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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딸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사위놈

2019.07.22


     딸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망나니 사위 놈   


  젊어서 일찍 미국에 건너와 이런저런 고생 끝에 HOTEL업으로 크게 성공하신 이 사장님은 필자의 오랜 고객이시다. 슬하에 무남독녀 외동딸을 두었고 잉꼬부부인 이 사장님 내외분은 이 딸을 금지옥엽 귀하게 키웠다. 딸아이는 다행히도 소도둑놈처럼 우락부락한 이 사장님 외모를 닮지 않고 이 사장님과는 대조적으로 무척이나 미인이신 부인의 외모를 닮아 누가 보아도 탐이 나는 예쁜 용모였고 머리도 총명했다. 이 사장님은 평소에 “제 딸년이 저 닮지 않고 애미를 닮았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계집애가 저를 닮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한 뒤 호탕하게 ‘껄 걸’ 웃곤 하셨다. 이렇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딸을 시집보낼 때 이 사장님은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많이 우셨다. 딸에 대한 사랑이 그토록 깊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장님이 요즘 무척이나 속이 상해 계시다. 사위 놈 때문이다. 딸아이가 처음 남자친구라며 사위 놈을 소개 시켰을 때 첫눈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놈이 어른들 앞에서 하나도 어려워하지 않고 번드르 하게 퐁당 퐁당 입을 놀리는 게 영 미덥지가 않았다. 직업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댄스선생이란다. 댄스선생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제비족?’아닌가! 딸은 이 사장님에게 그런 춤 선생이 아니라 라틴댄슨가 뭐시긴가 하는 스포츠댄스 강사라고 하는데 이 사장님은 딸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양미간에 잡힌 주름이 펴지지 않았었다. 딸년이 죽자 사자 좋다고 하니 반대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승낙하는 수밖에 없었다.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결혼 후 사위 놈은 그 알량 맞은 댄스선생 질까지도 때려 치고 맨 날 빈둥빈둥 처먹고 놀기만 했다. 보다 못한 장모가 나서서 여러 곳에 있는 HOTEL 중 한곳의 책임을 맡겨 일을 시켜보았지만 일에는 영 관심이 없고 돈을 빼가지고 나가선 며칠 동안 실컷 놀다가 오기 일쑤였다. 이러니 부부 사이도 원만 할 수 없었다. 툭하면 둘이서 싸우고 딸은 친정에 와 ‘사니 못사니’ 징징 짜며 부모의 마음을 긁어댔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이른바 ‘싹수가 노란 사위 놈’과 딸을 이혼 시키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딸이 덜컥 임신을 했다. 아이를 지우고 새 출발하자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딸년은 질질 짜며 애기는 꼭 낳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런 갈등 속에 딸아이는 남매를 두게 되었다. 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가 되었고 사위 놈은 영 철들 기미가 없자 이 사장님 내외분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필자에게 찾아오셔도 노상 사위 놈 욕만 하다가셨다. 이 사장님을 보면서 조선조 중종 임금이 생각났다. 중종은 유난히 자식사랑이 깊은 임금 이였다. 언젠가 동궁(세자의 거처)에서 불이나자 훗날 인종이 되는 세자의 아명 ‘백돌이’를 애타게 부르며 눈물까지 흘리면서 발을 굴렀다 한다. 임금 체면도 잊고... 이런 중종이 유난히 사랑하는 딸이 있었으니 효정옹주다. 숙원이씨의 소생 이였고 옹주 중에는 네 번째 딸 이였는데 조의정에게 하가(下家)했다. 부마 조의정은 이 사장님의 사위 놈처럼 문제가 많은 사위였다. 심성 자체가 약간 삐딱한 인간 이였던 것 같다. 


