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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미음 한 그릇에 승지를 얻다!

2020.02.29



   

             미음 한 그릇에 승지를 얻다!  


 유지현(柳志鉉)은 이른바 ‘똥꾸멍 찢어지게’ 가난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선비였다. 당당한 양반가문이지만 영락하여 밥 굶기를 밥 먹듯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추운 겨울이면 먹지 못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추위를 견뎌야 했다. 먹을거리도 없는데 땔감은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기 때문 이였다. 아내가 정 죽겠으면 친정을 찾아가 양식을 얻어와 한동안 견디기도 했지만 이것도 한 두 번이지 반복되다보니 눈치가 보여 더 이상 찾아가 사정하기도 어려웠다. 하여 부인은 남편에게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견뎌 낼까 걱정입니다. 친척이나 친구들을 찾아가 돈이나 양식을 좀 빌려 오구려!”라고 청하면 유지현은 들은 체도 안했다. “명색이 뼈대 있는 양반이 굶어 죽으면 죽었지 어찌 체면을 버리고 그런 짓을 할 수 있소?” 한심한 양반체면 타령만 했다. 


눈보라가 치는 어느 겨울날 저녁 세조대왕을 모신 광릉인근에 있는 유지현 집에 거지꼴을 한 한선비가 문을 두드렸다. 눈보라를 피하려는 길손 이였다. “날이 너무 추워 얼어 죽게 생겼으니 하룻밤만 눈보라를 피해 가게 해주시면 너무 고맙겠습니다.”라는 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집이 곤궁하여 방이 모두 냉골인데 어쩌지요?”라고 하니 “눈과 바람만 피하면 족하니 과히 염려 마십시오.”라는 대답 이였다. “그렇다면 들어오시지요.” 초라한 모습의 선비 이지만 자세히 보니 태도가 의젓했다. 손님이 들었으니 응당 대접을 해야 하는데 대접 할 것이 없었다. 어렵게 미음 한 그릇을 겨우 장만하여 선비의 몸을 녹이게 했다. 비록 미음 한 그릇이지만 주인의 정성 어린 대접에 감사하며 선비가 유지현에게 말한다. “제가 재주는 없으나 오랫동안 역술을 공부하여 일천한 재주나마 있으니 사주팔자를 한번 봐드리면 작은 보답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 생년월일시를 제게 주어 보십시요!” 유지현의 사주팔자를 뽑아놓고 한 참이나 아무 말 없이 들여다 본 뒤 선비 왈 “문 앞에 있는 소나무들을 당장 모두 베어 버리고 기다리시면 내년 한식날 능참봉(능을 지키는 종9품 말단벼슬)이나마 되 실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내년 칠월칠석날 큰 비가 내릴 것이니 이때 깨끗한 옷을 입고 子時(밤11시~새벽1시)에 세조대왕 능 앞에 가서 통곡을 하십시오. 그리면 큰 벼슬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허튼 소리라고 생각마시고 잘 기억해 두었다가 꼭 그대로 하십시오.”라고 한다. 유지현은 꼭 명심하겠다고 답했고 선비는 다음날 길을 떠났다. 


유지현은 선비의 말대로 대문 앞의 소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렸다. 집 앞이 탁 트이게 되었고 그 나무들을 땔감으로 써서 그해 겨울을 춥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대대로 살아온 집이고 선조들이 심어 놓은 나무들이여서 함부로 베어내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리했다. 다음해 한식날 예종이 아버지인 세조대왕의 능에 거동했다. 능으로 향하던 예종의 눈에 낮선 집 한 채가 보였다. 예종은 연(임금의 가마)을 멈추게 하고 신하를 불러 물었다. “짐이 여러 차례 이 길을 왕래했지만 저 집은 오늘 처음 보는구나. 저 집이 누구의 집인고?” 소나무 때문에 보이지 않던 집이 예종의 눈에 띄게 된 것이다. 잠시 후 의관을 정제한 유지현이 왕 앞에 부복했다. “신 유지현 현신 아뢰오!” 유지현은 긴장하여 땀을 뻘뻘 흘렸다. 예종은 유지현의 가문에 대해 묻고 이런 명문가 자손이 영락하여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쓰였다. “그대의 소원이 무엇인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지현은 전에 선비가 했던 말이 떠올라 “광릉 능참봉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예종은 “그래? 그거 참 잘됐구나. 마침 능참봉 시킬 사람을 찾던 차에 그대가 그런 소리를 하니 참 신기한 인연이구나!” 이렇게 해서 능참봉이 된 유지현은 한시도 광릉 주위를 떠나지 않고 능 관리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그러던 중 칠월이 되었는데 가뭄이 극심하여 온갖 곡식들이 말라 죽을 지경 이였다. 예종은 “오늘이 칠석날이니 칠석물(칠석날에 내리는 비)이 내려야 하는데 하늘이 저 모양이니 어찌한단 말인가?” 안타까운 마음에 예종이 광릉으로 거동 하였다. 부왕의 능 앞에 엎드려 가뭄에 눈물짓는 백성들을 구해 달라고 빌기 위해서였다. 예종의 어가가 임시로 마련 된 별궁에 막 도착했을 때 다행이도 갑자기 먹장구름이 몰려들더니 “쏴아”하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안도감을 느낀 예종은 밤이 이슥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비는 계속해서 세차게 내렸다. 예종이 자다가 문득 잠에서 깨었는데 문득 부왕의 생전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고 효자인 예종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높은 산 위에서 혼자서 비를 맞고 계신 대왕마마는 얼마나 춥고 외로우실꼬?’ 예종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쏟아져 통곡했다. 자기만 따뜻한 이부자리 속에 누워있는 것이 죄스러웠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능을 지키는 능참봉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설마 나처럼 누어 잠이나 자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다가 선전관을 불러 벽에 걸려있는 상방검을 주면서 말했다. “지금 당장 능참봉 집으로 가서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와라. 만약 술에 취해서 있거나 계집을 품고 있다면 불문 곡직 하고 베어버려라.” 급한 어명을 받은 선전관은 억수를 맞으며 유지현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때 유지현은 관복 차람으로 산 위에 올라가 세조 능 앞에 엎드려 통곡을 하고 있었다. 허탕을 친 선전관이 그 집 상노아이에게 물으니 유지현은 초저녁 때부터 관복을 입고 능에 갔다고 이야기했다. 유지현을 찾아 산 위에 오른 선전관은 능 앞에서 엎드려 통곡하는 유지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전관이 “이 폭우 속에서 무얼 하고 있는거요?”라고 물으니 “나는 능참봉이라는 중책을 맡은 사람인데 이렇게 비바람 치는 날 어찌 편하게 집에 있을 수가 있겠소? 대왕께서 이 비바람 속에 홀로 계시니 안타까워 울고 있었소!” 선전관은 감탄하여 “참봉은 참으로 만고에 보기 드믄 충신이시요!”라고 했다. 


선전관에게서 보고를 받은 예종은 몹시 감동했다. “어허, 그런 신하를 잠시나마 의심한 짐이 매우 부끄럽다!” 억수 속에서도 부왕의 묘를 그토록 정성껏 보살펴주는 능참봉이 한 없이 고마웠고 마음도 놓였다. 이튿날 예종은 유지현의 벼슬을 높여 주었다. 종9품인 미관말직 능참봉에서 종3품인 승지를 제수했다. 말 그대로 ‘어마 어마한 벼락출세’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거의 굶어 죽기 직전에 갑자기 능참봉이 되고 또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꿈도 꾸지 못할 승지가 된 유지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 이였다. 이래서 ‘사람팔자 시간문제’라 했나보다. 


                           자료제공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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