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gudowon님의 다른글 더 보기 :: 총 1044
목록 닫기목록닫기 목록 열기목록열기
문화/창작

사업을 하면 안 되는 팔자

2020.10.06

 



                 사업을 하면 안 되는 팔자


 50代 중반의 부부가 필자를 찾았다. 남편은 네모난 각진 얼굴에 입술이 두텁고 콧대가 완고하여 한고집하는 사람이라는 짐작이 갔다. 이에 반해 부인은 매우 나긋나긋해 보이는 청순가련형의 미모를 지녔다. 남편의 사주팔자를 적어놓고 감명해보니 신약사주 구성이어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좋은데 운로를 보니 직장인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큰 굴곡이 대여섯 번이나 보여 이런저런 사업을 벌려 크나큰 곤혹을 여러 번 치렀을 듯 했다. 부모궁을 보니 일간 일지와 충(沖)이 있어 부모덕 없는 팔자이니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고난을 겪으며 성장했으리라. 머리는 총명하고 학령기운이 좋으니 고학하며 좋은 대학을 나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형제궁 또한 충이 되니 부모, 형제와는 화합하지 못하고 외톨이로 지냈을 성 싶다.  반면 부인의 사주팔자를 풀이해 보니 조상궁, 부모궁과 합이 있고 여기에 용신(用紳)이 거하니 아주 부유한 조상과 부모 밑에 태어나 귀하게 자란 분임을 알 수 있었다. 

 

남편분 사주 속에 유일하게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배우자 복이 있다는 점이었다. 남자 사주에 있어 처복은 매우 중요하다. 배우자 복이 있다함은 인생의 50% 이상의 운이 좌우되기에 속된말로 ‘절반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여서 그렇다. 처복이 있다함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는바. 처가댁이 매우 부유하여 처갓집 덕을 보는 경우와 또는 처가 아주 능력이 있는 여자여서 처덕에 먹고 살 수 있는 경우 그리고 끝으로 처가 현모양처여서 처의 극진한 후원과 공경을 받고 살게 되는 것을 처덕 있는 사주팔자라 할 수 있다.  이분의 경우 첫째와 셋째 처덕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필자 왈 “남편분께서 이런저런 사업을 벌려 큰 곤혹을 여러번 치루셨겠습니다. 재물이 처궁에서 나오니 처가 덕을 여러 번 보셨을 것 같고 남편분은 아주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며 고학 하였겠으나 머리가 총명하고 학령기운이 좋으니 좋은 대학을 나오셨을 듯합니다.” 라고 하니 두분 다 눈을 크게 뜨시고 “그런게 사주팔자에 다 나옵니까?” 라고 한다. 


남편은 충남 공주 출신이고 부인은 서울 토박이이시다. 가난한 농부의 6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남편은 가난한 환경이지만 머리가 총명하고 근면하여 학창시절 반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한다. 대학을 갈 엄두도 못내고 있는데 이곳 시골 고등학교 출신으로 처음으로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합격한 이분을 교장선생님이 안타깝게 여겨 공주 유지 여러분을 찾아다니며 호소하여 유지 몇 분의 후원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향토장학금’을 받은 셈이다. 이후 이곳저곳 아르바이트와 과외지도를 하며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졸업 후 삼성에 취업이 되었다. 워낙 성실하고 총명하니 회사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고 취업 동기중 항상 제일먼저 승진하게 된다. 문제는 부모, 형제들이었는데 월급날만 되면 찾아와 회사 인근 다방에 진을 치고 앉아서 손을 벌렸다. 부모님 아니면 이번에는 첫째형, 다음날은 큰누나, 그 다음날은 둘째형이 오는 식으로 무슨 계타먹는 식으로 순번을 정해 찾아오는듯했다. 견디다 못해 거절하니 “애미, 애비도 없는 놈! 형제애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보기 어려운 상놈의 새끼!” 등등 욕을 바가지로 퍼붓고는 의절을 했다. 이분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지만 그래도 속은 쓰렸다. 


