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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易術)을 사술(詐術)로 바꾼 김경천

2019.04.22




역술(易術)을 사술(詐術)로 바꾼 김경천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지필묵 장사를 하고 다니던 김경천은 당시 서당을 운영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연명하던 전봉준의 서당에 기숙하고 있었다. 서당에 지필묵을 팔겠다고 어느 날 찾아든게 인연이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니 김경천은 사주팔자와 점술과 방술, 시짓기와 글쓰기에 능한 이였다. 어린 시절 홍역을 앓다가 속에 바람이 들어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했다. 다리병신이 되었으니 힘든 농사일을 할 수도 없고 여기다 집안이 빈한하니 장사 밑천이 없어 점방운영도 못할 형편이라 호구지책으로 역학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머리는 영민하여 꽤나 공부의 진척이 있었다. 


사주팔자도 봐주고 지필묵도 팔곤하며 전국을 떠돌다 훗날 동학난의 우두머리가 되는 녹두장군 전봉준을 만난 것이다. 전봉준도 형편이 아주 빈한하여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김경천은 아이들이 글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서당 윗목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곤 했다 그는 먼 앞날을 내다보는 이야기를 했으며 시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바 식견이 놀랍도록 높았다. 결국 나중에 김경천은 전봉준을 따라다니며 책사역할을 하게 된다. 김경천은 머리가 매우 약삭 빠른이여서 전봉준이 궐기하여 동학난을 일으키자 동학무리가 급속히 늘어날 수 있는 사술을 쓰도록 전봉준을 꾄다. 내용은 이렇다. 


등짝에 ‘궁궁을을(弓弓乙乙)’이라고 쓴 부적을 붙이고 ‘지금지기 원위대강(至今至氣 願爲大降) 시천주조 화정영세 불망만사지(侍天主造 化定永世 不忘萬事知)’라는 주문을 외면 총탄이 피해 간다는 사술을 동학난에 참여한 농민들에게 믿게하여 두려움을 없애고 너도나도 난에 참여하는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이 부적과 주문을 외우면 절대로 죽지 않고 난에 참여하여 공훈을 세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데 어느 누가 참여를 망설이겠는가? 김경천은 이를 믿게 하고 전봉준을 신출기몰한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연극을 꾸몄는데 동학도들 앞에서 미리 짠 두 명의 농민군에게 소리만 나는 빈총을 ‘땅! 땅!’ 소리가 나게 쏘개한 뒤 전봉준이 미리 두 손에 쥐고 있던 총알을 보여주어 전봉준의 신출귀몰함을 믿게 하여 ‘저런 장군을 따라다니면 절대 잘못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게 한 것이다. 


이러다보니 십만이 넘는 농민들이 이 난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던 어느 날 김경천은 점괘를 짚어본 뒤 전봉준에게 “장군님 제가 어느 날 장군님 곁에서 갑자기 사라지더라도 찾지 말고 기다리지도 마십시오. 저는 두 개의 긴 산줄기 사이에 끼여있어 쌍치곡(雙峙谷)이라 불리는 계곡사이의 피로리라는 마을에 들어가 있을 겁니다. 옛날부터 가뭄이 들면 피가 많이 나서 그것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어 피로리라고 했답니다. 쌍치사이에 움크리고 있는 마을이여서 먼데서보면 마을이 있는지도 분간하기 어려우니 피난지로는 최고입니다. 훗날 위급한 때가 올 것이니 이때 저를 찾아 오십시요! 안전하게 숨어서 훗날을 도모할 굴법당 하나를 파놓겠습니다.” 라고 한 뒤 어느 날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 후 전봉준은 동학의 한울님을 받들어 십만의 동학군을 이끌고 한양으로 진격하여 탐관오리들에 의해 신음하는 백성을 해방시키고 외세를 몰아내어 좋은 세상을 만들 꿈을 꾸었다. 허나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의 기관총에 의해 짧은 시간만에 대패하고 말았다. 기관총의 위력이 그리도 큰지 몰랐다. 부적을 붙이고 시천주를 외우던 동학도들은 쓰러지고 또 쓰러져 죽어갔다. 


