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벼룩이 간을 내먹지...

2020.12.21





         벼룩이 간을 내먹지...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필자를 찾는 김 할머니는 미국에 오신지 30년이 넘는 분이시다. 젊어서 남편이 병으로 돌아가시고 오랜 세월 청상과부로 아들 하나에 의지해 살아오신 분이다. 40대 초반 무렵 미국에 살고 있는 홀아비와 인연이 되어 미국에 오시게 되었고 무능한 재혼 남편 덕에 무던히도 고생한 세월이 어언 30년이다. 그 사이 아들은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으니 그나마 인생의 큰 낙이다. 이런 김 할머니가 필자를 처음 찾은 것은 6년 전 쯤의 일인데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평생 멋이라고는 한 번도 부려 보지 않은 듯 한 추레한 옷차림에 고생의 흔적이 덕지덕지 붙은 듯 한 초라한 얼굴 표정에서 이분의 긴 인생 여정을 보는 듯 했다. 어디 가서 길에 떨어진 동전하나 무서워 줍지 못할 선하고 꽉 막힌 듯 고지식한 분이라는 것을 사주를 풀어 보니 알 수 있었다. 


당시 상담의 주제는 “금전대차”에 관련된 일이였다. 미국에 오셔서 김 할머니가 주로 해온 일은 거동이 불편한 중증 노인 분 환자들 집에 가서 배설물도 치우고 기저귀도 갈아 주며 목욕시키는 등 말 그대로 험한 일이였고 무던한 성격대로 일을 착실하게 꾀부리지 않고 하자 여기저기서 불러 주는 곳이 많아져서 몸은 고달팠으나 수입은 괜찮은 편이였다. 이렇게 고단한 삶이지만 김 할머니는 성격대로 늘 웃음을 잃지 않았고 환자 노인 분 들이 괴팍한 신경질을 부려도 무던히 참고 자신의 일에 충실했다. 이래서 번 돈으로 아들을 동부의 유명 대학에 보낼 수 있었고 아들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의 생활비는 스스로 해결해서 김 할머니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돈벌이가 나름 괜찮아도 아들 뒷바라지에 거의 다 들어갔고 말년에 남편 병수발까지 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항시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한다. 


 그러다가 한 가정에 깊이 인연이 맺어져 그 집에서만 15년을 거의 붙박이로 일하게 되었는데 큰 식당을 여러 곳 운영하는 집이었다. 그 집 노 할머니가 중풍과 치매가 겹쳐 오랜 세월 똥오줌 싸며 심통을 부려 대는데 이를 감당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한다.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이집에 와서 한 달 이상을 버텨낸 적이 없을 정도로 노 할머니의 괴벽은 대단했다 한다. 변을 도우미에게 집어 던지지를 않나 가만히 잠든 척하고 있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손을 깨무는 등 그 정도가 심해서 모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도망갔다. 양로 병원에 보내려고 하면 이 노 할머니 그때는 정신이 말짱해서 두 손을 모아 자식 며느리에게 빌며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며 서럽게 우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김 할머니가 이집에 인연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김 할머니가 오고부터는 노 할머니의 심통이 점차 가라앉는 것 이였다. 아마도 지극정성을 다하니 기존의 도우미들과는 다른 어떤 감동을 느낀게 아닌가 했다. 


아무튼 이 집에서 오래 있다 보니 식구들과도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이집 사모님이 김 할머니를 부르더니 하는 말이 ‘김 할머니 사정을 잘 아니까 하는 말인데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이 있으면 자신이 불려 주겠다. 남 같으면 이런 신경 안 써주는데 한 가족 같으니까 배려를 해 주는 것이다’ 라고 하며 선심을 베풀었다. 그동안 김 할머니가 가만히 보니 이 집 사모님 수완이 대단해서 고액의 계도 여러 개 운영하고 식당도 여기저기 여러 곳 크게 벌리는 데다 주위에 아는 사람도 많아서 한 마디로 ‘여걸’ 같았다. 반면 남편은 샌님 같아서 매우 조용하고 마누라 시키는 대로 심부름이나 하며 조용히 지냈다. 


그동안 김 할머니가 모아 놓은 돈은 15만불 정도였다 한다. 30년 가까운 세월 김 할머니 표현대로 ‘자신을 위해서는 한 달에 단 100불도 써 본적이 없는’ 검소함을 지나쳐 궁박한 내핍 생활 속에 얻어진 돈으로 김 할머니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돈 이였지만 사모님이 워낙 능력 있으신 분이고 이토록 자신에게까지 신경을 쓰시는 것에 감동하고 신뢰하여 그 돈을 맡겼다. 그런데 돈이 건너가고 얼마 안 있어 갑자기 사모님이 ‘뱅크럽시’ 한다는 소문이 들리고 식당도 전부 급하게 팔려고 내 놓았으며 집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 하면서 이상한 조짐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얼굴 한번 보기 어려운 사모님을 이런저런 노력 끝에 만나는 자리에서 사모님 왈 “일이 조금 꼬여서 일시적으로 조금 시끄러운데 조금만 기다리면 처음 약속대로 돈을 불려서 돌려줄 것이니 안심을 해라” 라고 하여 몇 달을 목이 빠지게 기다려도 소식이 없고 사모님 댁은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그 곳에서 다시 떵떵거리고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소문 끝에 어렵게 어렵게 찾아가니 사모님 한다는 말이 “아니? 왜 이렇게 귀찮게 굴어요? 그 까짓 돈 몇 푼 떼 먹을까봐 그래요? 이런 식으로 귀찮게 하면 나도 생각이 있어요!” 라고하며 큰 소리 치며 오히려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사모님께 선처를 부탁하며 두 손이 닳도록 빌고 제발 살려 달라고 울고불고 매달렸지만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 는 말뿐이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6년이 되도록! 그런데 이제 와서는 ‘배째라’ 는 식으로 나온다고 한다. “언제 나에게 돈 주었냐? 증거를 대 봐! 법대로 해! 법! 법! 법!” 이후 김 할머니의 주 상담 내용은 돈을 받을 수 있는가 여부였는데 늘 나오는 쾌는 ‘받을 수 없다’ 였다. 가슴 아픈 일이다. 사모님 이라는 그 여자 참 죽일 년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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