이런 와중에 부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처가에서 사돈집이 너무 빈한하다 하여 꺼렸지만 사윗감만은 매우 반듯한 직장에서 잘나가고 있고 사람도 성실해 보여 미덥지만 승낙을 했다.  결혼 후 5년쯤 지나서인가 갑자기 장래가 촉망되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부인이 펄펄뛰며 말렸지만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처음에 시작한 사업이 모래 사업이었다. 친구와 함께 시작한 이 사업은 동업자간의 분쟁에 휘말려 파산하고 만다. 이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직장생활로 돌아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또 마침 재취업의 기회도 있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자회사(子會社)를 설립하는데 이분의 직장경험이 여기에 맞춤하여 그런 제의가 왔었다. 재취업의 기회라는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내의 권유를 물리치고 재기를 도모한다. 이번에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해서 납품하는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다. 이 분야에 경험이 많은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이 사업을 이른바 ‘땅짚고 헤엄치기’ 라고 하며 성공을 장담한다. 사업자금을 얻으려 아내를 앞세우고 처갓집에 가서 사정을 하니 장인어른이 노발대발 하셨다. “이놈아! 보리가 서 말이면 처갓집 덕을 안 본다는데 네놈은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그렇게 말려도 제 고집대로 하더니 이제 와서 뭔 개수작이야?” 장모님과 큰형님이 겨우 장인을 뜯어 말리고 난 뒤 모멸감에 씩씩거리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안절부절 몸 둘 바를 모르고 애타했다. 다행히도(?) 장모님이 이리저리 수완을 부리셔서 꽤나 큰 목돈을 사업자금으로 내놓으셨다.


두 번째 사업인 자동차 부품 사업은 처음에는 순풍에 돛 단 듯이 술술 잘 풀렸다. 아내에게 “이것 봐! 내가 틀림없다고 했잖아!” 라고 큰소리를 치며 호기도 부렸다. 헌데 어느 날인가 제품에 하자가 있다고 물건이 반품되었고 온갖 신경을 써서 재 납품한 제품도 또 다시 빠꾸가 된 뒤 거래처를 바꾸겠다는 사형 통보 같은 날벼락을 맞는다.

 두 번째 사업도 망했다. 이때는 남편도 기가 꺾여 한 6개월 방구석에 처박혀 꿈쩍을 안했다. 보다 못한 아내가 당시 대형 고급 식당을 여럿 운영하던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고 언니의 조언대로 작은 식당을 해보기로 했다. 백화점 푸드코트의 작은 일식집을 언니 주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2~3년간 그런대로 먹고살 만큼 영업이 유지 되었는데 어느 날인가 식당에서 회덮밥을 단체로 먹은 손님들이 집단 식중독을 일으켰고 그중 한명은 죽고 만다.  또다시 쫄딱 망했다. 감옥에 가기 일보직전까지 갔었다. 골방에 또다시 처박혀 폐인이 되어가는 남편에게 아내가 제안했다. “한국은 우리한테 재수가 없나봐! LA에 사는 둘째 언니한테 가보자. 거기서 다시 시작해보자. 여보!” 이리하여 부부는 LA에 건너오게 된다. 처형 부부는 LA에서 큰 HOTEL이나 백화점등에 식품을 납품하는 꽤나 규모가 큰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서 1년 정도 일을 거들어 주다 처형의 권유로 작게나마 식품 납품업을 시작한다. 부인은 이때도 반대했다. 그냥 언니 회사에서 주는 월급이나 받아먹고 살자고……. 고집 센 남편은 불굴의 의지로 또 다시 도전했고 또 다시 망했다. 이번에는 거래처가 하나 둘 떨어져나가 장사가 안 돼 망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꽃가게를 해보겠다 한다. 내 밑천 없이 꽃가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며……. 또 망했다. 


이러는 동안 세월은 흘러갔고 그 싱싱하던 젊음은 어디로 가버리고 머리에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었다. 필자를 찾아왔을 때 남편은 나이지리아 쪽에 한방에 거액을 거머쥘 수 있는 사업이 나왔다며 자신의 운을 묻고 싶어 찾아온 것이었다.  필자의 충고는 “제발 그냥 계세요! 또 망할 겁니다.” 였다. 이 양반 필자를 노려보며 똥 씹은 얼굴이 됐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좋아요
태그
인기 포스팅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