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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개시(開始)손님

2020.11.28




                         개시(開始)손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그날의 첫손님이 그날의 행운을 좌우한다는 믿음을 가진 이가 꽤나 많다. 필자 또한 십 수년간 영업을 하면서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다. 상담예약을 해놓고 첫손님이 펑크를 내면 그날은 대체적으로 일진이 사나워 하루 종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손님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많았고 첫손님이 순조롭게 상담을 마치면 그날 하루 일진이 순조로웠다. 첫손님이 진상 손님이 와서 힘들게 하면 그날 하루 온종일 진상 손님들이 차고 넘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날 스케줄을 손님들에게 사과를 하며 다 취소하고 사무실에서 도망쳐 나오기까지 하는 일도 많았다. 


개시 손님에 대한 이런 믿음은 종교를 믿던 안 믿던 한국사람 의식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옛날 장터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장날 첫손님으로 매상을 점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장날아침 일찍 기분 좋게 현금으로 시원시원하게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있으면 그날은 장사가 잘되고 만약 아침 일찍 문을 열었는데 맨 처음 온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하며 물건에 트집을 잡거나 가격을 가지고 실랑이하다 매매가 이루어 지지 않으면 그날은 일진이 사납다고 하여 크게 낙담하곤 했다. 이른바 ‘마수걸이’가 중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맨 처음 개시손님의 경우 조금 싸게 해서라도 기분 좋게 파는 풍습이 있었다. 또한 아침 일찍 상제(상을 당한 이)가 와서 물건을 사면 그날은 재수가 무척이나 좋다는 미신이 있어 무척이나 환영하고 기뻐했다.


하루의 시작이 이러한데 정초의 첫 손님은 1년의 운세를 좌우한다 하여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대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지방에 따라 이런저런 풍습이 생겼다. 옛날 함경북도 무산지방에는 음력정월 보름날 키 작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무척이나 꺼렸다. 즉 이날 아침에 맨 먼저 찾아오는 사람이 키가 작은 경우에는 집안에 들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문전에서 서성거리는 것조차 꺼려 엄히 나무라며 쫒아냈고 심한경우에는 머리에 키를 쒸우고 다듬이 방망이로 때려서 내쫒기까지 했다한다. (키 작은 것도 속상해 죽겠는데 이렇게 얻어터지기 까지 한 사람은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어? 키 작은 것이 내 책임이냐?’라고하며 분통을 터트렸을 것이다. 이글을 쓰며 필자는 그 시대 그 지방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키도 작고 뚱뚱하기까지 한 게 빨빨거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맞아 죽을 수도 있었겠구나 해서이다.) 이와 반면에 키 큰 사람이 오면 대환영하고 안으로 맞아들여 음식을 대접하기 까지 했다한다. 이런 풍습이 생긴 이유는 이 지방의 주요작물인 삼 작황 때문이라 한다. 키 작은이가 오면 삼이 제대로 크지 못하고 키 큰이가 오면 쑥쑥 자라나 삼 농사에 성공한다는 믿음 때문 이였다. 


