니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허나 큰며느리 태도는 무척이나 쌀쌀했다. “장남이라고 어머니가 저희에게 해주신 게 뭐 있어요? 아버님이 물려주신 돈이며 집은 몽땅 큰 도련님께 다 주시고서! 어머니는 양심도 없으세요? 그래도 명색이 장남인데 그 돈 큰 도련님 주시고 집 팔아 큰 도련님 다 주실 때 저희하고 상의한 번 해보셨어요? 왜 아쉬울 때만 장남을 찾아요?” 이 소리를 옆에서 들은 장남은 펄펄뛰며 “이 여편네가 어머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당신 그것밖에 안 돼?” 하며 소리치자 “뭐? 내가 틀린 말 했어요?” 라고 맞받아치며 꿍쾅 거리며 부부싸움을 해댄다. 


‘애고~ 내가 여기 있다 보면 이것들 이혼 시키겠구나’ 놀란 가슴에 짐 보따리 들고 막내네 집으로 간다. 방 2개짜리 APT 에 부부와 세자식이 사는데 김할머니 주무실 곳이 없다. 안방을 내주고 소파에 쭈그리고 자는 막내아들이 안쓰러워 가시방석이다. 김할머니 필자의 손을 붙들고 우신다. 눈물을 뚝뚝 떨구며 “아이고 법사님 제가 아들이 셋인데 갈 곳이 없어요! 양로병원에는 죽어도 들어가기 싫고! 제가 법사님 말씀을 안 듣고 이 꼴이 됐어요. 전에 왔을 때 그렇게 집 팔지 말라고 하셨는데 결국 이 꼴이 됐네요. 어쩌면 좋아요 법사님!” 필자의 어머님 연배이신 김할머니의 우시는 모습에 가슴이 뻐근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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