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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아들죽고 그 다음날 죽고 싶어요!

2020.10.23




                아들죽고 그 다음날 죽고 싶어요!


 ‘天崩之痛(천붕지통)이라는 말이 있다. ‘天崩之痛(천붕지통)이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말한다. 이 말은 자식이 먼저 죽었을 때 일반적으로 쓰여 지는 말이다. 세상에 태어나 부모에게 범할 수 있는 최악의 不孝(불효)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일일 것이다. 허나 기가 막히게도 아들이 자기보다 먼저 죽어 주기를 바라는 기가 막힌 사연의 어미가 있었으니 이분이 필자의 오랜 고객이신 곽 여사님이시다. 


곽 여사님은 처녀 때 한국에서 유치원 교사를 했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강남의 이름 있는 사립유치원에서 괜찮은 대우를 받으며 근무했다. 그러다 미국으로 이민간 여고동창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도미했다. 복슬복슬한 귀여운 얼굴과 새하얀 고운피부 그리고 여성스러운 수줍음에 반한 남편이 1년 가까이 수없는 편지 공세에다가 툭하면 핑계를 대고 한국을 드나든 노력 끝에 이루어진 결실이었다. 남편은 중학교시절 부모님을 따라 이민 오게 되었고, 공부에는 별 소질이 없어 커뮤니티칼리지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도와 집에서 하던 리커스토아를 관리하고 있었다. 규모가 꽤나 큰 가게였기에 종업원도 꽤 여럿이었고, 물건 구입과 진열, 캐시어 관리 등 무척이나 바쁜 업무를 하고 있었다. 


몇년만 더 착실히 아버지를 도와주면 작은 가게를 내주겠다는 부모님의 언질도 있었기에 남편은 신이 나서 정열적으로 일했다. 남편과의 사이에 아기가 태어났고 아들이었다. 행복한 결혼생활이 계속되었다. 헌데 약속한 기간이 지나도록 가게를 내줄려는 눈치가 보이지 않자 망설이던 끝에 아버지에게 남편이 넌지시 물어보자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하셨다한다. 형이 의대 졸업 후 의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형 병원을 차려주어야 하니 몇 년 더 기다리라고 하셨다. 두 형제를 둔 시부모님은 어려서부터 공부 못하는 남편보다는 형을 유난히 편애했고 음식에서부터 옷 입히는 것 까지 차별을 두었다한다. 그 이유는 ‘장남이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여기에 더하여 공부까지 잘하니 항상 큰 아들이 먼저요, 작은 아들은 집에서 부리는 짐꾼 같은 취급이었다.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같은 요구를 다시하자 이번에는 형 병원을 확장해야하기 때문에 돈이 모자라서 안 된다고 했다. 


여기서 남편이 폭발했다. 눈이 확 뒤집힌 남편은 시아버지를 내동댕이치고 잘난 형에게 따진다며 형네 집에 찾아가 시비 끝에 형네 집을 다 때려 부수고 칼까지 들고 설치다가 ‘살인미수’로 경찰에 체포되었고 긴긴 수감생활에 들어간다. 재판 때 시부모님들은 변호사는 커녕 면회 한 번 안 갔고 ‘그런 망나니 불효자식은 평생감옥에서 썩어야한다’ 고 극언까지 했다.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으로 겨우 꾸려가던 생활이 곤두박질쳤다. 시부모님은 모른척했다. 잘난 큰 아들과 며느리, 큰아들 자식들만 그들의 아들이요 며느리고 귀여운 손주들이었지 곽 여사는 며느리도 아니고 곽 여사님 아들은 손주 취급도 안했다. 친정집에 사정사정해서 생계를 이어갔는데 친정집도 형편이 좋지 않은지라 매번 그럴 수도 없고 해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스왓밋시장 골목에 나가 양말을 팔았다. 


어떤 이의 소개로 양말 공장을 알아내서 그곳에서 양말을 받아다가 좌판을 벌린 것이다. 추우나 더우나 살기위해 하루도 거를 수가 없었는데 아이가 덜컥 병이 났다. 아이도 더위와 추위에 시달렸었던가 보다. 병원에 급히 가서 진단을 해보니 뇌에 염증이 생기는 위중한 상태여서 급히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후유증이 생겨 자라면서 자폐 증세를 보였다.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장애아인 아들을 키우며 남편 없이 여자 혼자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과 고통의 세월이었다. 다행히도 나라에서 주는 장애 연금 몇 백 불을 매달 받을 수 있었고, 극빈자이며 장애인들에게 배정되는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어 그나마 생활에 보탬이 되었다. 


곽 여사님이 10여년 전 처음 필자를 찾아왔을 때 물었던 질문은 ‘우리 아들이 회복될 수 있을까요?’였다. 허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럴 수 있는 운이 아니기에 대답하기가 무척 곤란했지만 쓸데없는 희망을 줘서 미래에 대한 대비가 잘못 될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솔직하게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라고 괴로운 답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이런저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필자를 찾아와 상담을 하곤 했다. 아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아주기 위해 했던 곽 여사님의 노력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할 수 있다. 조금만 가능성이 보이면 이런 기술, 저런 기술을 가리켜보려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하였지만 매번 실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럴 때 마다 눈물을 짓는 모정에 필자도 가슴이 아팠다. 


필자가 아들모자가 너무 안쓰러워 상담비를 안 받으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곽 여사님 정색을 하며 “선생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러시면 저보고 이제 오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라고 단호히 이야기하셔서 ‘아차’ 했던 기억이 난다. 아들의 자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난 뒤 곽 여사님의 소원은 오직 하나였다. 아들이 자기보다 먼저 죽는 거였다. “선생님 제발 기도해 주세요. 우리 아이가 저보다 하루 전에 죽을 수 있도록!” 너무나 안타까운 모자의 사연이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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