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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카이막클르 지하도시(터키)

2018.02.06


카이막클르 지하도시

Kaymaklı Yeraltı Şehri 



개미굴을 자세히 살펴 본 적이 있나요?
알방, 번데기방, 애벌레방, 먹이저장방, 수캐미방, 여왕개미방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개미집.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가 바로 개미굴처럼 지하를 파고 내려 가며 만든 구조물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는 큰 규모의 것만 모두 36개.
작은 규모의 지하도시까지 모두 합치면 200여개에 이른다.
잘 알려진 곳으로는 으흘라라, 소안르, 오즈코낙, 크즐 추쿠르, 데린쿠유, 카이막클르등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깊고 규모가 큰 지하도시는 '데린쿠유'로 수용인원은 4,500명이 넘는다.
그리고, 다른 지하도시들도 모두 수백명 이상의 수용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카이막클르 지하도시의 수용인원은 3,500명 정도.




카이막클르 지하도시의 내부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지하도시는
7 ~ 8세기 이슬람군의 침입때 대규모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진다.
깊이 180피트(55미터), 지하 8층에 이르는 카이막클르 지하도시에 도착했다.
지하로 내려가면 천장이 낮아 앉아서 걸어야 하는 곳이 많다고 가이드가 설명하니,
몸이 큰 사람과 연세드신 분들이 들어 가는 것을 포기한다.
지하로 내려 가니 서늘한 공기가 온 몸으로 느껴진다.




동굴속에서 지하도시에 관한 설명을 듣고있는 관광객들


지하동굴이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40미터 정도되는 긴 통기구를 통해 위의 맑은공기는 지하로 스며 들고 있었다.
1층에 바위로 만든 원반형의 회전문이 하나 보인다.
이것은 여닫이식으로 홈에 꼭 맞도록 되어 있어 안에서
바위문을 닫으면 밖에서는 결코 문을 열 수 없다고 한다.




중간에 놓여있는 둥그런 바위가 통로를 차단하는 바위문


2층은 교회로 두개의 애프스(교회 동쪽 끝에 있는 반원형 부분)가 있고 앞에는 제단이 있다.
곡식을 저장하는 곳간과 와인저장소, 주방시설이 있는 부엌은 3층이다.
이곳에는 와인을 만들기 위한 석조와 암반을 파서 만든 절구등이 있다.
4층으로 내려 가려니 좁은 통로를 쪼그리고 앉아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이러한 것을 처음 경험한 나는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매우 불편했지만,
숨어 살던 기독교인들은 재빠른 동작으로 지하통로를 왕래했을 것이다.
사람이 환경의 지배를 받아 익숙해지면 동작이 그만큼 빨라지기 때문이다.




좁은 통로를 쪼그리고 앉아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곳이 많다


맨처음에 이곳에는 히타이트인이 살았다고 한다.
히타이트인들은 지하 1층을 저장고로 이용해 살았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 다른 종족과 기독교인들이 들어와 살면서 지하 8층까지 확장된 것이다.
하지만, 카이막클르 지하도시가 지하 8층에서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아직까지도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데린쿠유와 카이막클르 지하도시는 10% ~ 20% 정도 발굴된 것으로 추측한다.
카이막클르 지하도시가 사람들에게 관람이 허용된 것은 지하 4층까지.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13층까지 발굴했지만, 허용된 곳은 8층까지이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데린쿠유와 카이막클르 지하도시가 서로
연결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 많은 고고학자들의 견해라고 한다.




동굴속 아래층과 윗층으로 나뉘어지는 갈림길


지하도시를 떠나며 이곳에서 살던 기독교인들의 삶에대해 생각해봤다.
그들은 컴컴한 동굴속에서 살며 삶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도하며 마음의 평안을 찿았을 지하동굴속의 기독교인들.

고통속에서 그리움을 아는이 만이 나의 고뇌를 알고 이해한다는 괴테의 고백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속에서 나의 눈은 어슴푸레 해졌지만,
돌아갈 본향이 있는 사람은 기도하며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이다.


글, 사진: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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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막클르 지하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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