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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日辰 (일진-그날의 운세)

2020.04.06



               日辰 (일진-그날의 운세)



 이씨 조선 광해군(光海君)때 참판 벼슬을 하던 김치(金緻)는 사주 명리학에 천성적인 소질을 지닌 이였다. 어느 날 자신의 사주팔자를 면밀히 검토해보니 머지않아 파직당할 운세이고 앞으로 대북이니 소북이니 하여 당파싸움이 심해질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시끄러운 이런 시절을 피하기 위해 파면 당하기 전에 스스로 참판 벼슬을 그만두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사주학 연구에 몰두했다. 

 공부가 더 깊어졌을 때 또다시 자신의 사주팔자 속 명운(命運)을 보니 자신이 머지않은 47세를 전후하여 북망산천유객(北亡山川幽客)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참으로 난감했다. 인명은 재천(在天)이니 어쩔 수 없지만 이루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허망하게 죽게 되는 것이 억울했다.

 이때 간명록을 자세히 보고 주역의 괘(卦)를 짚으니 수성면액(水姓免厄) 즉, 물 수(水)자가 들어있는 성씨의 사람을 만나면 죽음을 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운명학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덕행을 많이 쌓아 어려운 사람을 많이 구해주면 액을 다소나마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산에서 내려와 어려운 사람들의 사주팔자를 무료로 봐주며 생계가 곤란한 이들을 보면 어떡하든 도와주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는 水(수)자가 들어있는 귀인(貴人)을 만날 수 있는가 아니면 이대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지를 주역팔괘로 정단해보니 다음 달 초승에 심씨(沈氏) 성을 지닌 사람이 찾아올 것으로 진단되었다. 김치는 주역의 판단에 따라 초승이 되자 심씨 성을 가진 이가 찾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심씨 성을 가진 이가 찾아올 경우 물(水)은 음성(陰性)에 해당되므로 양성인 낮 시간대보다는 음성인 저녁 무렵이나 한밤중에 찾아올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하루해가 저물고 어둠이 짙어지자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며 김치를 만나볼 것을 청하는 이가 있었다. 하인의 안내를 받아 방에 들어선 이는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 농사꾼이나 장사치로 착각할 수 있으나 손마디가 매끈하고 얼굴 생김이 결코 험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손님은 김치의 예리한 시선을 은근히 피하며 자신을 소개한다. “저는 벽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인데 앞으로의 저의 운세가 어떤지 알고 싶어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름은 심기원(沈器遠)이라 합니다.” 심기원은 김치에게 자신의 생년월일시를 말한 뒤 자신의 운세 감정을 요청했다.

 김치는 심기원의 사주팔자를 하얀 백지에 적어놓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말이 없었다. 초조해진 심기원이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제 사주팔자만 들여다보고 계시면 어떡합니까? 뭐 좋지 않은 운세라도 보여서 그러십니까?”라고 묻자 김치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라를 뒤엎는 큰 대사(大事)가 그대 앞에 펼쳐지는 것이 보여 너무 놀라서 그랬습니다.”라고 답한다. 

 심기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치에게 큰절을 하며 예의를 차린 뒤 “과연 듣던 대로 대단하십니다. 과연 반정에 성공할 수 있을는지요?”라고 하며 반정음모에 가담한 김유, 이귀, 이괄 등 반정 동료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시를 가르쳐주며 면밀히 이들의 운세도 함께 감정해 줄 것을 부탁한다. 

 김치는 이들의 사주를 면밀히 살펴본 뒤 “이 사람들은 얼마 아니해서 판서나 정승이 될 수 있는 귀격(貴格) 사주에 해당합니다.”라고 답했다. 심기원은 희망적인 이야기에 기분이 좋은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소맷자락 속에 깊이 숨겨놓은 비단에 쓰여진 생년월일시를 말없이 내밀었다. 김치는 백지에 비단에 쓰여진 생년월일시에 따라 사주팔자를 뽑아놓고 들여다 보다 깜짝 놀라 돗자리를 깔고는 그 사주팔자 앞에 큰절을 올렸다. 김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심기원은 김치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김치에게 “그 사주팔자 되시는 분은 능양군 이시고 거사 날짜는 3월 22일입니다. 그날의 일진도 한번 보아 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김치는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하며 거사 날짜인 3월 22일을 짚어보더니 “그날은 지금의 왕(광해군)에게 유리한 날이어서 불길합니다. 지금 일진을 짚어보니 3월 12일이 능양군(후에 인조)에게 유리하고 지금의 왕(광해군)에게 불길한 날이니 다른 날 보다 성공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거사 일자를 변경하시는게 좋다고 봅니다.”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심기원은 동료들과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 하였고 결국 거사일은 3월 22일보다 열흘 앞당겨진 3월 12일로 정해졌다. 결국 반정은 성공했고 능양군이 새 임금(인조)에 올랐다. 광해군은 폐왕이 되어 쫓겨나고 만다. 인조반정이라 불리게 된 이 사건은 1623년 (광해군 15년) 3월 12일 서인일파가 광해군 및 집권파인 대북 파를 몰아내고 능양군(인조)를 새 임금으로 세운 정변이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대북 파를 기용하여 개혁적인 정책을 펴 나갔다. 그러나 적자가 아니었던 광해군은 형제들을 죽이고 대비를 유폐하였고 당시는 오랑캐라 여기던 후금을 명과 대등하게 보고 균형 외교를 펼쳐 명분보다는 실리를 챙기는 정책을 펼쳐 중화사상에 물든 서인들의 불만을 사게 된다. 

 서인 세력은 세력을 규합해 선조의 손자 능양군을 왕위에 올리기로 하고 반정을 일으켰다. 당시 훈련대장 이흥림이 성문을 활짝 열어 반군을 맞아들인 것이 쉽게 반정에 성공하는 큰 요인이 되었다. 

 김치는 이 공로로 경상 감사에 제수되어 다시 벼슬길에 오르게 되나 자신이 죽을 시기라고 여기던 시기보다 3년을 더 살다가 죽게 된다. 죽음에 이르러 김치는 “인간이 아무리 날뛰어도 천수는 어쩔 수 없으니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어도 겨우 3년밖에 연장이 안 되는구나. 공연히 헛수고(?)를 했구나!”라고 한 뒤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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