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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역술가를 무시하다 망신당한 귀부인

2025.06.24




                역술가를 무시하다 망신당한 귀부인


  옛날 양주 땅에 정성모라는 역술에 능한 이가 있었다. 본래 글재주가 뛰어나고 훤칠한 외모까지 지닌 장부였으나 서자로 태어난 신분 때문에 출세길이 막히자 낙담하여 금강산 골짜기에 몸을 숨기고 천문, 역법, 풍수 등을 공부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기를 십여 년! 천한 종 신분이던 어머니가 궁핍한 세월을 보낸다는 소식을 듣고 혈육의 정에 이끌려 하산 한 뒤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점술을 생업으로 삼게 된다. 그의 실력이 뛰어나서 화와 복을 길하고 흉한 것을 말하되 일일이 들어 맞았고 어디 감춰진 물건도 정확히 알아 내었다. 이래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감탄해 마지 않았다.


한번은 이웃집에 사는 양반집 귀부인이 계집종을 데리고 그를 찾았다. 연유인 즉 부인의 값비싼 옥비녀가 없어졌고 이것을 계집종의 소행이라고 여긴 부인은 여종을 무수히 때렸으나 억울하다고 만 하고 실토를 안하자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여종을 끌고 그에게 온 것이다. 부인 왈 "비녀가 어디 있나만 가르쳐 주게! 훔쳐간 년이 요년인 것은 뻔한 노릇이니 요년이 비녀를 어디다 숨겨 놓았는지만 알려주게" 라고 하였다. 몇 번의 요청이 있어도 정성모는 눈만 껌뻑일 뿐 난처한 표정이 되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양 침묵했다. 거듭된 성화에 겨우 한다는 말이 "내 벌써 있는 곳을 알기는 하나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으니 난처 합니다" 였다. 부인은 노발대발 하여 "흥 모르니까 대답을 못하지 알면 왜 말을 못해! 뭐든지 알아 맞춘다더니 다 헛소리 였군" 하며 면박을 준다. 


이 말에 정성모도 발끈하여 "부인을 위해 알기는 아나 말을 안하는 것이니 그리 아시오" 라고 일갈 하였다. 이런 모양새가 되자 도둑의 누명을 쓴 계집종이 두 손을 마주 대고 싹싹 빌며 간청하였다. "제발 비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세요. 제발 제 누명을 벗게 해주세요" 이쯤되자 더 버틸 수도 없어서 정성모는 천천히 말을 시작 하였다.  "그럼 내가 가르쳐 줄 터이니 모두들 자세히 들으시오!" 소란 덕분에 모여 든 구경꾼이며 당사자인 부인과 계집종 모두 그의 입에 귀를 기울였다. 


"부인! 잘 들으십시요. 그대는 일전에 이웃에 사는 돌쇠 놈과 더불어 남의 눈을 피해가며 닥나무 밭에 들어간 일이 있지요? 그때 머리가 나뭇가지에 걸리는 바람에 비녀가 빠져서 아직 그곳에 있으니 찾아 보시요. 돌쇠 놈하고 몸을 섞었던 그 자리에 떨어져 있으니 가서 찾아 보시요. 이래서 말을 못한 것이요!" 라고 한 뒤 혀를 쯧쯧 찼다. 


이 말에 이웃집 귀부인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실은 이웃마을에 사는 돌쇠라는 종놈과 은근히 정을 통하는 사이였고 그날도 같이 닥나무 밭에 가서 시시덕 거리며 정을 통하고 흥취에 젖어 비녀가 없어진 것도 모르다가 뒤늦게 없어진 것을 알고 애꿎은 종년만 개 패듯 잡은 것이다. 도둑의 누명을 섰던 계집종은 좋아라 했고 옆에 구경하던 동네 사람들은 우루루 몰려 닥나무 밭에 갔다. 말썽을 일으켰던 문제의 비녀는 그곳에 있었다. 모두들 감탄해 마지 않았고 자신의 발등을 스스로 찍은 귀부인은 남들의 이목이 무섭고 반상의 구분이 엄격한 터라 관아에 잡혀가면 목숨까지 위태로운지라 그날 밤으로 돌쇠와 함께 야반도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역술가는 윗글에서 본 예와 같이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 종종 놓이게 된다. 필자의 최근의 경우를 보면 30대부부가 함께 필자를 찾아와서 남편이라는 사람이 자기부인에게 정부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아 달라는 노골적인 부탁을 한 일이 있다. 부인이 요즘 귀가 시간이 부쩍 늦고 가끔 외박까지 하자 틀림없이 마누라가 바람이 난 것이라고 생각한 남편과 의류 디자인너로 일하는 부인은 요즈음 회사에 일이 많아져 늦거나 밤을 새우는 경우가 있다며 자기 변호로 서로 다투던 중 어디서 필자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서로의 합의하에 필자에게 와서 시시비비를 가리자며 오게 된 웃지 못할 경우이다.


필자의 감정은 "부인이 업무가 과중한 시기가 되어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이는 부인의 잘못이 매우 큽니다. 남편께서 오해(?) 할만한 행동을 한 것은 전적으로 부인의 잘못입니다. 지금 부터라도 업무를 적극 줄이고 남편에게 충실 하십시요" 였다. 하지만 그때 필자가 짚은 그녀의 쾌상은 ‘몽지손’의 쾌였다. 이 쾌는 ‘은인 자중하라!  방종하면 큰 액을 당하리라! 계략이 뛰어나나 모두를 속이지는 못하리라. 작은 일이 큰 일로 번지리니 오래된 연분의 정이 갑자기 헤어지게 되리라!’ 라는 쾌여서 여자분의 행실이 문제가 생긴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으나 이를 그대로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허나 눈 하나 깜빡 않고 당당히 고개를 쳐든 채 비웃는 듯한 웃음을 띄고 있는 뻔뻔스런 그녀의 면전에 대고 “정신차려! 착한 남편 놔두고 어디서 바람질이야?” 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참느라 무척이나 애섰던 기억이 난다.  


안다고 다 아는 척 할 수 없고, 말하고 싶다고 다 말할 수 없는게 우리 같은 역술가의 숙명인 것 같다. 상담을 하다보면 이렇듯 본의(本義)아니게 거짓말을 하게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말기암 환자분이 필자를 찾았다. 두 딸과 함께 였는데 애절하게 바라보는 그들 앞에서 엄마의 죽음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희망적인 이야기를 쭉 늘어놓고 절대 죽지않고 살 수 있으니 삶의 희망을 놓지 말라고 격려한 일이있다.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뒤 그 딸들이 씩씩거리며 찾아와 필자에게 거짓말 쟁이라고 격하게 욕을 하며 망신을 준 일이 있었다. 묵묵히 감내했다. 그 또한 필자의 숙명이므로…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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