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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불길한 태몽(胎夢)

2020.05.10



                   불길한 태몽(胎夢)


 태몽(胎夢) 이란 뱃속에 아이를 가진 산모 또는 가까운 주변 가족이 출산에 즈음하여 꾸는 꿈 또는 임신을 전후하여 태어날 아기에 대한 내용이 담긴 꿈을 가르킨다. 보통 태어날 아기의 용모. 성격. 장래등 과 연관된 내용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정여립의 아버지 정희중은 대대로 전주 남문밖에 살고 있었다. 여립을 잉태 했을때 고려시대 의종때 무신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정중부를 꿈에서 보았고 여립이 태어날 때에도 같은 꿈을 꾸었다. 친구들이 정희중의 득남을 축하 했으나 희중은 기뻐하지 않았다. 태몽이 영 ~ 꺼림직 했던 탓이다. 여립이 여덟살 때 였다. 아이들과 놀며 까치새끼를 잡아 주둥이 부터 발끝까지 뼈를 부러뜨리고 살을 찢었다. 나중에 정희중이 그것을 보고 물었다. “누가 이런못된 짓을 했다더냐?” 한 여종이 대답했다. “도련님이 그랬습니다.” 이말을 듣고 희중은 아들을 불러 심하게 나무랐다. 

그날밤 고자질한 여종의 부모는 방아를 찧으러 나가고 여종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때 여립은 칼로 여종의 배를 갈라 죽였다. (어린놈이 잔인하기 이를데없다) 여종의 부모가 돌아와 끔찍한 광경을 보고 발을 구르며 통곡을 터트렸다. 동네 사람들이 이 끔찍한 사태에 놀라 모여들어 웅성거렸다. 이때 여립이 나타나 당당히 말했다. “내가 죽였으니 괴이 쩍이 여기지 마시오!” 모였던 사람들은 여립의 당당하고 뻔뻔한 태도에 치를 떨었다. “틀림없이 악질 장군이 될거야.” 모두들 수근거렸다. 너무 어린놈의 짓이고 상대가 천민인 노비 였기에 어찌어찌 사건은 무마 되었다. 이후 정희중이 현감이 되어 부임 했다. 

 그런데 십여세인 여립이 아버지를 따라가 그 고을을 제 마음대로 다스렸다. 여립이 이치에 밝고 천문 지리에 통달하여 미래를 예견하는 눈이 뛰어나 아전들이 하나같이 정식 현감인 아버지 정희중 보다 여립의 말을 따르니 아버지인 희중은 혀를 찰뿐 별 도리가 없었다. 리더쉽이 아주 뛰어났던 것이다. 이후 과거에 급제한 뒤 이이 의 문하에 출입하여 실력을 인정받아 명망이 꽤나 높아졌다. 그러나 이이 가 죽고 동인이 조정을 장악 하게되자 동인편에 서서 동인이 증오하던 자신의 스승인 이이를 비난하고 동인들의 후원 아래 수찬 벼슬을 지냈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선조의 눈에 거슬려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 갈수밖에 없었다. 이후 많은 선비들을 접촉하는 동안 학식과 미래를 보는 능력을 인정받아 명성이 계속 느높아 갔다. 정여립은 역술에 능하여 장차 나라에 변이 일어날것을 알고 기회를 타서 난을 일으켜 보려고 야심을 키웠다. 

그는 늘 “천하는 공물(公物) 이니,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리오, 요, 순, 우가 임금을 서로 전한것은 성인이 아닌가.” 라는 말을하고 다녔다. 정여립은 전주 . 금구 . 태인등 이웃 고을의 여러 무사들과 공노비 . 사노비등 . 까지 결집시켜 대동계 (大同契) 라는 계를 조직하여 매월 보름이 되면 계원들이 모두 정여립의 집에 모여 활쏘기등,을 연습했다. 여립은 측근 수하들과 황해도 구월산 등 여러산을 두루 돌아 다녔고 돌아 오는 길에 충청도에 들러 계룡산을 구경하고 페사된 절에서 하룻밤 묵으며 시 한수를 지어 벽에 붙여 놓았다. ‘남쪽나라 두루 다녔더니 계룡산 에서 눈이 처음 밝도다. 뒤는 말이 채칙에 놀란 형세요, 고개돌린 용이 조산 (祖山: 풍수용어)을 돌아보는 형국이니 아름다운 기운이 모였고, 상사로운 구름이 나도다. 무 (戊) . 기 (己) 양년에 운수가 열릴 것이니 태평 세월을 이룩하기 무었이 어려우랴!’ 

야욕을 불태우는 시 였다. 그는 옛부터 내려오는 정감록 내용 ’木子 (목자 李) 는 망하고 전읍 (鄭.정)은 흥한다’ 즉, ‘이씨는 망하고 정씨는 흥한다’ 는 글을 목판에 새겨 수하인 중 의연을 시켜 지리산 석굴속에 감추어 두게하고 뒷날 수하들과 지리산 구경을 갔다가 우연히 목판을 발견한것 처럼 꾸몄다. 동행한 수하들은 이에 현혹 되어 정여립을 ‘시대의 운기에 맞춰 태어난 사람’ 이라 굳게 믿게 되었다. 또 정여립은 중 의연과 함께 자기집 후원에서 뽕나무 껍질을 갈라 말갈기를 박아놓고 두어 시간뒤 뽕나무 껍질이 굳어지게 한뒤 “뽕나무에 말갈기가 나면 그집 주인은 임금이 된다” 는 동요를 몰래 유행 시켰다. 여립은 이웃 사람들이나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후원의 말갈기를 보여주며 짐짓 “이것을 본 사람은 어디가서 이말을 발설하면 천기누설 을 하는것이니 입 조심 하시오:” 라고 하며 입단속을 시키는 척했다

그러나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이모든것이 정여립의 고도의 술법 이였던 것이다. 정여립은 기축년 (1589) 에 황해도와 전라도 지방에서 일제히 군사를 일으켜 바로 서울을 덥치려고 했다. 황해도 구월산의 중 들도 후원하는 자가 많았다. 구월산 중인 의암이 이 사실을 알고 재령군수 박충간 에게 밀고 했으나 박충간은 진위를 의심하고 주저하여 나서지 못했다. 이후 안악교생 조구가 자신이 정여립의 제자라며 도당을 모아놓고 술을 자주마시는 행동이 수상 적었던 안악군수 이축이 조구를 잡아 족치자 조구는 사실대로 털어 놓았다. 이리하여 황해 감사를 통해 장계가 황급히 조정에 올라갔다. 처음에는 조정에서도 이 장계의 진위를 놓고 갑을 박론이 많았으나 드디어 금부도사와 선전관 등이 정여립을 채포 하기위해 출발 했다. 정여립은 죽도로 숨어 들었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불길한 태몽대로 살다간 것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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