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 (理判 事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그때 내리는 수많은 결정에 의해 인생의 항로가 180도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사업을 시작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하는 사업을 접어야 하는지! 아니면 좀 더 버텨 보아야 하나.. 이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동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등등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갈림길에서 결정에 앞서 많은 번민과 갈등에 놓이게 된다. 그 수많은 결단에 의해 우리 인생이 디자인 되고 틀을 갖추게 된다.
인생이라는 것이 어차피 이런 결단들의 결과에 의해 성공한 인생, 실패한 인생으로 나뉘게 된다. 이러한 큰 결단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닥치는 작은 결단에 의해서 도 인생이 달라 지기도 한다. 저녁에 친구와 만날까 말까하는 작은 예를 들어보자. 친구를 만나는 장소에서 이성을 만나 그 인연이 부부의 결실로 이어 지기도 하고, 그 장소에 가지 않음으로 해서 부부의 연을 놓치기도 하며 나쁜 예로 그 장소에서 싸움이 벌어져 사고가 나서 사건에 연루되어 인생을 망치거나 그 장소에 가지 않음 으로써 그 화를 면하기도 한다.
이렇듯 인생은 크고 작은 결단의 연속이다. 필자가 상담을 하는 것도 어떤 방향이 옳은가에 대한 개개인의 결단에 조언을 하는 것이 주된 업무이다. 일종의 '결단 조언업' 이 인생 상담업인 것이다. 어떤 현상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판단력이 좋아야 인생을 지혜롭게 살 수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 한번 잘못 해서 인생을 망치고 역사를 망치는 예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수없이 계속되고 있다.
판단에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있다. 이 둘을 합친 말이 '이판사판' 이다. 죽던지 살던지 덤비는 '이판사판' 이 아니다. 불교의 <화엄경>에서는 인간사의 범주를 理(이)와 事(사)로 파악한다. 이는 본체의 세계요, 사는 현상의 세계이다. 이(理)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개념이고, 사(事)는 눈에 보이는 형이하학적 개념이다. 색즉시공의 색은 사이고, 공은 이의 세계다. 사판은 현실적인 물질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는 판단이고, 이판은 직관적이고 영적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판단이다. 예를 들어보자.
처녀 총각이 결혼을 하기 위해 서로 상대방의 학벌이나 직업, 외모, 집안 등을 따지는 것은 사판이다. 즉 현실적인 이해 관계를 따져보는 것이다. 서로의 사판적인 것이 좋다고 하여 모두가 잘 살지는 않는다. 이래서 이판의 문제가 대두 된다. 두 사람의 사주팔자가 조화를 이루고 궁합이 어떠한가 를 따져보는 것이다. 사판은 본인 들이나 부모들이 할 수 있지만 이판은 그렇지 못하다. 이판은 학문적인, 영적인 분야 여서 이 분야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판단해 볼 수 있다. 이 전문가 가 필자와 같은 업을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판과 사판은 둘 다 중요하다. 이판과 사판 모두 좋게 나왔다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금상첨화이다. 이판사판 모두 나쁘게 나왔다면 더이상 생각치 말고 그날로 인연을 접는 것이 좋다. 허나 이판과 사판의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 때는 헷갈리게 된다. 이 경우 이판의 점수와 사판의 점수를 합쳐 둘로 나눠보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 될 것이다. 물론 이판 사판의 점수를 수치적으로 딱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개념적 추상적 판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서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판부터 먼저 해보는 것이 옳다. 양자가 전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학벌, 인물, 조건 등이 다른데 궁합만 좋아서 성사가 되겠는가? 우선 현실적인 조건을 따져본 뒤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적인 궁합을 따져보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즉 선사판 후이판 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이를 확대 적용해 보면 사업 이나 이사, 동업, 이혼, 직업, 투자 등등 어떠한 분야 이든 합리적으로 응용될 수 있다. 인생을 상담해 주는 역학자가 본인의 인생을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닌 이상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이판이든 사판이든 한쪽 면만 보지말고 양면을 다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결단은 본인이 내릴 수밖에 없으며 그 결단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져야 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상담 내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발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원칙이요, 도리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필자의 어떤 고객이 음식점을 오픈 하려고 하는데, 그 음식점 자리가 자기와 잘 맞는지 여부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필자에게 문의한 일이 있다. 그 터의 상을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평가해 보니 大志大業(대지대업) 格 자리로 판단 되었다. 즉 '큰 뜻을 품고 큰 업적을 이룰 수 있는 터' 였던 것이다. 나온 대로 이야기해 드리니 매우 좋아 하면서도 일면 찜찜한 표정을 짓는다. 그 연유를 물은 즉 이분 왈 "선생님께서 터가 저에게 잘 맞는다고 하시니 매우 기분은 좋으나 사실 한가지 꺼려지는 점은 이곳의 임대료가 너무 쎄서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 조금 망설여 집니다. 위치는 매우 좋아서 마음에 드는데 임대료가 월 이만 오천불 씩이나 내야 되기 때문에 너무 부담이 됩니다." 라고 하신다.
필자가 깜짝 놀라 "예? 뭐라구요? 월세가 이만 오천불이요? 그 월세를 내면서 어떻게 장사를 합니까? 제가 그런 장사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 인지는 몰라도 장사에 베테랑 이신 사장님께서도 꺼리실 정도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터의 운이 아무리 좋아도 현실적인 조건이 맞지 않으면 다시 고려 해 보시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라고 하며 만류하였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필자의 의견에 따라주어 그곳을 포기한 일도 있다. 이렇듯 이판사판을 두루 고려하여 야지 한곳 으로만 치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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