결혼하고 나서도 주색에 탐닉하여 부인인 옹주를 구박했다. 남편 바람피는 것이야 투기(질투)는 칠거지악에 속하기에 뭐라 할 수 없었지만 툭하면 노름질과 싸움질 그리고 유부녀들을 건드려 항상 시끄럽고 망신스러운 짓을 골라가며 해내는 철없는 남편에게 충고라도 할라치면 “니 애비가 왕이라고 니가 나를 무시하냐?”라고 차마 못할 무엄한 언사를 해가며 폭행까지 했다. 옹주는 시집을 왔어도 왕궁에서부터 시중을 들러온 보모(保母)와 시비들을 여러 명 데려왔기에 이런 망칙한 일들이 사람들 입을 통해 퍼졌고 중종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중종은 무척이나 속이 상했다. 효정옹주의 생모인 숙원이씨는 일찍 세상을 떠나 가장 옹주를 위해주고 챙겨 줄 어머니도 없이 가엽게 자란 옹주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데 외롭게 자란 옹주가 시집가서도 남편의 개망나니 짓으로 속을 썩고 있고 더구나 일국의 존엄한 왕의 딸인 옹주에게 무엄한 언사에 더하여 때리기 까지 한다하니 분에 못 이겨 몸이 벌벌 떨리기 까지 했다. 


‘당장 요놈을 잡아 죽여?’하다가 딸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비록 한나라의 왕일지라도 딸의 애비는 약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이였다. 하여 분을 가라앉히고 조의정을 불러들여 여러 차례 좋은 말로 타일렀다. 그런데 이놈이 용감한 건지 아니면 죽으려고 환장한 것인지 왕인 장인의 타이름에도 제대로 대꾸하지도 않고 심지어 근신하라고 왕이 성심껏 써준 주의문(경고장)도 일부로 흘려두고 가버렸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조의정이 풍가위라는 첩을 얻고서 부터였다. 첩이야 전에도 여럿 있었지만 하필이면 옹주의 여비인 풍가위에게 빠져 첩으로 들이면서 첩인 풍가위를 처처럼 대우하고 사랑하면서 옹주를 비복처럼 대우했다. 옹주의 처소를 풍가위에게 주게 하고 옹주를 뒷방으로 내쳤다. 옹주의 비복 이였던 풍가위가 이제 안방을 차지하고 안방마님 행세를 했으며 옹주는 하녀 취급을 받았다. 옹주가 거느리고 있던 보모와 시비도 다 내쫒았다. 소식을 듣고 중종이 부마 조의정을 불러 야단치며 물어보니 보모는 스스로 집을 나간 것이고 시비들은 자기의 가세가 곤궁해져 어쩔 수없이 내보냈다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중종은 극도로 분노했다. 시쳇말로 ‘야마가 빡 돌아버렸다.’ 그래도 사위자식도 자식인지라 때려죽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이러다 큰 사고가 났다. 공주가 출산하다 위중해졌고 이 소식을 들은 궁궐에서 의녀를 보냈으나 조의정이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가로 막았고 풍가위도 이에 동조했다. 결국 옹주는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죽었다. 옹주가 죽으면 조의정과 풍가위를 거칠 것이 없기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질렀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왕은 두 년 놈들을 잡아다 참형에 처하려 했으나 중신들의 반대로 귀양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주인 이였던 옹주를 내치고 그 자리를 차지한 첩인 풍가위는 귀향을 가지 못했다. 귀향을 떠나기 전 은대라는 상궁이 내수사 여종 다섯 명을 시켜 풍자위를 자신의 동생 집 행랑방에 10여 일 동안 가두어 두고 그 동안 곤장 맞았던 곳을 일부러 더 때려서(때린 곳 또 때리면 되게 아프다.) 결국 죽게 하였는데 은대라는 상궁은 숙원이씨의 동생 즉, 효정공주의 이모였다. 은대를 처벌하라는 빗발치는 상소에서도 중종은 끝내 은대를 처벌하지 않았다. 때려죽이고 싶었던 년 놈 이였는데 임금이 체신 없이 가정 사에 너무 깊이 관여한다며 신하들이 반대하여 죽이지 못했는데 은대가 이 일을 대신해 주었으니 조금이나마 속이 시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료제공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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