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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마른 하늘에 날벼락

2021.01.05

 


   

               마른 하늘에 날벼락 


 샌디에고에서 꽤나 큰 규모의 샌드위치 샵을 운영하고 계시는 50대 초반의 박 사장님께서 필자를 찾았다. 한번 필자와 만나려면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번잡함을 피하지 않고 필자와 꼭 對面(대면) 해서 상담을 하시는 분이다. 필자가 한번 오시려면 시간 낭비가 심하고 기름 값도 많이 들고 피곤 하실터이니 전화로 상담을 하시라고 권해도 필자의 얼굴을 꼭 보면서 상담하고 싶다고 고집하는 분이시다. 


박 사장님은 미국에 오신지가 30년 정도 되는 올드타이머 이시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셔서 영어에도 능숙하신 분이다. 비교적 고급 샌드위치 샾 이다 보니 주 고객이 백인들이었는데 박 사장님 특유의 친화력으로 손님들과의 유대감이 좋아 오래된 단골손님이 많은 것이 이 집의 특징이었다. 박 사장님은 아직도 영주권자로 남아 있는데 시민권을 따야지, 따야지 하면서도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한다.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이번에 시민권 시험을 보려 하는데 합격 하겠는가에 대해 필자에게 묻는다. 의외였다. 영어도 잘 하시고 미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분이 할머니들도 어렵지 않게 통과하는 시험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그랬다. 


아무튼 박 사장님의 쾌를 짚어 보니 ‘쾌지태’의 쾌다. ‘평지풍파 경인손재’의 운이여서 운세가 복잡해진다! ‘놀랄 일을 당하리라 물러나 근신하라’ 는 말로 설명 될 수 있다. 필자 왈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운세가 험하게 나오는군요. 가능하면 이런 운세가 지나간 뒤에 시험을 치루면 어떨까요?” 라고 한 즉 박 사장님 답하기를 “지금까지 영주권만으로도 별 불편 없이 살아 왔지만.... 왜 일전에 제가 재혼하려고 궁합을 본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찰떡궁합이라고 나온 그 여자분 기억 하시죠? 사실은 그 사람이 신분이 없는 분이라서 제가 시민권을 따야 시민권자 배우자로써 신분 회복이 되지 뭡니까! 해서 시험을 보긴 봐야 하는데 이상하게 시험 보는 것이 영 찜찜한 기분이 드네요. 왜냐하면 예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사연인 즉 30년 가까운 아주 옛날 폭행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는데 요즈음 하도 이민당국의 심사가 엄격해져 아무것도 아닌 것을 트집 잡아 추방한다는 요즈음 추세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고 하며 사실은 지금까지 시민권 신청을 안 한 것도 처음에는 바빠서였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이런 점이 마음에 걸려서 였다고 한다. 필자 왈 “어찌됐든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부인께서 신분 문제로 불편하시겠지만 몇 년 더 참았다가 이 운세가 호전 되었을 때 하시는 것이 좋겠네요” 라고 하니 말없이 한숨만 푹푹 쉬다가 찌푸린 얼굴로 돌아가셨다. 


바쁜 나날 속에 이 일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박 사장님이 재차 방문하셨다. 오셔서 대뜸 하는 말이 “어떡하면 좋습니까? 선생님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라고 한 뒤 너무도 억울한지 눈물까지 찔끔 거리신다. 필자의 만류가 찜찜했지만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들떠 있는 부인을 실망 시킬 수가 없어 시민권을 신청했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 라고 시민권 인터뷰 자리에서 체포되어 이민국 구치소로 넘겨졌다고 한다. 이유는 정확히 28년 전 자신의 여자 친구와 다투다 상대를 때린 폭행 사건 때문이었다. 


그 당시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를 만나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사실에 격분하여 말다툼을 벌이던 중 여자 친구가 먼저 이분의 뺨을 갈기자 박 사장님 표현대로라면 ‘눈이 확 뒤집혀서 정신없이 여자를 팼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경찰서였다’ 는 것이다. 다행히도 여자 친구가 처벌을 원치 않았고 상처도 경미해서 경범죄로 벌금 물고 사회봉사를 한 뒤 수없는 세월이 흘렀건만 그때 사건 처리가 잘못 되었다는 거였다. 폭행 당시 옆에 있던 가는 막대기로 여자의 등짝을 살짝 한 번 내리친 적이 있고 곧바로 막대기를 버렸고 손으로 때렸는데 이것이 단순 폭행이 아닌 흉기에 의한 살인 미수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 경찰 수사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이민국의 주장이었다. 보석금을 내고 일단 풀려나와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번의 상담 주제는 추방이 되겠는가 또는 이를 피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필자가 이리저리 쾌를 짚어 보아도 유리한 쾌상은 나오지 않았다. 필자 왈 “아무래도 이곳 미국 생활을 정리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추방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재판을 최대한 길게 끌어서 몇 년을 버틸 수 있겠지만 종국에는 떠나셔야 할 겁니다. 삼십 년을 이곳에 사셨으니 이곳 생활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차분하게 하나하나 정리 하십시오. 닥쳐 올 미래가 두렵겠지만 어디라도 마음 붙이고 살면 그곳이 고향 아니겠습니까? 너무 두려워 마시고 새 곳에서의 생활을 준비하십시오.” 라고 충고해 주었지만 30년 살던 곳을 떠나서 50대의 나이에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박 사장님의 처지가 매우 안쓰러웠다. 


이런 경우에 적합한 말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일 것이다. 비가 오려면 날이 어두워지며 검은 구름이 끼고 벼락이 친다거나 하는 등의 조짐이 있다가 비가오곤 하는데 멀쩡하게 청명하던 하늘에 갑자기 벼락이 치는 것과 같이 전혀 어떤 조짐이나 예고도 없이 갑자기 당하는 불상사나 불운 등을 당할 때 이런 표현을 쓴다. 어찌되었던 박 사장님의 불운은 전형적인 이 경우에 해당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주권이 필요한 재혼부인 때문에 시민권 신청을 미룰 수도 없었던 박 사장님의 사정이 이해가 가지만 어찌되었든 필자의 충고를 어쩔 수 없이 듣지 않은 그분의 행동은 결국 자신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아무쪼록 한국에서라도 힘내셔서 새 출발을 하시기를 기원해본다. 전화위복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드린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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