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스님 영조대왕으로 태어나다!
사도세자의 아버지인 영조대왕의 전생에 관련된 일화이다. 팔공산 파계사에는 영조대왕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내려져 왔는바 이 실화는 인간의 윤회와 전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조선숙종은 억불정책을 강화하여 승려의 도성출입을 금지시켰고 스님들에게 부역을 과도하게 시켜 신음토록했다. 이때 팔공산 파계사에서 도를 닦던 용파스님은 일을 이대로 두어서는 아니되겠다 생각하고 도성에 올라와 위정자들을 만나 파계사의 승려들만이라도 과도한 부역에서 벗어나게 해달라 간청하여 이를 성사시키려는 원(願)을 세우고 한양으로 갔다. 그러나 성문을 지키는 군졸에 막혀 남대문 앞에서 제지당하기를 여러 날 이런 날이 반복되어 3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어찌해볼 방도가 없던 용파(龍坡)스님은 부처님의 자비를 비는 기도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숙종임금이 꿈을 꾸었는데 남대문 밖 여염집 위에 청룡과 황룡이 찬란한 광명이 되어 하늘로 솟구치는 꿈을 꾸었다. 신기한 꿈에 숙종은 어전 별감을 불러 꿈속에서 본 남대문 밖 여염집의 모습을 설명한 뒤 그 집에 있는 사람을 데려오라 명을 내렸다. 어전 별감이 그곳을 찾아보니 한 스님이 기도에 빠져 있었다. 이가 바로 용파 스님이었다. 어전에 부복한 용파 스님을 보고 숙종이 한양에 온 연유를 물은 즉 승려들의 부역문제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에 숙종은 “앞으로 사찰에 폐되는 일들을 없게 해드릴 터이니 스님의 소원은 이미 해결되었고 스님도 나의 소원을 하나들어 주시오” 라고 하였다.
용파 스님이 숙종임금의 소원을 물은 즉 “임금 자리를 이을 세자의 탄생을 기도해주시오!” 라고 하였다. 용파 스님은 임금에게 허락을 구한 뒤 자신과 함께 기도에 임할 경지가 깊은 스님을 물색하던 중 마침 한양에 와있던 농산(聾山)스님을 기도에 함께할 스님으로 숙종에 천거하였다. 드디어 두 스님은 수락산 내원암에서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기도 중 용파 스님이 깊은 선정에 들어서보니 임금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길은 자신이나 농산스님 둘 중 하나가 죽어 임금을 이을 사람으로 태어나는 방법뿐이 임금 자리를 이을 사람이 태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용파 스님은 자신이 희생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했으나 본사인 팔공산 파계사에 해 놓고 가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아 이를 두고 갈 수 없어 근심이었다.
해서 농산스님에게 의논하였더니 농산스님 역시 이 사실을 선정 속 알고 있었고 농파 스님 역시 자신이 희생하고 싶으나 후에 임금이 되어야 하는 것이 싫어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용파 스님이 “나는 본사(本寺)에 일이 많아 형편이 안되니 어쩌겠습니까? 농산스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후에 임금 자리에 올라 백성을 위하고 불교를 위해 주십시요!” 라고 하며 간청하였다. 내대신 니가 죽으라는 이야기였다. 농산스님은 ‘허허’하고 웃은 뒤 말이 없다가 결심한 듯 “내가 나라를 위한 기도로 인(因)을 심었더니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과(果)가 벌써 돌아왔다” 하더니 혼자말로 “내가 출가한 것은 대도(大道)를 이루기 위함이었지 임금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었는데 어쩌랴~ 인과의 법이 엄연하니 어쩔 수가 없구나” 라고 하며 이 청을 받아들였다.
백일기도 회향일 저녁 농산스님은 제자들이 둘러싸여 임종을 하게 되는데 ‘어찌 50년씩이나 지겹게 망건을 쓰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라고 크게 탄식한 뒤 입적했다. 세자 탄생기원 기도가 끝나자마자 기도스님이 입적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숙종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두 스님 사이에 오간 대화를 들은 뒤부터는 말없이 태자탄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인 1694년 왕자가 탄생하였고 숙종임금은 이에대한 답례로 왕실위패를 파계사 경내에 모시게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유생들의 행패와 부역의 폐해를 막아주었고 스님들의 도성출입을 자유롭게 했다. 당시는 유생(유교의 도를 쫓는 선비)들이 절에 쳐들어와 고기구어 먹고 술 마시며 스님들을 놀리고 행패를 부리는 일이 허다한 숭유억불의 시대여서 스님들의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태어난 왕자는 농산스님이 예언한대로 52년 동안이나 재위에 머물렀으니 이이가 바로 영조대왕이다. 영조는 임금이 된지 14년이 지나 1740년 12월에 용파대사(용파스님)가 머문 파계사 원통전을 중건하고 관음보살상을 개금하면서 자신이 입고 있던 도포를 복장유물로 넣었다. 이 도포는 1979년 관음보살상 개금때 발견이 되어 이 윤회전생사실을 일깨우게 된다. 이 도포는 우리나라 중요민속자료 제 2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조대왕은 용파대사와 농산대사의 간절한 기원과 농산대사의 희생으로 현생의 왕이 되었으니 이 두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뒤로 불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선대인 숙종 때 보다도 억불정책을 더욱 완화하였다한다. 자신의 전생이 농산스님이라는 스님이였으니 전생의 나를 현생의 내가 핍박하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을 것이므로 이는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어느 날 문득 길을 걷다가 처음 와보는 이곳이 전에 꼭 보았던 길 같은 느낌이 들때나, 어떤 사람들과 만나거나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이 장면이 전에 언젠가 꼭 겪었던 느낌을 받을 때 자신이 전생에 겪었던 일들이 아닌가 하는 이상한 느낌을 누구나 다 한번쯤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데 Reincarnation(환생)한 자신의 전생의 기억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할 수 없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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