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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억울해서 죽겠어요!

2020.04.28



           억울해서 죽겠어요! 

 

 우리나라 꽃들 중에는 희한한 이름을 지닌 꽃들이 많은데 ‘며느리 밥풀 꽃’ 이란 꽃도 그중의 하나이다. 이 꽃은 입술모양의 도톰한 붉은 꽃 아래에 밥풀 같은 흰 망울이 두 개 맺혀있는 형상이어서 도톰하고 섹시한 입술을 지닌 여성이 밥을 먹다가 밥풀이 입술 아래쪽에 묻어있는 것처럼 보여 ‘밥풀 꽃’이라는 이름은 수긍이 가는데 왜 하필 며느리 밥풀 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여기에는 슬픈 꽃 사연이 전해진다. 


옛날 한 궁박한 산골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집에 며느리가 들어왔다. 거친 밥 한 그릇 제대로 배불리 먹을 수도 없는 시골집이여서 늘 허기에 시달리는 살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특별히 운수가 좋아 쌀을 조금 얻게 되었다. 식구들은 모두 기뻐하였고 모처럼 맛볼 수 있게 된 쌀밥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다. 밥을 짓던 며느리가 밥에 뜸이 들었는가를 보기위해 주걱으로 밥알을 조금 떼 내어 맛을 보려는 순간 시어머니가 들이 닥쳤다. “이년! 이 죽일 년 같으니라고! 시애미하고 남편이 눈 시퍼렇게 뜨고 지키고 있는데도 몰래 밥을 먼저 처먹고 있다니 이런 죽일년이 있어?” 하고는 다듬이 방망이를 두들겨 팼다. “아이고! 아니예요 어머니! 밥에 뜸이 들었나 몇 알 깨물어 보려했던 것 뿐이예요.” 라고 아파 비명을 지르니 “이년이 입술에 밥풀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데도 그런 거짓말을 해. 이년 어디 혼좀 나봐라!” 하고는 죽도록 두들겨 팼다. 


악독한 시어머니였던 것이다. 며느리는 쌀밥 구경도 못하고 맞은 곳이 탈이나 끙끙 며칠을 앓았다. 하지만 아픈 곳은 정작 몸도 몸이지만 가슴이었다. 윗사람도 몰라보고 먼저 공양할 생각 없이 몰래 먼저 밥을 훔쳐 먹은 못된 며느리이자 여편네라는 누명을 쓴게 너무도 억울했다. 비록 지금은 몰락했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누구누구의 자손’ 이라하면 알아주던 양반 가문의 여식으로서 이런 촌구석에 팔리다시피 시집오게 된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이런 누명까지 쓰니 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며느리는 분함을 참지 못하고 대들보에 목을 메고 말았다. 그 후 며느리 무덤가에 생전 처음 보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모양이 여자의 입술처럼 붉은 꽃잎 아래에 밥풀이 달린 형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은 며느리의 혼이 이런 형상의 꽃으로 피어났다하여 ‘며느리 밥 풀 꽃’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와 상반되는 유사한 사연이 있어 여기에 소개해보면 이렇다. 


K할머니는 필자의 오랜 고객이시다. 젊어서 혼자되신 이후 3남매를 혼자서 억척스럽게 훌륭히 키워내신 분이시다. 위로 아들 둘을 낳고 막내인 딸아이가 여섯 살 무렵 의사이던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기가 막히고 막막한 심정이였지만 남편이 남겨준 유산이 다소 있었고, 시가가 여유가 있던 집이여서 ‘재가하지 않고 애들을 키워준다면 다소간에 도움을 주겠다’ 는 제안에 응하여 그리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3남매를 양육할 수 있었다. 시집의 도움은 있었지만 마냥 시댁만을 기댈 수 없어 시작한 식당이 나름 잘되어 다행이었고 큰 보탬이 되었다. 큰 아들은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었고, 둘째아들은 MBA를 졸업 후 잘나가는 애널리스트가 되어 미국 굴지의 유명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어 의사인 형보다 벌이가 몇 배나 많았다. 막내딸은 오빠들만은 못하지만 고등학교 선생이 되어 각자 자신들의 생활에 열심이었다. 둘째 아들과 막내딸은 시집을 갔건만 의사인 큰 아들만 짝을 찾지 못해 애태우시더니 드디어 명문대를 졸업 후 법대를 거쳐 변호사로 활동 중인 인물도 이쁘고, 똑뿌러지게 똑똑한 큰며느리를 보고서 “선생님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먼저가 있는 영감한테도 이제는 모든 것이 떳떳합니다.” 라고 하며 눈시울까지 붉히셨었다. 


그런 K할머니께서 그 후 필자를 찾아와 땅이 꺼져라 큰 한숨부터 내쉬시는 거였다. 그러시고는 “내 살다 살다 이런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같은 년은 처음입니다. 처음부터 저는 선생님 충고대로 지들하고 같이 안살겠다고 했어요! 그건 선생님도 알고 계시는 사실이잖아요? 억지로 같이 살자고 해놓고는 아주 교묘하게 나를 식모 취급하는 거예요. 처음 우리아들 궁합을 보시고 월령이 상극이니 다른 거는 다 좋은데 고부간에 화합이 문제라고 하셨던게 기억이 나서 저는 웬만하면 좋은게 좋은거라는 생각에 마음에 안드는게 있어도 무조건 참아 주었죠! 그런데 이년이 아들하나 낳아 놓더니 기가 팍 살아 올라서 사람이 갑자기 확 달라지지 뭡니까? 이래라! 저래라! 시애미인 저에게 잔소리까지 해대고 손주 녀석 먹이는 음식가지고도 얼마나 저를 구박하는지 몰라요. 무식하대나? 뭐라나? 영양개념이 전혀 없어서 큰일이라고 하면서 아랫사람 나무라듯이 혀까지 쯧쯧 차는 거예요! 


아니? 아무리 막돼 처먹었어도 시애미한테 혀까지 차는 년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참다 참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아들놈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더니 그 착한 우리아들이 그 여우년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그만 좀 하세요!’ 라고하며 인상을 쓰지 뭡니까? 아들놈도 그년의 모함에 완전히 넘어간 거예요! 그리고 내가 하지도 않은 행동이나 말을 했다고 누명을 씌우는 거지 뭡니까? 아이고 이걸 어쩌면 좋아요? 우리 착한 아들이 그럴 정도면 이년이 나를 얼마나 모함했는지 선생님도 짐작이 가실 겁니다. 아이고~ 억울해서 어떡하나!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K할머니의 넋두리를 조용히 들어드리다 보니 꽃 하나가 생각났다. 이른바 ‘시어머니 밥풀 꽃?’ 이라고 해야 하나?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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