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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굶어 죽을 상(相)

2020.02.28



                     굶어 죽을 상(相)


 관상은 사람의 안면 모습과 골격, 수족 등의 생김새와 표정, 음성, 기타 행동거지와 동작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모습에 따라 그이의 성격과 선악 등을 판단하고 수명과 질병, 빈부, 귀천 등과 미래의 길흉을 판단하는 일종의 점법이다. 

 조선시대 때 문장에 뛰어났던 유생들의 관상을 보고 이 특징을 집약한 <지인명감 知人明鑑>이 있고 언문으로 쓰인 것으로는 <물형관상 物形觀相>이라는 책자가 전한다.

 우리나라에 있어 관상 풍속은 고려시대부터 성행했는바 그때의 대신 복지공(伏智公)은 사람의 용모로 그 인물을 간파하거나 그 사람의 운명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맞히어 유명했고 유생원 또한 이름난 관상가였다. 

 조선시대에는 관상의 대가 정충신(鄭忠臣)이 유명한데 그는 광해군을 좌천시키는 반정을 꾸미던 충무공과 정금난을 보고서 훗날 옥가마를 맞이할 것이라 예언했는데 과연 그대로였다 한다.

 또 다른 이로 한죽당 윤임(尹姙)도 관상에 능했는데 손녀를 위해 13세의 추레하고 보잘것없는 거지아이를 데려다 손녀사위로 삼았다. 이에 며느리는 아무리 가난한 과부의 딸이어도 엄연히 뼈대 있는 가문의 여식인데 어떻게 이렇듯 보잘것없는 아이에게 시집을 보내냐며 개탄하였으나 윤임이 본 관상대로 이 사위는 얼마 있지 않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영의정까지 이르렀고 당시에는 엄청나게 오래 살아 77세까지 장수했다 한다. 

 필자의 경우 명리학과 주역으로 운명을 감정하나 태어난 시(時)가 불분명한 사람이나 태어난 생년월일시가 정확치 않은 이의 경우 관상으로 운명을 감정하고 있다. 


 중국 한나라 때 문제(文帝)라는 임금은 ‘등통(登通)이라는 사람은 반드시 굶어 죽을 상(相)이다.’라고 세상에서 이름이 뛰어난 예언가들이 너도 나도 말을 하기에 ‘어떻게 생긴 인물이기에 그런가?’하는 의문이 들어 어명으로 등통을 불러들이라 명했다.

 문제 앞에 꿇어앉은 등통은 웬일인가 싶어 긴장된 얼굴로 문제의 용태만 곁눈질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문제는 등통의 얼굴을 들라하고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조금 못생긴 얼굴이다 뿐이지 어떤 특별한 인상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능하다는 이름난 관상가를 불러들여 등통이 듣지 못하게 귓속말로 “저 사람이 세상에서 말하듯 반드시 굶어 죽을상이요?”라고 묻자 관상가도 귓속말로 “예! 반드시 굶어서 죽을 관상입니다.”라고 답했다. 문제는 운명론을 믿지 않는 임금이었기에 “왜 저 사람이 굶어죽을 상인지를 설명해 보시오!”라고 했다. 

 이런저런 관상의 논리를 끌어들여 열심히 설명을 했건만 문제는 이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등통이 만약 굶어죽지 않을 시에는 내가 반드시 네 목을 치겠다. 이래도 자신할 수 있느냐?”라고 겁박했음에도 관상가는 “등통은 반드시 굶어죽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문제는 관상가가 괘씸하고 운명론을 믿지 않았기에 “그러면 저기 앉아있는 등통이 굶어죽을 팔자라지만 국왕인 내가 굶어죽지 않도록 재산을 주어 의식주를 풍족하게 해줄 것이다. 이래도 끝내 등통이 굶어죽을 팔자라고 주장하겠느냐?”라고 한 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관상가를 바라보았다. 당황하는 관상가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관상가는 “한번 굶어죽을 팔자를 타고난 사람이 재산을 하사 받는다고 굶어죽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재산을 주시어 등통이 굶어죽지 않는 운명으로 바뀐다면 생명(운명)을 돈(재물)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결론이 되어 결국 운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국왕이라도 사람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합니다.”라고 답하며 끝내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대단한 확신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일개 관상가와 국왕이 입씨름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몹시 상했고 어떡하든 ‘이놈을 굴복시켜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관상가를 옥에 가두어 두고 만약 관상가가 미리 예언한 날짜에 등통이 굶어죽지 않으면 목을 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등통에게는 갑부가 될 수 있는 돈산을 하사했다. 이 돈산은 구리가 생산되는 동산(銅山)으로 가만히 있어도 엄청난 돈이 생기는 산이어서 돈산으로 불릴 정도로 매장량과 생산량이 높은 광산이었다. 

 등통은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고집 쌘 관상가로 인해 갑자기 거부가 된 것이다. 관상가가 등통에게 이런 행운을 주려 자기주장을 고집한 것도 아니지만 등통에게는 어부지리가 된 것이다. 이렇듯 세상일은 생각지도 않았던 어떤 기운에 의해 갑자기 횡재를 하거나 관상가처럼 횡액을 당할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운명의 오묘함이다. 

 옥에 갇혀있는 관상가는 임금에게 등통이 굶어 죽는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이런 지경이 되자 무척이나 당황했고 ‘이제 죽을 날만 남았구나! 아이고~ 내 주둥아리를 바늘로 꿰매고 싶구나. 괜히 똥고집을 부려 명을 재촉했구나! 그런데 나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닌데 어찌 이런 일이 벌어졌지?’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편 등통은 갑자기 갑부가 되어 궁궐 같은 집에 부리는 종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할 만큼 호위호식을 누리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등통이 굶어 죽을상이라고 평했던 많은 관상가와 예언가들은 할 말을 잃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등통이 굶어 죽을만한 이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자 많은 이들이 “운명은 무슨 개뼉다귀 같은 운명이야? 돌팔이 예언가나 역술인 관상가들이 지들 밥 벌어 처먹으려고 없는 운명 운운하며 돈을 뜯어냈던 거야! 이런 놈들은 당장 잡아다가 죄다 목을 잘라야해!”라고 하며 세상 여론이 험악하고 떠들썩해졌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등통이 굶어죽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등통이 이런 호위호식을 하며 살아가다 갑자기 병에 걸렸는데 희한하게도 절식(絶食)을 해야만 하는 즉 음식을 넘기지 못하는 희한 야릇한 희귀병에 걸려 끝내 굶어죽고 말았다. 관상가가 예언한 그날이었다. 하루하루 감옥에서 똥줄이 탔던 관상가는 풀려났고 국왕의 사과와 함께 위로금을 하사받고 전화위복이 되었는바 이일 이후 더 유명해져서 손님이 메워 터졌다고 한다.

 

               자료제공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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