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87회] 수많은 미스테리 드러났지만

2019.07.06

체포된 범인 문세광이 경호원들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문세광이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그가 권총을 발사한 사실도 수천 명의 ‘증인’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또 당시 TV도 생생하게 이것을 생중계했다.


문제는 육영수 여사가 누구의 총탄에 맞았느냐 하는 부분이다. 이 경감의 추적대로 문세광의 총탄에 육여사가 맞지 않은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러면 다시 문세광이 경축식장에 나타나기까지의 몇 가지 의혹을 살펴보기로 한다.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이 참석하는 공식ㆍ비공식의 모든 행사에는 금속탐지기를 통해 참석인사 모두를 체크한다. 첨단 고성능의 금속탐지기는 권총은 물론 시계, 만년필까지 쇠붙이라는 것은 모두 걸려드는 고성능이다. 성냥갑 크기 정도의 소형 금속탐지기는 경호실 요원들이 호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상대의 쇠붙이를 정확히 식별해낼 수 있다. 


당시 문세광이 들어온 출입문에도 금속탐지기가 설치되었을 것이고, 앞에서 지적한 대로 당일 청와대경호실, 안기부 요원, 경찰관 등 6백여 명이 동원되어 행사장을 경호하고 있었다. 


문세광은 그런데도 권총을 은닉하고 전혀 체크당하지 않은 채 행사장에 들어올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의혹은 그치지 않는다.


문세광은 사건 당일 투숙하던 조선호텔에서 ‘서울 2바 1091’ 호의 검은 승용차 포드 20M을 타고 행사장에 나타났다. 당시 포드 20M은 일반 시민들에게는 넘보기 어려운 고급승용차였다.


호텔에서는 일반 투숙객에게 택시를 잡아줄 수도 있고 또 승용차를 빌려줄 수도 있겠지만, 특별한 귀빈도 아닌 문세광에게 그만한 고급승용차를 빌려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 경감이 조회한 차량번호 ‘서울2바1091’ 승용차는 등록되지 않은 위장번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수사본부는 문세광이 호텔 측에 부탁해 마침 조선호텔에 들어온 팔레스 호텔 소속 ‘서울2바 1091호(운전사 황수동)’를 타고 식장에 갔다고 발표하면서 국내에 배후는 없다고 단정했다.


문세광이 식장에 출입하면서 화장을 달지 않았다는 점도 의문점의 하나다. 원래 화장은 ‘비표’로서, 초청을 받은 경축객이 통행문을 들어올 때 안내대에 있는 경호관이 화장을 달아주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화장을 가슴에 단 사람만이 경축객으로서 식장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세광은 화장을 패용하지 않고 식장에 들어왔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그러나 육여사가 문세광의 권총에 맞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달리 있다. 육여사가 총에 맞은 관통상의 위치가 바로 그 점이다. 적어도 육여사가 문세광의 총에 피격당했다면, 관통상은 정면이나 약간 오른쪽이 될 것이다. 문세광이 쏜 제1탄의 총성(오발)에 육여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고, 본능적으로 어디에서 총성이 들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면을 보았을 터였다. 그리고 문세광이 달려나가면서 발사한 세 발의 총탄 중 정면 아니면 오른쪽 부위 어딘가를 관통당했을 것이다.


이 경감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부속병원에서 육여사를 수술했던 담당들을 만나서, 육여사가 피격된 두부 부위를 묻자, 담당 최길수 조교수가 ‘두부관통총상(頭部貫通銃傷)’이라 일러주었다. 이 경감이 다시 “두부라면 어느 쪽이냐”라는 질문에 최 조교수와 다른 의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경감은 ‘보이지 않는 힘’이 여기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고 한다.


이 경감이 확인한 서울대병원 수술일지에는 “총탄이 왼쪽 뇌정맥을 꿰뚫어 심했다”고 적혀 있는데, 문세광의 사형선고 판결문에는 “제4탄이 약 18.0m 전방 단상에 앉아 있는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명중시키고”라고 명시되어 있다.


“국헌을 문란하게 하고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수행할 목적”으로 대통령 부인을 살해한 범인 문세광을 현장검증에 내보내지 않은 것도 의혹의 대상이 되었다. 문은 권총을 뽑으면서 오발을 하여 오른발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이었으므로, 결코 총상이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현장검증에 서지 않았다.


당국은 문세광으로 하여금 현장검증을 직접 시키지 않고 대역을 시켰다. 이에 대해 이 경감은 “문세광이 누구에겐가 특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씻어낼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문세광이 특혜를 받았다면 그에게 사형이 집행되었겠는가라는 반문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사회에서 크게 유행했던 ‘토사구팽’이란 고사성어는 이럴 때에 사용되어도 모자라지 않는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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