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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책에 미친 바보들!

2022.05.03

 




        책에 미친 바보들! 


 옛 부터 선비들은 늘 책을 가까이 하였다. 평생을 독서하며 청빈한 생활을 하는 것을 ‘선비의 道’ 라 여겼다. 조선후기의 선비 이덕무선생은 어려서 부터 책읽기를 매우 좋아했다. 이런 일화가 전한다. 어느 날 어린 이덕무가 실종됐다. 여기저기를 찾아보아도 아이가 보이지 않으니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그렇게 애를 태우다가 저녁때가 훨씬 넘어서 관아 뒤편의 풀 더미 속에서 아이를 찾았는데 어린 이덕무가 벽에 적힌 옛글을 보는데 정신이 팔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해가 저문 것이었다. 이덕무선생은 1741년 6월 11일 부친 이성호와 모친 반남 박氏 사이에서 2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정종의 아들인 무림군 소이공의 후예로 왕족 출신 이지만 부친인 이성호가 서자였기에 사회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덕무의 일생이 가난과 병마가 따른 것으로 보아 필자는 그가 태어난 시간이 申時가 아니 였나 추론해 본다. 아무튼 타고난 팔자대로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무위도식하게 되니 성격이 내성적이 되었고 말씨도 명확치 못하여 어눌하고, 성정이 활달치 못했다. 바둑이나 장기 같은 잡기는 평생 배우지 못하였으며 오로지 책보는 일만을 즐거움으로 삼았기에 춥거나 덮거나 배고프거나 병 들어도 오로지 책만 보는 일생을 살았다. 이덕무는 세상과 어울려 세속적인 영화를 바라기 보다는 자신의 내면적 가치를 발전시키는데 행복의 기준을 두었으므로 책읽기는 최선의 방책 이었다. 


평생 읽은 책이 이만권이 넘고 스스로 베껴둔 책도 수 백 권에 이르렀다. 이덕무선생은 친구도 별로 없었다. 다만 박지원과 박제가 등 일부 북학파 문인들과는 깊은 교류를 가졌다. 이덕무선생은 신분적 제약으로 한미한 관직을 몇 번 전전 했지만 가장 만족한 관직은 규장각 검서관이 되어 <국조보감> <갱장록> <문원보불> <대전통편> 등 같은 귀한 서적과 교감하게 된 것이었다. 책만 아는 책벌레가 도서관 사서가 되었으니 마음 놓고 눈치 안보고 어떤 책이든 접할 수 있으니 이때가 이덕무선생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기였을 것이다. 필자는 이덕무 산문선이나 이덕무선생과 관련된 책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책속에서 접한 이덕무선생의 삶이나 성격, 환경 등이 필자와 너무도 비슷해서 특별한 관심을 갖고 나서이다. 


필자도 평생 책을 좋아했고 많은 책을 읽어왔다. 일주일에 최소한 책 2권 이상을 읽어 왔으니 한 달이면 대략 8권이요, 1년이면 90권 가까이 되니 이 세월이 최소 50년 가까이 되니 최소 4,500권 이상의 책은 독서한 셈이 된다. 이덕무가 읽은 2만권의 책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독서량이지만 필자가 유일하게 남들에게 교만한 분야는 이 독서 분야이다. 필자만큼 독서량이 많은 이도 드물 것이라는 자부심에서이다. 일주일에 최소 2권이지 평균적으로 따지면 3-4권 이상 되므로 확실치는 않지만 만권이상의 책은 독파하지 않았나 싶다. 책 많이 읽은 것이 자랑은 아니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뿐 이라서 이다. 만날 친구도 없고 사람들과 휩쓸리기도 싫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남들처럼 바둑이나 당구, 골프 같은 것도 배우지 못했다. 유일한 휴식이라면 조용한 싸우나 에 가서 땀 흘리며 책 읽는 것뿐이다. 이 습관 마 져 고로나 가 터지고 나서 지금까지 2년 넘게 중단하고 있어 그나마 작은 휴식마저 제약을 받고 있다.


