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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집안 망조든 정승

2020.10.04





            집안 망조든 정승


 조선말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일(李裕元)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의 별장이 경기도 양주 가오곡에 있었는데 한양에서 80리 길이였다. 그런데 가오곡 80리 거리를 왕래하도록 모두가 그의 밭두렁 이였다. 이유원은 다른 사람의 땅을 한 평도 밟지 않고 자기 땅만 밟으며 별장을 오고갔다. 엄청난 땅 부자였던 것이다. 이곳 별장은 기화괴석(奇花怪石)으로 꾸며 놓았는데 보기 드문 귀한 꽃과 특출한 모양의 돌들을 전국에서 사들여 모아 꾸민 것 이였다. 그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뽑아 남장을 하게하고 그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호사가였다. 또한 음란시설까지 은밀히 갖추어 놓고 남장을 한 동녀(董 女)들과 즐겼다. 그의 아버지 이계조가 사신으로 북경에 갔을 때 북경에서 이름이 드높아 조선에까지도 알려졌던 유명역술인을 찾아 아들 이유원의 사주팔자를 보았다. 


역술인 왈 “이 아이는 일생에 의식주가 풍족하여 재물이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 큰 부자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나 벼슬을 하되 절대 정승의 자리에는 오르지 않아야합니다. 만일 정승의 자리에 오르면 크게 욕된 삶을 살게 되어 망신을 당하고 집안에 민망한 변고가 있을 겁니다!”라고 예언 하였다. 하여 이계조는 임종할 때에 이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벼슬은 하되 절대로 정승의 반열에는 오르지 마라. 내 말을 허투이 듣지 말고 명심 또 명심하여야 한다. 알겠느냐?” 다짐에 또 다짐을 한 뒤 이계조는 숨을 거두었다. 이유원은 아버지의 유언을 명심했다. 그 후 이유원이 벼슬길에 나가 벼슬이 점차 높아지자 정승에 대한 욕심은 굴뚝같았지만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이유원을 정승에 임명하려 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사양했다. (이유원은 정승자리가 아까워 흘리는 눈물 이였으나 고종의 눈에는 겸손한 신하의 충정으로 보았다.)


하지만 고종이 수차례 강권하자 슬며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께서 임종 시 그렇게도 간곡히 유언하셨지만 그 북경 점쟁이 말이 꼭 맞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끝내 이유원은 정승자리를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가 정승에 오르자 고종은 이유원을 매우 총애했다. 이유원은 세도가인 민승호와 결탁하여 병부 열두 개를 차는 권세와 명예를 얻었다. 병부 열두 개를 찬 이유원의 집에는 청탁을 위해 그를 찾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벼슬자리하나 얻으려고 소나 나귀에 비단이나 귀중품, 엽전 괴짝을 바리바리 실어 나르는 행렬로 그의 집 앞은 장터와 같았다. 이상학이란 이가 태조의 능인 건원릉 영(令)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이유원이 별장에서 동녀들과 질탕하게 즐기며 쉰 후 서울로 올라올 때 건원릉 밑에 사는 이상학을 방문했다. 


때마침 이상학에게 은어를 같다준 사람이 있었는데 아직 이 은어를 반찬으로 만들지 않은 참이라 세도가인 이유원을 대접하기 위해 이상학은 하인에게 “안에 들어가 은어를 회로 만들어 술상을 차리라 일러라!”고 했다. 이유원은 “이 근처에 은어가 나는 곳이 없을 터인데 그 귀한 것을 어찌 내가 먹겠소! 회를 만들지 말고 산채로 날것으로 그냥 가져오라 하시오!” 이 말에 “뭘 하시게요?” 이상학이 물으니 가져와보면 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유원은 버들가지를 꺾어 오게 하고 은어를 꿴 후 포장을 하고 그 위에 ‘이유원 진상품’ 이라고 썼다. 그리고 하인을 시켜 즉시 고종에게 진상을 하게 했다. 남의 은어를 가지고 진상을 하려면 ‘이상학 진상품’이라 써야지 자기이름으로 얌체 짓을 주인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할 정도로 이유원의 아부는 심했던 것이다. 


이상학은 한탄했다. “그런 짓을 어찌 대신이라는 자가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니 온 나라 관리들이 재물을 탐하여 경쟁하지 않겠는가!” 이유원은 세자가 어렸을 때 어떤 놀이 개든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자 동궁으로 가서 다람쥐를 바쳐 주위로부터 빈축을 샀다. 이유원의 아들 이수영이 풍기가 있었다. 이수영이 과거에 급제를 하고 세도가 김병학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이수영은 얼굴에 종기가 심하여 냄새가 지독했다. 김병학은 옆에 앉아있던 손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누가 이 정승의 아들이 병들었다고 합디까? 오성대감이 또 한분 나셨습니다. 그려!” 오성대감은 옛날 명재상 백사 이항복의 자이다. 이수영이 중풍기가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오성은 오성(五成)과 음이 같으므로 ‘중풍이 다섯 가지 색채를 띠고 있구나!’라고 조롱한 셈 이였다. 이수영은 벼슬을 하다가 애비인 이유원보다 젊은 나이에 일찍 먼저 죽었다. 


외아들인 이수영이 자식도 없이 죽었으니 代(대)가 끊어진 것이다. 할 수없이 이유원은 대를 잇기 위해 양손을 들였다. 이수영의 자식으로 입적시킨 것이다. 그런데 양손이 양어머니인 죽은 이수영의 아내와 나이가 비슷했다. 비슷한 나이에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가 된 것이다. 이수영의 아내는 양아들을 보고 자식이 생겨 그런지 매우 상기되어 기뻐하는 모습 이였다. 양손도 매우 공손하고 예절바른 모습 이였다. 둘은 매우 다정하여 틈만 나면 서로를 챙기고 아껴주었다. 이 모습에 이유원도 흐뭇했다. 그런데 집에서 부리는 종들의 태도가 수상했다. 뭔지 모르지만 이상한 기운이 집안에 도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유원이 웬지 잠이 오지 않아 집안 이곳저곳을 홀로 서성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며느리의 방 이였는데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며느리가 고된 시집살이에 병이 나서 그런 거 아닌가? 걱정이 되어 자세히 들으니 이는 남녀가 잠자리를 할 때 나는 교성이었다. 이유원은 격노했다. ‘어떤 놈이 우리며느리하고 정분이 났구나! 이 연놈들을 당장 때려 죽여야겠다! 우리아들 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바람을 피워?’ 문짝을 걷어차고 방에 들이 닥치자 어떤 놈이 며느리를 깔고 끙끙대다가 기겁을 하곤 쳐다보는데 아뿔싸! 이놈이 양손 이었다. 양손이 양어머니인 이수영의 아내와 정분이 나버린 것이다. 모자가 음행을 저지른 것 이였다. 망신 중에도 개망신 개차반 집안이 되고 만 것이다. 이유원은 창피한 줄도 모르고 고종에게 아뢰었다. “전하, 신의 손자가 그의 어머니와 간통하였사와 양손을 파기해야겠사옵니다. 윤허하여 주십시요!” 함께 있던 대신들이 낯이 뜨거워 외면해 버렸다. 실록에 실려 있는 엄연한 사실(事實)이다. 늙어서 돈만 많으면 뭐하는가? 이정도면 차라리 기품 있는 가난한 선비가 백번 좋은 팔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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