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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무서운 私債(사채)

2020.06.04



 

                     무서운 私債(사채)



 김씨 부부는 참으로 착하고 성실한 분들이다. 어려운 가정의 장남, 장녀로 태어나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고 어린 나이에 함께 일하던 공장에서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정식 결혼식을 올릴 형편이 못되었고 첫째 아이가 태어난 후에야 혼인신고만을 마쳤다. 부부 양쪽 다 딸린 어린 동생들이 많았고 이들의 뒷바라지에 살림이 필 날이 없었다. 자기들 먹고 살기도 팍팍한 여건에서 동생들 뒷바라지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못본채 할 수도 없었고 형이라고 언니라고 오빠라고 누나라고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피붙이들을 외면하기에는 이들의 심성상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낮에는 세차장에서 일하고 밤이면 스페어 택시기사로 일했고 부인은 온종일 식당에서 일을 하고 난 뒤 집에서는 틈틈이 인형 눈깔 붙이기, 구슬 목걸이 만들기, 봉투 붙이기 등등 부업에 매달렸다. 워낙 성실한 사람들이다 보니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작은 목돈을 만들 수 있었다. 

 평소에 부인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음식 솜씨가 좋다고 칭찬을 많이 들어온 터라 이들 부부는 큰 꿈을 안고 동네 한 구석에 테이블 4개 겨우 놓을 수 있는 작은 식당을 개업하게 되었다. 콧구멍만한 작은 가게이지만 맛있다는 소문이 나서 처음에는 제법 짭짤하게 재미가 있었다. 

 태어나 처음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남편이 세차장에서 일하다 그만 손을 다치는 사고가 났다. 당시는 요즘처럼 산재나 보험처리가 가능한 시대도 아니었기에 남편은 아무 보상도 못 받고 자비로 병원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했다. 병원비를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부인은 언젠가 길거리에 뿌려져 있던 전단지를 보고 망설였다. 전단지에는 ‘급전대출. 아주 싼 이자. 누구나 당일대출.’이라는 문구가 써 있었고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하고 돈이 필요하다 하니 즉시 가게로 사람이 찾아왔다. 그 사람은 “식당을 하는 분이니 매일매일 수입이 되니까 일수를 쓰시면 되겠네요!”라고 친절히 안내를 해주었다. 200만원을 빌리는데 수속비조로 20만원을 먼저 떼고 180만원을 주면서 매일 2만 2천원씩 100일 동안 갚아 나가면 된다고 하고 일수장부를 내주었다. 그날그날 수금하러 온 사람에게 돈을 주고 도장을 찍게 해서 갚는 방식이라 했다. 

 장사라는게 잘되는 날도 있지만 안되는 날은 파리만 날릴때도 있는 법인데 100일 동안 하루도 안빼고 착실히 이 돈을 납부하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며칠씩 일수 찍는 것을 밀리면 여기에 연체료를 또 부과했다. 연체하는 일이 잦아지자 일수쟁이는 아예 돈을 더 빌려서 먼저 꿔간 돈을 다 갚고 새로 일수도장을 찍자고 제안했다. 자꾸 연체할 때마다 사정사정하기도 미안했던 터라 이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300만원을 새로 빌리는 것으로 하고 수속비조로 30만원을 떼고 먼젓번 꾼 돈을 청산하고 나니 몇만원 밖에 손에 남지 않았다. 빚만 늘어난 꼴이었다. 

 이런 식으로 1년이 되자 빚은 순식간에 엄청난 금액으로 늘었고 이제는 감당하기가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자꾸 일수 납입이 지연되자 일수쟁이는 거칠게 김씨 부부를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이른바 ‘일수 똘마니’라 불리는 사채 깡패들이 집에 찾아와 신발도 벗지 않고 신은채로 쳐들어와 소리소리 지르며 욕을 하고 어떤 놈은 돈 갚기 전에는 이집에서 못나간다며 지집인냥 샤워를 하고 시꺼먼 것을 덜렁덜렁 내놓은 채 드러눕기도 했다. 견디다 못해 파출소에 신고를 해도 소용없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민사사건이니 조용하게 타협들 하세요!”라고 한 뒤 가버리기 일쑤였다. 이렇게 되자 사채 깡패들은 더 기가 살아서 난리를 쳐댔다. 돈을 구해 빚을 갚아 보려해도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전세 들어 사는 집 전세 계약서로 돈을 꾸어준다는 곳이 있어 가보니 전세 보증금을 담보로 목돈을 빌려주는데 단서 조항이 집주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집주인이 보증인 되는 셈이었다. 어느 집주인이 이를 쉽게 동의해 주겠는가? 그래도 세 들어 살아오면서 집주인과는 아주 가깝게 지내던 사이이기에 몇날 며칠을 사정사정하여 ‘채무자가 채무를 변재 못할시 집 임대인이 임대 보증금 범위 내에서 대신 변제한다.’는 서류에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일수 사채를 갚고 나니 매일매일 일수도장 찍어야 하는 올가미에서 벗어난 것 같아 속이 시원했으나 더 큰 시련이 다가온다. 일수도장 안찍는 대신 매달 월말이 되면 사채이자로 목돈을 마련해야 했다. 사채업자보다 집주인이 더 안달이었다. 혹시라도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봐 걱정이었던 것이다. 월말도 되기 전에 집주인이 나서서 “이자 준비 되었어? 다른건 몰라도 그 사람들 이자부터 챙겨야해!”라고 하며 사채업자 꼭두각시를 자처하는 듯했다. 자기가 보증을 섰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최악의 경우라도 집주인은 전세 보증금 범위 이내에서 책임을 지기로 했으니 전세 보증금만 사채업자에게 빼주면 될 터인데도 혹시나 다른 피해가 있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아휴!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봐! 내가 미쳤지! 어쩌다가 사채보증을 다 섰나 몰라!”라고 칭얼대는 주인집 아주머니 소리에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김씨 부부는 가게는 물론 집에서도 전세 보증금 한 푼 돌려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처지가 됐다. 김씨 부부가 거지꼴로 친구 집 방 한 칸을 빌려 눈치 보며 살고 있을 때 LA에 이민와 살고 있던 김씨 부인 사촌언니가 이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비행기 표까지 보내주며 이들을 미국으로 불렀다. 사촌언니는 이곳 LA에서 큰 식당을 운영 중이었는데 믿고 일을 시킬 수 있는 ‘내 사람’이 필요했던 터라 평소 이들의 성실함을 주변에서 늘 들어왔기에 그리 된 것이다. 


 필자가 상담을 하며 놀란 것은 이곳 미국에서도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거였다. 이자도 보통 이자가 아닌 이른바 ‘고리 대금업’ 자들에게 시달리고 협박 받는 이들이 많은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법이 공정하고 엄하다고 느낀 이곳 미국에서 사채 깡패들에게 시달리고 협박받는 교포들을 볼 때 참으로 답답했는데 나중에 누군가로부터 듣고 보니 캘리포니아주 법상 2500불인가 얼마 이상 되는 채권 채무 관계에는 이자 제한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 했던 기억이 있다. 

 필자의 고객 중 한분은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 신문 광고를 보고 한 사채업자를 찾아 갔는데 집문서를 담보로 잡히고도 월 1할로 이자(월 천불이 이자였다.)를 내고 그 돈을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 미국이나 한국이나 사채는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무튼 김씨 부부는 이곳 LA로 와서도 계속 성실했고 사촌누이에게 충성을 다해 온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월급도 제대로 못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세상이 다 그 모양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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