책은 아침부터 저녁까지를 필자와 함께 한다. 새벽 일어나 화장실에 앉아 책을 읽는 것부터 하루가 시작하여 잠들 때까지 책을 보는 것까지 책읽기에서 책읽기로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마감된다. 책만 있다면 무인도에 가서도 그리 외롭지 는 않을 것 같다. 이렇듯 유일한 취미가 책읽기다 보니 LA에 있는 책방은 모두 필자의 손바닥 안에 있다. 필자의 지출 중 가장 큰 지출이 책값이다. LA에 있는 한국 책방 어느 곳이든 그 책방 어느 책장에 어느 책이 꽂혀 있는지도 훤히 알 정도이다. 필자가 순회하는 책방은 마당 몰 책방, 해피 북 서점, 백화점 두 곳의 책방, 알라딘 서점 등이다. 이곳이 필자가 여유시간이 있을 때 노는 바닥이다. 예전에 알라딘 서적 사장님을 만났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저도 아마 이곳에 있는 책만큼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라고 우스개소리 삼아하니 웃는다. (요즘은 책 읽는 사람도 줄어들어 많은 책방이 문을 닫았고 따라서 필자의 책방 순례도 그만큼 제약이 되었다)


예전에 사무실 이사를 하며 책을 BOX에 담다보니 35 BOX 나 되게 나온다. 이 책 옮기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일부만 풀어 책장에 넣고 나머지는 넣어 둘 곳이 없어 그냥 BOX 채 쌓아 놓았다. 집에도 이정도 분량의 책이 있는데 나중에 이것까지 옮기려면 생각만 해도 미리 겁이 난다. 이덕무는 체형까지도 필자와 비슷하였던 것 같다. 자신이 스스로 묘사한 모습은 ‘내 몸은 깡마르고 약골이라 입은 옷조차도 견디지 못할 정도’라 했다. 필자의 옛날 모습이 이러했다. 56-57kg 을 넘지 못했고 최고 67kg 정도였던 체중이 몇 년 사이 치병(治病)의 휴유증 으로 84-86kg 을 육박하나 이것은 최근의 비정상적 상황이고 삐쩍 마른 허약한 체질이 이덕무 선생과 닮았다. 이덕무 선생은 융통성이 없어 평생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못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이 있으면 무척 괴로워했는바 스스로 밝히기를 “평생 동안 남에게 빌린 물건을 헤아려 보니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남이 조금만 어려운 기미를 보이면 차마 입을 열지 못했고 상대방이 나에게 빌려 주기를 조금도 꺼리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이 알게 된 다음에야 비로소 말을 건 냈다. ‘혹시 남에게 하인이나 말을 빌려올 때면 그 하인이나 말이 배고플까봐 오히려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보다 편치 못하였다’라고 적혀있다. 이 또한 필자와 너무도 흡사한 성격이다. 필자는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남에게 베푸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만 남에게 조금이라도 누가 되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다. 책을 병적으로 좋아한다는 점이나 성격 등등이 너무도 유사하여 “어쩌면 이리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예전에 살았을꼬?” 라는 희한한 감정 때문에 이덕무선생의 고사가 나오는 책을 이리저리 구해 읽다보니 선생에 대한 책 여러 권을 지니게 되었다. 


필자와 선생이 다른 점은 필자는 독서 외에 죽자 살자 일에 매달리는 워커홀릭인데 반해 선생은 평생 거의 직업 없이 유유자적 했다는데 있다. 평생을 워커홀릭, 북홀릭, 알콜릭으로 지내왔고 지내고 있는 필자에 비해 선생은 오로지 북홀릭 하나만 지니고 살다 53세에 일찍 갔으니 누구의 삶이 더 유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에 미친 두 바보들의 이야기였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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