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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아들 낳지 못하는 팔자

2020.01.21

   

        

          아들 낳지 못하는 팔자


 어느 날 초로의 부인이 따님인 듯한 젊은 여자분과 함께 필자의 사무실을 찾은 일이 있다. 비록 70대의 나이이시지만 교양을 지니고 계셨고, 젊은 시절 꽤나 미인이셨던 흔적을 곱게 늙어가시는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자분이셨다. 자신의 생년월일시를 말하면서 자신의 사주팔자와 명년의 신수를 좀 보았으면 하신다.

사주는 갑신년 병자월 경오일 무인시가 되었고 운의 흐름은 역행하여 을해 갑술 계유 임신 신미 경오 기사로 흐르고 있다.


 일간경금이 수왕지절인 자월에 태어나 인오화국과 병화에 극을 당하니 신약사주이다. 토금이 용신이고 목화는 병신이며 수는 길신으로 보아야 하는 사주팔자이다. 사주격국과 운의 흐름으로 보아 경제적으로는 유복한 삶을 이어왔을 것이며 아마도 쇳소리나는 직업을 통하여 돈을 번 것으로 추정 되었고, 월지자수와 일지오화가 충을 하고 있다. 이렇듯 합과 충을 만나면 딸만 두는 것이 통계상 거의 틀림없으므로 아마도 딸만 넷을 두었을 것이다. 


 대강 이분의 사주를 흩어보고 난 뒤 필자 왈, "같이 오신분이 따님이신 것 같은데 막내딸쯤 되는 것 같군요. 위로는 언니만 셋 있고 오빠는 없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하니 두 모녀 서로 바라보며 눈이 커진 채 놀란 표정이다. 특히 따님은 이곳에서 자란 젊은이 답게 놀라는 표정이 과장되고 솔직해서 너무 귀엽고 약간 우습기까지 하였다. 필자는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딸만두시게 되는 명이어서 젊어서 아들을 가져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겠지만 다 소용없는 헛수고였을 겁니다. 팔자에 없는 아들이 노력 한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요. 허나 이제 아들 열명 둔 사람도 하나 부럽지 않으실 겁니다. 


 사주상 따님들이 모두 총명하고 효심이 강하여 키운 보람을 크게 느끼실 겁니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움 없이 행복한 가정을 꾸려 오신 것 같은데 혹시 쇳소리가나는 직업을 꾸준히 해오지 않으셨나요. 예를 들면 철공소나 기계부품 공장이라던가 방앗간 같은 종류의 업종 말입니다." 라고 하니  "아니 어떻게 그런 것까지 사주에 다 나온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이런걸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한국에서고 LA에서고 수십 곳을 다녀 봤지만 이렇게 쪽집게처럼 나오기는 처음이네요. 저희 남편은 그라인딩(쇠를 갈아서 부품을 만드는) 업을 계속해왔고 먹고 살만한 정도의 돈은 모았습니다. 이제는 그렇지 않지만 젊은시절 남편이 후사가 없다며 노상 시무룩하고 때로는 심통을 부려서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지 모릅니다. 밖에 나가 바람이라도 날까봐 노심초사 하는 세월을 보냈고 아들 낳아 보려고 좋다는 약은 다 먹어보고, 절에 불공이며 무당집에 굿이며 안 해본 짓이 없을 정도로 다해 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팔자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봐요 휴! 세상에 거기다 쏟아 부은 돈이 집 몇 채 값은 넘을 겁니다" 하더니 쑥스러우신지 입을 가리고 웃으신다.


 이분의 남편분은 4대독자이셨다 한다. 그래서 시집 오면서부터 이 부인의 아들에 대한 중압감은 매우 심했다. 임신만 하면 주변 모든 사람이 비상이 걸려서 몸조심 하라며 극진히 보살펴주니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무척이나 부담스럽고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첫딸을 낳았고, 아들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서운했지만 첫아기이니까 금방 서운함을 잊어버렸고, 두번째 딸을 낳았을 때는 당황스럽고 남편과 시집 식구들에게 미안함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고, 세번째 딸을 낳았을 때는 너무 억울해서 엉엉 울어 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에 네번째를 출산했을 때 딸이라는 소리에 저 멀리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감을 느끼고 죽고 싶을 정도로 낙담했다 하신다. 네번째 딸을 낳고 나서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눈치 꾸러기가 되었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괜히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설움 속에 많이 울었다 한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은 계속 승승장구하여 경제적으로 유복하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남편도 아들에 대한 기대는 체념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이 네명의 딸들이 매우 총명해서 첫째와 둘째 딸은 전문의사가 되어 첫째, 둘째 사위도 의사인 의사부부가 되었고 세번째 딸은 타운 내에서 누구라고 하면 알 수 있을 정도의 유명한 변호사가 되었고 남편은 유명대학 교수다. 네번째 딸은 특히 애교심이 많아서 자라면서 아빠를 홀딱 홀려 놓았다 한다. 애기 때 막내딸을 데리고 출근 하기도 여러 번이었고 퇴근하면 막내딸 보고 싶어 어디 저녁약속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한다. 이제는 막내딸도 커서 바이얼러지를 전공하고 있는데 내년 졸업 후 첫째, 둘째 언니처럼 의대공부를 하려 한다고 한다. 모두 명랑하고 똑똑하며 엄마 아빠에게 효심이 강해 말 그대로 이제는 '열 아들 안 부럽다' 고 하신다.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떠한가 지금은 다 옛날 이야기 같은 지난 시절 아들선호사상이 낳은 사연이었다.


필자가 연세 드신 여성 고객 분들을 보며 절실히 느낀 점은 엄마는 늙어서 반드시 딸이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 늙어갈수록 딸은 절친한 친구와 같은 관계가 된다. 남편이나 아들하고 말 못할 고민도 딸과는 나눌 수 있고, 같은 여자로서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딸이 없고 아들들만 있는 분들은 딸 가진 엄마가 너무도 부럽다고들 하신다. 사실 요즘 세상에는 무뚝뚝한 사내자식들 키워봐야 소용없다!  딸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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