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86회] VIP참석 자리에 권총 들고간 의혹

2019.07.04


이날 식장 안에는 치안국을 비롯 서울시내 중부ㆍ성북ㆍ성동ㆍ용산경찰서에서 차출해온 경찰관 250명이 배치됐고, 로비 등 국립극장 안팎에 모두 548명의 경찰이 동원되고 있었다. 


여기에 청와대경호실, 중앙정보부에서 나온 요원들까지 더하면 그날 식장주변에는 6백여 명의 경찰, 수사요원이 경비하고 있었다. 


10시 6분 광복절 행사가 시작되었다. 문세광은 경호원과 최 정보과장의 안내를 받으며 왼쪽 로비를 통하여 입장한 후 지정해준 식장 아래층 MBC 카메라 옆의 B열 214호 좌석에 앉았다. 이때의 시각은 애국가 봉창이 막 끝난 후였으므로 10시 13분이었다. 


문세광은 10시 13분에 입장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연설을 시작했고 10분 뒤인 10시 23분 문세광은 좌석에서 갑자기 일어나 경축사를 하던 박 대통령을 향해 총을 쏘았다. 


문세광을 재판한 서울형사지법 6부(재판장 권중근 부장판사)의 사형선고 판결이유서다.(10월 16일)


청중들이 박 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하고 있는 사이에 좌석에서 앉은 채로 허리춤에 은닉한 권총을 뽑으려다가 방아쇠를 잘못 건드려 1탄이 오발되어 피고인 자신의 대퇴부에 관통상을 입게 되자 당황한 나머지 즉시 좌석에서 일어나 좌석 사이의 통로로 나와 연단을 향하여 달려가면서 약 20.9m 거리에서 연설중인 박 대통령을 향하여 제2탄을 발사했으나 연설대 좌측에 맞고, 제3탄은 불발되고, 제4탄은 약 18.0m 전방 단상에 앉아 있는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향하여 발사, 우측 두부에 명중시키고, 제5탄은 관객이 발을 걸어 넘어지는 순간 발사되어 연단 뒷벽에 게양되어 있는 국기에 맞게 함으로써 박 대통령을 살해하지 못하고 영부인 육영수 여사에게 두부관통 총상을 입혀 동일 19시경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부속병원에서 두개골 잡골절 등으로 인하여 서거케 함으로써 국헌을 문란하게 하고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수행할 목적으로 대통령 영부인을 살해한 것이다.


법원의 판결문은 문세광이 쏜 1탄은 범인 대퇴부, 2탄은 연설대 좌측, 3탄 불발, 4탄이 육여사가 맞고, 제5탄이 연단 뒷벽에 게양되어 있는 국기에 맞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경감의 주장은 재판부의 사형언도 판결문 내용을 완전히 뒤엎는다. 다섯발째 실탄이 권총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이 경감이 당시 현장검증을 하면서 확인한 바로는, 제1탄은 오발, 제2탄은 연단, 제3탄은 태극기, 제4탄은 천장이고, 마지막 한 발은 권총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주장이다.


당시 범인이 사용한 권총은 미제 스미신 앤드웨슨 5연발로 확인되었다. 8월 16일 대통령저격 사건 수사본부장 김일두 서울지검 검사장도 문이 범행에 사용한 권총이 미제 스미신 5연발이었음을 확인하면서 범행 때 4발을 쏘고 한 발은 장전된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사건 직후 김성진 청와대 대변인은 1탄은 불발이며 제2탄은 연설대, 제3탄이 육여사를 저격했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각기 다른 발표는 수사본부장과 청와대 대변인이 사건직후에 발표하여 ‘착오’때문이라고 인정하더라도 법원의 판결문은 충분한 시간과, 수사본부와 검찰의 충분한 수사를 거쳐 내려진 판결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경감은 법원의 판결문을 뒤엎고, 문세광이 쏜 총탄에 육여사가 맞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문이 소지한 권총은 다섯 발의 실탄밖에 장전할 수 없었고, 그리고 문세광이 발사한 실탄은 네 발의 탄흔은 확인되었고 나머지 한 발은 권총에 남아 있었다. 육여사를 피격한 실탄은 문의 권총에 없었다는 것이다. 


'대통령 저격사건'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즉각 ‘대통령 저격사건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수사팀은 김일두 서울지검 검사장을 본부장으로 하여 검찰에서 정치근 서울지검 공안부장검사, 김영훈 서울지검 공안검사, 중앙정보부에서 ㅇㅇㅇ 6국장, 경찰에서 김구현 치안국 감식계장과 이건우 서울시경 감식계장 등 6명이었다. 이들 수사본부 요원들은 ‘원칙’에 따라 사건현장인 국립극장으로 달려갔다.(수사본부장은 현장 불참석).


수사본부 요원들은 현장검증에서 우선적으로 탄흔을 찾는 일에 착수했다. 탄흔은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연설대 우측 3분의 2쯤 되는 상단에 한방이 찍혀 있었다. 태극기의 좌측 중간에도 한 방의 탄흔이 나 있었고 천장에도 한 방이 나 있었다. 그러나 이 경감은 탄흔도 탄흔이지만 물적 증거가 되는 탄두를 찾는 일이 시급했다. 


탄흔 주위나 탄흔 속을 살펴보았지만 탄두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이 경감은 단상 구석구석을 이잡듯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탄두를 찾을 수 없었다.


그때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수사본부 요원들을 안내하고 있던 국립극장 소도구주임이 “어젯밤(8월 15일)에 청와대에서 다 쓸어갔다”는 것이었다. 청와대 경호실 요원들이 자정 가까운 시각에 불쑥 나타나 극장 안을 샅샅이 뒤져 쓸어갔다는 설명이었다.


수사본부의 현장검증이 실시되기도 전에 무엇 때문에 청와대 경호실에서 밤 늦은 시각에 그런 ‘청소’까지 했을까.


이 경감과 수사본부 요원들은 하나의 탄두도 확보하지 못한 채 현장검증을 마쳐야 했다. 경축식장에 있는 탄두를 수거해서 육여사를 관통한 총알이 누구의 총에서 발사되었는지 확인해야만 했는데, 현장검증 전에 청와대경호실에서 탄흔을 제거해간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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