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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아시시(이탈리아)

2018.07.13




 





 

Assisi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는 제2의 예수로 불린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교회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성인이기 때문이다.




나병환자에게 입을 맞추고 일생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한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는 그가 태어나고 활동했으며 그의 유해가 묻혀 있는 도시다.




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는 성 마리아 델리 성당(Basillica di Sant Maria degli Angeli)이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 가니 포르치운쿨라(Porziuncola)라는 작은예배당이 보인다.




포르치운쿨라는 ‘작은 몫’을 뜻하는 말로 프란치스코가 가장 먼저 예배를 드렸던 곳이다.




1226년 10월 3일, 그가 세상에서의 할 일을 다 마치고 선종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성 마리아 델리 성당은 포르치운쿨라를 보호하기 위해 16세기에 지은 것이다.




역에서 ‘로카 마조레’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한다.




로카 마조레는 아시시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군사 요새다.




1174년 지어진 건축물이나 여러번에 걸쳐 파괴되어 현재는 일부분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 바라 보는 아시시 풍경과 산 프란치스코 성당의 모습은 매우 평화롭다.




예전에는 작은 요새인 로카 미노레에까지 성벽이 둘러 있었다고 한다.




아시시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시간이 거꾸로 흘러 가는 느낌을 받는다.




바닥과 양쪽 벽이 모두 돌로 이어진 고요한 골목길.




고즈넉한 골목길은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을 것 같다.




산 루피노 대성당은 아시시의 첫 주교였던 루피노를 기리기 위해 지은 성당이다.




명칭은 대성당이라고 부르지만,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비해서는 작은 규모다.




내부에는 성 프란치스코의 동상과..




성녀 키아라(Santa Chiara)의 동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대성당의 오른쪽으로는 성녀 키아라의 생가가 남아있다.




아시시의 중심은 ‘코무네 광장’이다.




코무네 광장은 로마시대에는 기독교 순교자들을 처형하는 무시무시한 장소였다.




광장에는 기원전 1세기에 세워진 미네르바 신전이 있다.




미네르바 신전은 6세기부터 수도승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14-15세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됐다.




1539년, 교황 파올로3세의 지시로 신전은 성모에게 바치는 성당으로 복원된다.




그래서 생긴 것이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Santa Maria Sopra Minerva) 성당이다.




소프라는 ‘위’를 나타내는 말로 ‘미네르바 신전 위에 세워진 성 마리아 성당’ 이란 뜻이다.




누오바 성당은 ‘새 성당’이란 뜻으로 성 프란치스코 생가에 지어진 성당이다.




아시시에서는 가장 최근(1615년)에 지어진 것이어서 ‘누오바’라 부른다.




중앙 제단이 위치해 있는 곳은 프란치스코가 어린 시절 기거하던 방이었다.




성당의 앞마당에는 프란치스코 부모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하얀색과 분홍색 대리석의 산 키아라 성당은 성녀 키아라(클라라)를 기리기 위해 지은 성당이다.




키아라는 프란치스코의 회개과정을 목격하고 그의 설교에 감동되어 수도자가 된 성녀다.




그녀는 결혼을 포기하고 수녀원에 머물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1253년 키아라가 선종한 후 1255년에 키아라는 성녀 칭호를 받았다.




키아라의 시신은 1850년 9월 23일 발견됐다. 그런데, 그 보존 상태가 아주 완벽했다고 한다.
1872년 교황 레오 13세가 참석한 가운데 그녀의 시신은 지하납골당에 영원히 안치됐다.




‘산 다미아노 수도원’은 성녀 키아라가 일생동안 수도한 매우 평화롭고 성스러운 장소다.




작은예배당에는 ‘성 다미아노의 십자가’ 가 걸려 있다. 하지만, 이것은 복제품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다 ‘내 집을 고쳐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수도원은 아시시에서는 가장 한가롭고 평화로움을 맛 볼 수 있는 귀한 장소다.




이곳에는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성 프란치스코가 묵상하고 있는 청동상이 하나 있다.




그의 생애를 생각하며 좌상(坐像)을 보니 깊은 감동이 가슴 속으로 몰려 온다.




성 프란치스코인의 유해가 있는 ‘산 프란치스코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성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228년부터 짓기 시작한 성당은 1세기에 걸쳐 공사를 했다.




*성당의 장식은 당대 최고 화가인 치마부에, 조토, 마르티니, 로렌체티 등이 맡았다.




*특히, 조토가 그린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는 이탈리아 최고의 프레스코화 작품으로 꼽힌다.




프란치스코는 프랑스인을 의미한다.




프란치스코는 아버지가 프랑스로 갔을 때 태어났다. 아기의 세례명은 조반니(Giovanni=요한).




그러나 프랑스에서 돌아 온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바꾸었다.




젊은시절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다 아버지에게 상속권을 박탈당했다.




사치스런 옷과 신발을 모두 벋어 던진 프란치스코는 그 때부터 가난한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맨 발로 프랑스, 시리아, 모로코, 이집트 등을 다니면 복음을 전했고 술탄을 만나기 까지 했다.




술탄을 만나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그는 죽음을 ‘자매’라고 부르며 결코 두려워 하지 않았다.




1224년, 오상(그리스도의 몸에 난 다섯 상처)을 받은 후 그는 육체적인 고통을 안고 2년을 더 살았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확인된 공식 오상(五傷)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1226 10월 3일, 54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2014년 8월,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동안 교황청이 공식으로 인정하는 교황은 266명이다.




그 중에서 즉위명을 프란치스코로 쓴 교황은 이번 교황 외에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마피아를 단죄하고 방탄 조끼를 사절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교황 프란치스코.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서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감동의 연주를 했다.




그가 연주한 곡은 프란츠 리스트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863)’였다.



글, 사진: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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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의 이미지(3장)은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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