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

2019.04.15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  


  오래전 필자가 겸손치 못하고 기고만장하던 시절에 있었던 실수담이다. LA에서 꽤나 먼 거리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인근 작은 도시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필자와 자리를 마주했다. 몇 달인가 전부터 상담예약을 했다가는 취소하고 또다시 예약했다가 취소하기를 몇 차례나 한터여서 당시 예약 스케쥴을 관리하던 필자의 제자이자 쎄커터리였던 R양은 꽤나 신경질을 부렸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마주한 자리였다. 와서 하시는 말씀이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 번 예약을 했다가 취소 하곤해서 피곤하게 해 드렸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여기서 7-8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에 있고 제가 일하는 식당이 365일 계속 영업을 하는 곳이라 미리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쉬는 날을 허락받아 예약을 하곤 했는데 하필이면 제가 선생님께 오기로 한 바로 그날들에만 꼭 단체손님이 들이닥치니 주인 눈치 보여 모른척하고 올 수도 없고해서 그리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더군다나 제가 운전을 못하는 터라 오는 교통편을 찾아 물어물어 오는 것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라고 하시며 고충을 이야기 하신다. 서울에서 부산거리의 거의 2배 가까이 되는 장거리를 운전도 못하시는 노인네가 교통수단을 물어물어 오신다는 것이 어찌나 먼 고역이였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에 필자 왈“ 먼 거리에 계시는 분들은 직접오시지 않아도 전화 상담을 통해서 상담하실 수가 있는데 뭐하러 이 먼거리를 힘들게 오셨습니까?” 라고 물은 즉 “그리 해 볼려고도 했는데 상담예약을 받으시는 아가씬지 아주머니인지 아무튼 그 양반 얘기가 크렛카드(?)가 있어야 된다고 해서요~ 저는 크렛(?)이 없어요. 또 뭐냐 크렛이 없으면 마니뭔가를 (마니오더) 떼서 보내면 된다는데 복잡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고 그래도 이리 중요한 일을 예절 없이 얼굴도 안보고 전화만으로 상담하기도 뭣했지요. 그래서 이리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라고 하신다. 


필자는 더구나 먼 거리, 외국에 계신 손님과도 자주 상담을 하는 바 주로 결제는 크래딧카드로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마니오더를 받아 처리하는 씨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노인에게는 꽤나 복잡히 느껴지셨나? 싶어 죄송스런 마음이었다. 아무튼 누구를 상담하시기를 원하시냐 물은 즉 따님의 사주팔자를 보고 싶다하신다. 생년월일시를 물어 당시 32세의 따님 사주팔자를 세워보니 신약사주에 인성이 약하며 사주에 재성이 태왕한데다가 대운과 연운이 이이의 용신을 극해(剋害)하고 있어 건강이 매우 불안해보였다. 더구나 주역상 쾌를 짚으니 ‘승지사’의 쾌가 짚힌다. ‘입산금호 생사난변’의 운이니 ‘산속을 헤메이던 이가 호랑이를 만나게 되리니 생사(生死)를 장담키 어렵다’는 해석이 가능하여 어려움이 더더욱 가중된 운이다. 


필자 왈 “이런 말씀 드리기는 참 어렵지만 따님의 건강에 치명적인 상황이 닥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라고 하며 물은 즉 “네! 선생님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우리 딸이 무사할 수 있을까요?” 라고 하시며 늙어 짓무른 눈에 눈물이 가득하시다. 이분과 딸은 어려서 헤어져 살다가 서로 다시 만난지가 십 여 년 남짓할 뿐이라 했다. 할머니께서 주한미군으로 나와 있던 한 흑인병사와의 사이에 이 딸을 나이 40이 다 되어 늦둥이로 낳았고 다행히도 남편이 모녀를 거둬주어 귀국할 때 함께 미국에 건너왔다 했다. 군대 근무할 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게 된 남편이 의가사 제대를 해서 연금으로 먹고사는 것은 해결되었는데 고통 때문이었는지 마약에 손을 대고 점점 심해져 상황이 심각해졌고 부부다툼도 잦아 생활이 어려웠다한다. 


할머니는 돈을 벌기위해 딸과 남편을 집에 두고 여기저기 바닥 일을 떠돌며 돈을 벌어서 집안 살림을 끌어나갈 수밖에 없었다한다. 이러다보니 딸내미도 점차 반항적이 되더니 급기야 어긋나서 가출을 해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한다. 자연히 가족은 해체되었고 각자 살아가던 중 10여년간 연락이 없던 딸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많이 아프다는 거였다. 당시 동부 마이애미에서 일하던 할머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딸이 있는 샌프란시스코 인근으로 부랴부랴 오시게 되었고 이때부터 딸 병을 간호하면서 식당에 나가 일해서 버시는 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시게 된다. 다행히도 젊어서부터 한식당에서 요리를 해오신 관계로 음식솜씨가 좋아 늙은 나이임에도 오라는 곳이 많았다한다. 


필자가 오랫동안 신중히 따님의 사주팔자를 살펴본 뒤 “아무리 살펴보아도 따님이 호전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라고 하니 “회복 못하고 죽는다는 말씀이지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렇다고 봅니다”“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휴~우!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말씀이군요?”“그렇습니다...” 이때 휴~ 하고 긴 한숨을 쉬시는 할머니의 표정을 보면서 필자는 갑자기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멍해지신 표정으로 눈동자에 초점이 없으시고 세상의 모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듯한 표정에서 필자가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이 노인분이 세상을 버릴것 같다는 느낌이 순간 확하고 필자의 머리를 스치면서 물밀듯이 후회가 솟구쳤다. 사람의 生死를 어찌 그리 쉽게 이야기 한단 말인가? 어쩌자고 그런 망발을 쉽게 뱉어 버렸던가? 스스로 자신의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한번 뱉어낸 말을 어찌해도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허정허정 돌아가시는 그 분의 뒷모습을 보며 애타게 기원했다. 제발 무사하시길....


이후로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문득문득 그분의 얼굴표정이 생각나고 컨디션이 좋지 못해 잠을 설칠 때에도 가끔 그 모습이 보여 마음이 많이 괴로웠다. 필자의 생각 없는 말 한마디가 두 사람의 희망을 꺾고 목숨마저 꺽은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제발 지금까지도 건재하시고 건강하시기를 손 모아 기도하며 혹시라도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필자의 경솔했음을 머리 숙여 사과드리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야 당시 할머니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 것 같아 더더욱 송구해진다. 



  자료제공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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