아무튼 정월보름 날은 키 작은 사람들 에게 있어서 ‘저주받은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키 작은 땅딸보 들은 이날 정오가 지난 이후에야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외출 할 수 있었다. (1927년 동아일보 보도자료 참조) 또 다른 풍습도 있었는데 평안남도 용강지방 에서는 음력 정월 소보름날이 되면 남자 손님의 방문을 극도로 꺼린다. 따라서 이날은 거리에 오가는 이들은 오로지 여자들뿐이다. 이날 남자손님이 찾아오면 그 해의 좁쌀 수확량이 현저히 줄어들고 반대로 여자 손님이 찾아오면 수확량이 크게 많아진다고 하는 믿음에서라고 한다. 이런 풍습을 무심코 잊어버리고 소보름날 남자가 어느 집을 방문하였을 시에는 그 간의 정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집에 무슨 원한이 있느냐? 무슨 일로 여기 왔는냐!’라고 하며 원수대하 듯 고함을 치고 몽둥이찜질을 예사로 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날 이 지방 남자들은 문을 닫아걸고 온 종일 방안에 갇혀 있어야만 한다. 대신 부인들은 몸치장을 하고 ‘물 만난 고기’마냥 이집 저집을 다니며 음식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1927년 동아일보) 필자의 어린 시절 당시에는 안경을 쓴 이가 매우 드물었다. 그래서였는지 필자가 살던 지방에서 ‘안경잡이’는 재수 없는 이로 여겼다. 따라서 영업집에 안경잡이가 개시손님으로 들어오면 내쫒고 난 뒤 소금을 뿌리기도 했다. 술과 여자를 파는 색주가에는 개시손님으로 대머리가 들어오면 악을 쓰고 욕을 하며 내쫒는 일이 우리나라 여러 색주가에 있기도 했다. 필자의 고향인 충청남도 천안 지방에서는 아침 일찍 여자가 영업집이나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매우 꺼렸다. 그날 하루 일진을 망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페미니즘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여자와 관련된 미신과 같은 믿음에는 여행을 떠나려할 때 이웃집 여자가 들어오면 여행 중 불길한 일이 생긴다는 미신과 관리의 집에 이른 아침부터 여자가 들어오면 관재(官災)가 있다고 믿고 중요한 연회 시 여자 손님이 맨 먼저 오면 불길하다 는 지방들이 있다. (조선의 미신과 속담) 이 외에 사람과 관련된 믿음에는 정월 초하룻날 소금장사가 맨 처음 들어오면 집이 가난해진다, 정월의 첫 번 卯日(묘일-토끼날)에 여자 숙박 객이 있으면 그 집에 흉사가 있다, 주점에서 아침 일찍 상중인 사람이 술을 마시러 오면 그날 술집은 대박이 난다하여 기뻐했다. (상중에 웬술?) 이외에 어떤 사람과 조우하느냐에 따라 길흉을 점치기도 했는데 남자가 여행을 떠나려는데 여자가 길을 가로 질러가면 그날은 반드시 운이 나쁘다고 보고 이런 일이 있을 경우 길에다 + 자를 쓴 뒤 밟아 버리면 액땜을 한다고 하는 풍습이 함경북도에 있었다.


충청남도에서는 외출 중에 여자가 남자 앞을 가로 질러가면 그날은 아무 일도 성취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부녀자는 절대 남자 앞을 가로 질러가는 것을 금기로 여겼다. 이렇듯 여자를 비하하는 풍습이 많았고 이 때문에 예전에 남편이 출근하려하는데 아내가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아침부터 여자가 재수 업게!”라고 하며 윽박지르는 남편들도 꽤 있었다. (이건 아주 옛날~ 옛날이야기지 지금 같은 세상에 그렇게 하는 간 큰 남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맞아 죽고 싶으면 뭔 짓을 못해!) 이외에 출타 중에 장님(시작 장애인)을 만나는 것을 흉하게 여겼는데 옛날 경성 지방에는 외출 중에 장님을 만나면 그날은 재수가 없다고 여겼는데 계속해서 두 번을 만나거나 만난 사람이 두 사람 이상일 때는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부탁이나 중요한 것을 의뢰하러 갈 때 장님을 만나면 일의 성사가 없다고 보았다. 


지금 같은 세상에 시각장애인을 만나 재수 없다는 소리를 했다가는 장애인 차별 소송을 당하는 것은 물론 인격모독 죄와 함께 엄청난 윤리 도덕적 비난을 받아 못 쓸 사람이 될 것이다. 십 여 년도 훨씬 지난 예전의 일이나 당시 365일 무휴로 상담을 강행하던 시절 이였는데 (지금은 천만금을 준다 해도 이런 강행군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할 수 없을 것 같다.) 정월 초하루 날 아침 첫 전화를 받았는데 예전에 필자에게 상담을 했었는데 궁금한 게 하나있어 추가로 물어볼게 있어 전화를 했단다. 추가로 요금을 내겠다는 게 아니라 에프터 써비스 차원에서 한 가지만 묻겠으니 대답을 해달라는 거였다. 기가 막혔다. 필자 왈 “사모님 오늘이 무슨 날이지요?”라고 하니 “새해 첫날이지 무슨 날 이예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별걸 다 묻는다는 식으로 답한다. 세상에 생각 없이 사는 사람 참 많다. 생각이 없으니 사는 게 편하기는 할 것 같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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