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화산기우객 수대일지화(花山騎牛客 頭戴一枝花)

2022.03.21

   



           화산기우객 수대일지화(花山騎牛客 頭戴一枝花) 


 안동사람 김치(金緻)는 조선선조 때 사람으로 벼슬이 감사에까지 이른 이다. 젊은시절 중국을 다녀올 기회가 있어 그곳에서 최고로 이름난 역술가를 찾은 일이 있었다. 이사람 저사람 하두 말이 많으니 호기심에 들른 것이다. 역술가의 집 앞은 앞날을 물으러 온 이들로 북적였다. 한참이나 순서를 기다린 끝에 역술가와 마주했다. “내 운수가 어떠하겠소?” 김치가 물었다. 역술가는 이리저리 쾌를 짚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김치는 넓은 중국 땅에서 제일 이름을 날리는 역술가를 대한터라 다소 긴장이 되어 무슨 말이 나올지 초조하였다. 역술가는 아무 말 없이 달필로 종이에 두 마디의 글을 적어 주었다. 받아보니 화산기우객 수대일지화(花山騎牛客 頭戴 一枝花)라 적혀 있다. 


“화산기우객 수대일지화? 꽃 핀 산중에 소를 탄 나그네요, 머리에 한 송이 꽃을 이었도다?” 무슨 뜻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글귀였다. “이것이 나의 운수란 말이요?” 라고 묻자 역술가는 무뚝뚝하게 “그렇소” 라고 짧게 답한다. “무슨 뜻인지 도대체 모르겠소이다. 무슨 뜻이요?” 라고 재차 물으니 “장차 알게 될 것이요.” 라고 답하곤 더 이상 묵묵부답이다. 김치는 이글귀의 뜻이 의아하고 무척이나 궁금했으나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귀국해서도 늘 그 글귀가 궁금하여 그 뜻을 이리저리 가늠해 보았지만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짜증이 솟구쳤다. “그놈의 점쟁이가 하두 유명하다하여 찾아갔더니 괜한 짓을 했어! 아는 척 하지만 알기는 무엇을 알겠어. 그저 아리송한 글을 써주어 그 자리를 넘겼을 터이지! 괘씸한 점쟁이 같으니 쯧쯧쯧” 그리고는 이일을 잊어버렸다. 


그 후 김치는 안동부사가 되었다. 안동부사로 있을 때 심한 학질을 앓았다. 이런저런 약을 수소문해 구해먹고 여러 날을 고생한 끝에 겨우 회복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재발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더더욱 긴 날을 더 심하게 고생을 하고서야 겨우 회복이 되었다. 이후로는 툭하면 학질을 앓게 되었다. 김치 스스로도 “이렇게 여러 번 학질을 앓는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였고 주위 사람들도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여러 가지로 걱정해 주었다. 즉 무슨 약을 쓰면 좋다느니, 점을 치라느니 또는 무슨 비방을 해보라는 등 가지가지 여러 방책을 권유하였다. 김치는 번거롭지만 당장 자신이 너무 여러 번 학질을 앓는데 진력이 나서 시키는 대로 모두 골고루 해 보았으나 이런저런 방법이 모두 효과를 못보고 계속 학질을 앓았다. 그러던 차에 어떤 이가 권하는 방법이 있었다. “학질을 떼는 데는 아주 특효인 방법이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소리도 아주 진력이 나서 탐탐치 않게 쳐다보니 “다름이 아니고 소를 타고 다니면 학질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라고 한다. 


김치는 기가 막혀 “허, 그게 무슨 실없는 소리요.” 라고 하여 피식 웃으니 “웃을 일이 아닙니다. 흔히 소를 타고 다니면 학질이 떨어진다고 백성들 사이에는 널리 알려진 방법입니다. 효과를 본이도 많다던데요? 혹시 압니까? 혹여나 효염이 있을지도 모르니 한번 시험해 보시지요.” 라고하며 적극 권한다. 김치는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생각으로 유람삼아 소를 타고 이 고을 저 고을로 구경을 다녀보았다. 소를 타보니 말을 타고 다니는 것보다 풍류가 있었다. 마침 봄철이여서 산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타고 만발하였고 소걸음으로 천천히 한가하게 여유를 가지고 구경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김치는 소를 타고 시조를 읊조리며 “허허 산에 꽃이 만발하고 이렇게 소를 타고 다니며 꽃구경하는 것도 그럴듯하구나.” 라고 하며 즐거워하였다. 그러나 소를 타고 다녀보았지만 이 역시 소용이 없었다. 


김치는 또 심한 학질에 걸려 어느 고을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 고을 원님은 사색이 되었다. 높으신 양반이 자기 고을에서 쓰러지셨으니 너무 황망하여 급히 넓고 깨끗한 방으로 모시고 기생들을 시켜서 정성으로 구완하게 하였다. 의원을 시켜 약을 다려서 정성껏 먹이는 조치도 물론 따랐다. 어느 날 김치는 끙끙 앓다가 이마가 선뜻하여 눈을 떴다. 한 기생이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마를 짚어보고 있었다. 이에 잠을 깬 것이다. 옆에는 약사발도 놓여 있었다. 얼굴을 보니 갸름한 얼굴에 수심을 띄고 지켜보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정이 갔다. 이마까지 짚어보며 걱정해 주는 폼이 오래 정이 들어 지내온 사이인양 느껴졌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원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올해 네 나이가 몇인고?” “예, 스물하나 이옵니다.” 목소리도 은쟁반에 구슬 굴리듯이 청아하고 아름다웠다. 


객지에서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김치는 기생을 쳐다보며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의 병구완을 받으니 금세 기운을 차리고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며 속으로 ‘일어나거든 이 기생에게 치사를 단단히 해야겠다. 옳지 이곳 원에게 청을 넣어 소실로 아주 데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남자들의 속이란 다 이렇다. 아파 죽겠으면서도 나이 어리고 이쁜 기생을 보니 자신이 치병중이란 사실도 잠시 잊고 흑심이 생긴 것이다. 김치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니 “일지화입니다.”라는 답을 한다. 김치는 너무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뭐라고?” 김치의 놀라는 모습에 잘못 알아듣고 그러는 줄 알고 “예! 한가지 꽃이란 뜻으로 일지화라 합니다.” 라고 설명까지 한다. “허! 이럴 수가!” 김치는 기가 꽉 막혀서 두 눈을 굳게 감았다. 


옛적 중국 땅에서 역술가가 써준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화산 기우객 두 대 일지화” 그가 예측한 대로 과연 자기는 소를 타고 경계 구경을 다니러 나섰으니 꽃동산에 소를 탄 나그네였고, 지금 일지화라는 이름의 기생이 머리맡에 앉아 이마를 짚고 있으니 말하자면 머리에 한 가지 꽃을 인것이나 다름없었다. “휴우! 언젠가 알 날이 있을 것이라고 하더니 이제야 알겠구나... 그 글귀는 결국 내가 죽을 날을 미리 알려준 것이었구나!” 김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십 년 후에 있을 자신의 행태에 대해 이렇게 소상하게 짚어낸 그 역술가가 새삼 존경스럽고 놀라웠다. 김치는 이일이 있은지 며칠 지나지 않아 결국 숨지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독좌문견일기(獨坐聞見日記)에 전하는 실제 이야기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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