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 최씨
8년 전부터 가끔 필자를 찾아와 상담을 하고 가시는 최 선생은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시는 분이시다. 정밀 항공 부품과 관련된 기술자여서 매우 높은 연봉을 받으며 생활해왔다. 처음 필자와 대면했을 때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수입과 관련 된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신의 연봉이 40만불 정도 된다고 하여 처음에는 필자가 이를 4만불로 듣고 전문 기술자가 겨우 그 정도 밖에 못 받는가를 되묻다가 40만불이라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이도 젊은 분이 정말 수입이 대단하다고 감탄했었다. 얼굴도 잘 생기고 희여멀건한게 귀공자풍의 사내였다.
처음 방문할 당시 노총각이여서 배우자감에 대해 집중 상담하였고 그 후에도 신부감이 생길 때마다 필자를 찾아와 궁합을 보곤 했었는데 다행히 그러던 몇 년 뒤 짝을 찾았고 그 후 결혼 날, 택일문제, 태어난 남매의 작명 등의 문제로 꾸준히 필자를 만나게 된 오래된 고객이다. 이렇듯 무던히 잘 풀려 나가던 최 선생의 운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3년전 부터였다.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하루는 필자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 ‘세상이 따분해 지고 다람쥐 챗바퀴 도는 듯 한 변함없는 현실이 너무 답답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1-2년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고 싶다’ 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필자가 이분의 쾌를 짚어보니 “몽지손”의 쾌가 나온다. ‘일인지해 급어만인’ 이니 ‘은인자중해야 한다. 방종하면 큰 액을 당하리라. 옛것을 소중히 하고 근신하라!’ 는 내용으로 해석 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천천히 쾌상을 확인한 뒤 필자 왈 “인생에 있어 휴식은 꼭 필요하지요! 휴식은 시간의 낭비가 아닌 더욱 활동적인 생활을 위한 윤활유요, 재충전의 기회라고 할 수 있죠. 너무 오랜 시간 같은 일은 반복하다 보면 메너리즘에 빠지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지요. 이럴 때 안식이 필요하지요. 성경에서도 천지 창조 후 안식일에 대해 규정하였듯이 인생에 있어서도 안식일, 안식년 등은 꼭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고 봅니다. 때가 좋지 않게 나오니 조금 더 참았다가 때를 보아서 결행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니 최 선생 묻기를 “왜 때가 좋지 않다는 말씀이세요? 현실적으로 볼 때는 지금이 적기일것 같은데요! 몇 년 동안 우리 팀이 진행해온 프로젝트가 이제 막 마무리 되는 시점이여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는데요?” 라고 한다.
“현실적인 문제는 그렇다 하더라도 운적인 측면에서는 변동을 자중하라! 옛것을 소중히 하라! 는 쾌상이니 조금 더 지켜보다가 결행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라는 말로 상담을 마치었다. 그 후 한참동안 연락이 없다가 몇 달 전 최 선생이 필자를 찾았다. 그동안 부인의 직장을 따라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했으며 자신은 아직도 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필자 왈 “결국 그때 직장을 그만 두셨군요! 아니 그런데 그때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쉬고 계십니까?” 라고 물은 즉 최 선생 한숨을 깊이 내쉬며 사연을 이야기 한다. 필자의 만류가 조금은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계속 생각해 오던 것이라 결단을 내리고 쉬기로 했다고 한다. 처음 부인도 펄쩍 뛰며 만류하였으나 본인의 결심이 견고하고 그 동안 모아둔 저축도 어느 정도 되는지라 부인도 결국은 동의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온 가족이 세계여행을 떠났다. 1년 정도 쉬면서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니 살것 같았다고 한다. 1년 동안 네 식구 세계여행에 20만불 정도가 필요했고 여행 후에도 20만불 정도의 저축이 남아 있어 이 돈 떨어지기 전에 직장을 찾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의 여유가 있었는데 직장이 생각만큼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여윳돈이 떨어져감에 따라 마음은 점점 초조해졌고 결국 돈이 바닥나자 이것저것 적금이나 연금마저 해약하며 버텼는데 그마저 끊기자 할 수 없이 부인이 나섰다. 부인은 약사 자격증이 있었는데 그동안 신랑이 돈을 잘 벌어다주니 집에서 아이들 양육에만 신경 써왔다. 하지만 이제는 길이 없어 결혼하기 전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를 찾아가 사정사정해서 임시 계약직이나마 자리를 얻게 되었고 회사에서 비교적 한직에 해당되는 샌프란시스코 인근 작은 도시에 발령이 나서 하는 수 없이 이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직장을 구하려고 이력서 내는 것도 이제는 지쳐서 포기상태에 이르렀고 아이들 뒷바라지나 살림 등을 자신이 맡을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살림 하는 남자’가 되었다. 연봉 수 십 만 불을 받던 사람이 이처럼 한심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인근 소도시에서 귀향살이 하듯이 갑갑히 갇혀 있다가 예전 동료들을 만나 보려고 벼르고 벼르다 어렵게 시간과 여건을 만들어 LA에 오게 된 김에 선생님을 뵈려고 왔다고 한다. 당연히 상담의 주제는 언제 취업이 될 수 있을까? 였다. 결론은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 답답한 일이다. 언제나 좋은 시절이 되돌아오려나 이리저리 쾌를 짚어보아도 답은 영~신통치 못했던것이다.
이래서 사람은 항시 ‘잘 안 될 때’를 대비해야한다. 돈이 펑펑 벌리고 무슨 일이든 손만대었다 하면 술술 풀릴 때 대개의 사람들은 ‘기고만장’하기 쉽다. ‘잘 안 되는 경우’를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옆에서 혹시 미래에 안 될 때를 대비하라고 충고라도 할라치면 잘나가는 자기를 시기해서 그런 재 뿌리는 소리를 한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한참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재수없는 소리를 해서 김을 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나이가 들면 누구나 다 알게 되는 이치이다. 젊은 나이에 지나치게 승승장구하는 젊은분들을 보면 필자도 어김없이 이와 유사한 충고를 한다. 그러면 거의 틀림없이 다들 기분나빠들 한다. 옛말도 있듯이 ‘화무십일홍’이라했다. 어떤 권세나 영광도 계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승승장구할 때 그 반대의 경우에 대비하라!’는 말은 우리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진언이라 할 수 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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