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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만석꾼 외동 아들의 노년

2019.11.11



       만석꾼 외동아들의 노년 


 김박복씨(가명 78세)는 노인아파트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는 노인이시다. 정부에서 매달 보내주는 월페어가 생명줄이다. 주위에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나 자식도 없다. 집에서 하루 종일 책이나 읽고 TV 시청하며 하루를 보낸다. 성격이 까다로와 친구도 한 명 없다. 정 못견디게 지루하면 슬슬 걸어서 겔러리아 백화점 아니면 플라자 백화점 분수대에 우두커니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심한 얼굴로 바라본다.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특히나 엄마와 같이 나온 어린것들을 보면 반색을 하며 다가간다. 아기들이 너무 귀여운 것이다. 이쁘다고 손이라도 잡아주면 엄마들이 질겁을 하며 떼어낸다. “할아버지 왜 이러세요? 정말 이상한 노인네야!” 신경질을 부리며 눈을 흘기기기 일쑤다.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어린것들을 보면 귀여워 참지 못한다. 


젊은 시절 하나뿐인 혈육이었던 아들 녀석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아장아장 걷던 세 살 때 아이를 병으로 잃었다. 그 후 부인과도 이별하고 세상온천지 피붙이 하나 없는 세상을 살았다. 그 시절이 어제 같은데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추레한 늙은이가 되었다. 옛날의 영광은 다 쓸모없는 추억이 되었다. 김노인을 필자가 처음 만난것은 10여년 전이다. 당시 초로의 한 신사분이 필자를 찾아와 당신의 팔자를 세밀히 좀 봐 달라하며 생년월일시를 내밀었다. 이분은 1940년 음력 9월 1일 오전 10시경에 태어났다. 하여 사주팔자는 庚辰年 乙酉月 丁丑日 乙巳時이고, 운은 순행하여 丙戌 丁亥 戊子 己丑 庚寅 辛卯로 흐른다. 


월령 酉金과 일지시지의 丑土와 巳火가 巳酉丑 삼합을 하였고 년간 庚金이 투출되어 재성이 아주 강하다. 그리고 편인 2개와 시지에 巳火가 겁재여서 일주 또한 강하니 이 사주팔자는 자칫하면 큰 부호의 팔자로 진단하기 쉬우나 시지의 巳火는 巳酉丑 삼합으로 金으로 오행이 바뀌었고 월간 乙木이 시간 庚金과 乙庚合하여 金으로 바뀌어 乙木을 생조할 수 있는 관살이 없다. 고로 재성이 거꾸로 아주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인생초년기인 丙戌 丁亥 대운에는 비겁이 일주를 도와 풍족한 재물 운이나 이후 전개되는 戊子 己丑운 이하의 운은 土가 金의 기운을 생금하여 아주 곤궁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운이다. 아주 극단적인 ‘선부후빈’의 팔자가 되었다. 


이 팔자를 일람한 뒤 필자 왈 “이 사주팔자를 단적으로 진단하자면 어려서는 아주 부유했으나 30세 이후에는 평생 재물운이 오지 않는 팔자입니다. 30세 이후 한 번도 재물운이 오지 않으니 재물을 찾아 헤매다 늙고 지쳐 현재에 이르신것 같습니다.” 라고 하니 크게 한숨을 내쉬며 한탄하신다. “애초에 내 팔자를 스스로 알았다면 그 모진 인생풍파를 겪지는 않았을텐데!” 이분은 대전 인근지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 일대에 알아주는 만석꾼이여서 그 지역에서 ‘누구 땅을 밟지 않고는 다른 지방으로 갈 수 없다’할 정도의 큰 부자였다 한다. 그런데 이 집안은 대대로 손이 귀했던 바 아버지나이 50세 다되어 겨우 무녀독남 외아들인 이분을 얻었다. 어려서 만석꾼 외동아들로 그야말로 금지옥엽으로 자랐다. 그런데 이분이 20대 초반에 이르렀을 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아버지가 모 정치사건에 연루되어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모 정보기관에 끌려가 모진고문을 받고 시름시름 앓다 사망하고 만다. 


당시 70이 다 된 몸으로 모진 고문을 받았으니 몸이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재산도 모두 나라에 헌납한다는 각서까지 쓰고 겨우 구걸한 목숨이지만 그만 목숨까지 내놓고 만 것이다. 하루아침에 만석꾼 외동아들에서 무일푼 빨갱이 자식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부자망해도 3년 간다’는 말처럼 집안에 있었던 패물이나 귀금속은 건질 수 있었고 여기저기 잡다한 부스러기 재산이 있어 연명하는데는 큰 지장은 없었다. 당시만 해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연좌제가 있어 취업도 할 수 없었다. 부스러기 재산을 모아 처음 시작한 사업이 생수사업이었다. 당시에는 사람들 사이에 “미국에서는 물도 사이다, 환타처럼 사서 먹는데!” “정말? 천지에 널린게 물인데 물을 귀한 음료수처럼 병에 담아 팔아 먹는단 말야?” 라는 대화가 오갈 정도로 물에 대한 상식이 낮을 정도였는데 너무 앞서가는 사업에 손을 댄 것이다. 결국 부도가 났다. 


설악산 인근에 사놓은 공장부지도 다 뺏기고 그야말로 완전 빈털터리가 되었다. 이때가 결혼한지 막 1년 되는 해였고 아들도 태어난 때였다. 처갓집 장인 장모를 몇 달씩 쫓아다니며 설득하고 사정한 끝에 처갓집 시골 땅 팔아 두 번째 시작한 사업은 당시 개념도 생소했던 ‘무제한 고기집’이였다. 지금이야 사방이 ‘무제한 고기집’이 널려있지만 고기가 무척이나 귀했던 그 시절 ‘무제한 고기집’은 사람들에게 너무 생소한 개념이었다. 몇 년 발버둥을 치며 버텼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때 사업도 망하고 업친데 덥친격으로 하나뿐인 아들도 병으로 잃었다. 부인하고도 심각한 갈등을 겪은 뒤 이혼 당한다. 이후에도 재기하기 위해 이런 사업 저런 사업을 조금만 돈이 모이면 벌렸다. 하지만 팔자에 없는 돈이 따를리 없었다. 


이런저런 상심 끝에 바다에 빠져 죽으려고 선원이 되었다. 깊고 깊은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목적이었다. 그런데 죽지 못했다. 몇 번이나 한밤중에 간판에 나와 씨꺼먼 바다 속으로 뛰어들려했지만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가 으르렁거리는 파도소리가 너무도 무서워 뛰어내리지 못했다. 어찌어찌하다 남미에 살게 되었고 몇 년 그곳에서 살다가 미국에 흘러들어왔다. 이렇게 수 십 년이 흘렀다. 한국이 가끔 생각났지만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가보아야 아무도 없기는 이곳이나 그곳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상담말미에 필자가 종교이야기를 꺼냈다. 기독교던 불교던 천주교던 자신에게 맞는 종교를 하나 가져 보시는게 어떻겠느냐? 물어보며 권유했더니 자신은 무신론자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북적거리고 서로를 헐뜯는 것이 싫다했다. 천상 외롭게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이다. 이래서 팔자는 못 속이나 보다!


 

자료제공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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