등짝에 궁궁을을(弓弓乙乙)이라고 쓴 부적을 붙인 채 죽어 넘어진 시체들이 산과 들에 널려있었다. 까마귀와 독수리 떼, 굶주린 들개들이 얼어버린 시신들을 뜯어 먹었다. 김경천과 전봉준의 사술에 넘어간 결과였다. 전봉준은 우금치 전투대패 후 측근 몇 명만을 거느리고 피해 다니다 문득 옛 부하였던 김경천이 생각났다. 하여 옛 기억을 더듬어 순창 피노리로 김경천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위급할 때 자신을 찾아오라던 그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때는 이미 전봉준을 산채로 잡아오면 보상금 천냥과 군수벼슬을 주겠다는 방이 이 고을 저 고을에 여기저기 내걸려있는 상황이었다. 김경천은 교활한 자였다. 또한 역술실력이 뛰어나 전봉준이 거사에 실패할 것을 알았고 따라서 위험한 우금치 전투에 따라가지 않고 몸을 피했으며 전봉준에게 많은 현상금이 내걸릴 것을 예견하여 자신에게 몸을 의탁하기를 미리 꾀인 것이었다. 


김경천은 전봉준을 혼자 잡으면 좋겠으나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알고 이웃마을의 한신현이라는 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한신현은 그의 외종형으로 군관을 퇴직한 자였다. 그 또한 집안이 빈한하여 글공부를 글공부답게 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과거시험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할 수 없이 포졸이 되어 내내 포졸노릇을 하다가 장교인 포교가 겨우 되었다가 나이 들어 퇴직한 상태였다. 하지만 벼슬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어떤 횡재로 돈이 생긴다면 벼슬을 사서 떵떵거리고 싶었다. 당시는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었다. 이 천냥만 싸들고 가면 현감이나 군수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욕망이 있던 그에게 이종사촌 동생인 김경천이 횡재수를 가져온 것이었다. 전봉준을 잡아서 상금은 김경천이 갖고 벼슬은 한신현이 받도록 합의를 했다. 한신현은 장정여럿을 수배하여 김경천의 집 뒤뜰에 숨겨놓고 때를 기다렸다. 


이윽고 김경천이 찾아온 전봉준 일행을 반갑게 맞아들이고 주막집에서 국밥을 대접하며 독한 술을 거듭권하여 취해 잠이 떨어지게 하였다. 전봉준만은 특별히 대우하는 듯 자신의 집 안채로 모신다며 데려갔다. 그리고 때를 노려 잠복중이던 무리가 방을 덮쳤다. 장정 여럿이 몽둥이로 정강이를 집중적으로 내리치니 전봉준은 두 다리를 쓰지 못하고 엎어졌다. 이리하여 가마에 실려 한양으로 압송되어 가는 신세가 되었다. (가마를 타고 압송되는 녹두장군 전봉준을 찍은 사진은 이렇게 하여 후세에 남게 되었다. 다리가 부러져 걷지를 못하니 가마에 싣고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코 대우하려한 것이 아니다) 김경천은 이런 교활한 수를 부려 성공을 했으나

이런저런 핑계로 벼슬은 물건너 갔고 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김경천이 벼슬은 받지 못했으나 돈이라도 받을까 하고 관아로 천냥을 받으러가자 이방이 천냥을 수령했다는 수결(싸인)부터 하라고 성화였다. ‘아무 날 아무 시에 본인이 직접 동현에 나와 사또나리께 돈 천냥을 받아갑니다.’ 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수결을 하고나니 이방이 꾸러미 하나를 내놓는데 보니 삼백냥뿐이었다. “아니 어째서 삼백냥뿐이요?” 라고 항의하니 “감사 밑의 떨거지들에게 몇 백냥 떼 주고 우리 사또에게 또 몇 백냥 바치고 형방, 공방, 병방, 예방, 호방에게 몇 십냥 씩 떼어주었고 포교들에게도 입 씻을 수 없어 몇 냥씩 주었다! 왜 떫으냐? 어서 꺼져!” 현실이 현실이니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며 “에이 썩을 놈의 세상!” 이라고 욕을 한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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