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gudowon님의 다른글 더 보기 :: 총 1042
목록 닫기목록닫기 목록 열기목록열기
문화/창작

종(鍾)에 대한 애절한 옛 이야기 둘.

2020.06.12



                   종(鍾)에 대한 애절한 옛 이야기 둘.


 신라시대 때 손순은 모양리 사람이며 아버지는 학산이다. 아버지가 죽자 손순은 아내와 함께 남의집에 품을 팔아 양식을 얻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 하였는데 몹시도 가난에 시달렸다. 어머니의 이름은 운오 였다. 손순 에게는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늘 철없게도 할머니의 음식을 빼았아 먹었다. 운오도 배고파 쩔쩔매는 손주가 가엾어 자신은 굶어도 어린 손주를 먹이곤 했다. 손순은 이를 민망히 여겨 아내와 의논 하였다. “아이를 다시 얻을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구할수 없소, 그런데 아이가 어머니 음식을 빼았아 먹어 어머님은 굶주림이 심하시오. 그러니 아이를 땅에 묻어서 어머니를 배고프지 않게 모셔야 겠소” 둘은 의논 끝에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업고 취산 (이산은 모량리 서북쪽에 있다 한다) 북쪽에 들어가서 땅을 파다가 이상한 석종을 얻었다.

 부부는 놀라고 괴이히 여겨 잠깐 나무위에 걸어놓고 시험삼아 두드려 보니 그 소리가 너무도 은은하여 들을만 했다. 아내가 말하였다. “이상한 물건을 얻은 것은 필경 아이의 복 인듯 싶습니다. 그러니 이 아이를 묻어서는 안되 겠습니다” 남편도 이말을 옳게 여겨 아이와 석종을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을 들보에 달고 두드렸더니 그 소리가 대궐까지 들렸다. 법흥왕 (신라의23대 임금)이 이 소리를 듣고 좌우 에게 말했다. “ 서쪽 들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나는데 맑고도 멀리 들리는 것이 보통 종소리가 아닌듯 하니 빨리가서 조사해 보아라!” 왕의 지시를 받고 왕의 사자가 그집에 가서 조사해 보고 그 사실을 자세히 아뢰니 왕이 말했다 “옛날 곽거가 아들을 땅에 묻자 하늘에서 황금솥을 주었더니 이번에는 손순이 그 아들을 묻으메 땅속에서 석종이 나왔으니 전세의 효도와 후세의 효도를 천지가 함께 보시는 구나!” 이에 집 한 채를 내리고 해마다 벼 50석을 주어 순후한 효성을 승상 하였다. <삼국유사 제5권>

 * 곽거는 중국 한나라 사람으로 집은 가난 하였으나 효성이 지극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매양 그 음식을 손자에게 나누어 주기 때문에 굶주리자 아내와 의논하여 자식을 땅에 묻기로 하였다. 땅을 석자 가량 팠더니 황금솥 한개가 나왔다. 그리고 그솥 위에는 붉은 글씨로 [하늘이 이것을 곽거에게 준다] 고 쓰여 있었다 한다. 

또 하나의 종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옛적 평양부 대신 궁전행 전차를 타고 종로 정류장에 하차 하면 우측에 공동변소가 있는데 그 뒤편에 주토로 만든 낡고 작은 집이 있는바. 이것은 평양 명승의 한 종각 으로서 그 안에 큰 종이 있다. 이 종은 약 500년전에 주조된 것인데 당시 백성들이 귀한 피와 땀의 결정체라 할수있다. 이종이 종각에 안치되기 전에는 대동문 수각위에 있었는데 평양 6문의 개폐 명령을 전달한 아주 중요한 역활을 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위치에 이전 하고는 이 종에 엃힌 가련한 전설도 거의 잊혀서 가고있다. 종이 주조될 당시 여러해 동안 가뭄이 계속 되어온 터라 백성들은 심한 기아에 허덕였다. 그래서 자연 그 가운데 만들어진 이 종에는 여러 희생이 수렴 되어 있다. 그때의 감찰관도 눈물을 머금으며 기부금 봉납을 명령 하였다 한다. 그 중에도 가장 가련한 자를 비참한 희생물로 바쳐야 만 했던 한 비극적인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평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내와 아들 세식구와 사는 가난한 농가가 있었다. 그들은 할당된 기부금을 낼 처지가 못되었다. 그렇다고 명령을 어길수도 없는 지라 생각 끝에 나이들어 얻은 사내 아이를 기부금 으로 대신 하겠노라고 울면서 호소 하였다. 이에 감찰관은 이들을 가엾게 여기고 기부금을 면제해 주었다. 

 그후 그렇게 모인 기금으로 이름난 장인의 손을 거쳐 종이 제작되어 누각위에 올려졌다. 모두들 멋진 종소리를 기대하며 그곳에 입회 하였으나 기이하게도 종이 울리지 않았다.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한 장인이 유명 역술인 에게 달려가 까닭을 물으니 동쪽에 있는 5세된 사내 아이의 피를 부어 넣지 않으면 종이 끝내 울리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이에 장인이 이러한 사실을 감찰관 에게알렸다. 그러자 감찰관은 짚이는 구석이 있어 무릅을 쳤다. 안타깝지만 일단 면제해 주었던 사내 아이를 다시 데려와 종을 다시 녹이고 그 끓는 쇳물에 아이를 집어넣고 종을 다시 주조 하였다. 그제서야 맑은 종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마치 어머니를 부르는 듯한 애잔한 울음 소리 같았다. 하여 이 슬픈 종 소리를 들은 십리 사방의 백성들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셨다 한다. (전설술례. 1926년 7월 6일 경성일보)

 위 기사에서 다룬 일명 에밀레 종은, 정식 명칭은 성덕대왕 신종 이다.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범 종이다. 설화에 따라 에밀레종 이라 하며 봉덕사 종 으로 부르기도 한다.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 국보 제29호로 지정 되었다. 높이 3.75m 이며 두께는 11~25cm 이며 무게는 18.9톤 이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 신종 이라고 불렸다. 설화에 따르면 이 종을 주조할때 가난한 집에서 시주한 아이를 넣고 주조해서 아기 울음소리 비슷하게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해서 에밀레 종 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위 의 두 옛 이야기를 통해 종(鍾)과 효(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노모를 위해 자식을 묻으려 했던 부모나, 바칠 공물이 없어 아이를 시주했던, 부모의 심정은 과연 어떠 했을까? 무지 했지만 슬픈 이야기가 아닐수 없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좋아요
태그
인기 포스팅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