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처신
발렌시아에 거주하시는 김 여사님은 미국에 이민 오신지 채 6년이 넘지 않은 이민 초년생이시다. 한국에서 남편이 부쳐주는 돈으로 생활하며 아들, 딸 남매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데 어찌어찌하다가 이민 신분인 ‘학생비자’ 가 취소되어 ‘서류 미비자’ 가 되었다. 따라서 남매도 함께 신분을 잃었다. 이렇게 되면 상식적으로 한국에 나가서 다시 정식 절차를 밟아 재입국하면 될 터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식구가 모두 그 처지가 된 것을 보니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듯 했다.
처음 필자에게 전화 상담을 요청 했을 때 꽤나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다.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 전개가 어떻게 될 지 매우 불안해하며 울먹였다. 남편이 한국에서 전자통신기술자로 일하며 모아서 부쳐주는 돈으로 생활 하고 있는데 요즈음에는 벌이가 신통치 않아 고전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조금 가져온 돈도 떨어져가고 있는데 어쩌면 좋겠느냐는 거였다. 부인께서는 이곳 미국에서 아무 일도 안 하시냐고 물은즉 ‘일을 할 수 없는 상태’ 라는 대답을 하며 자신의 처지를 토로 하였다. 필자가 상담을 하다보면 이곳 교포 중 신분 없이 생활하는 분들을 꽤나 흔하게 많이 보았고 이런 분들도 이런저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아 온 터이라 ‘왜 일을 할 수 없냐?’ 고 묻자 오히려 답답하다는 듯이 ‘일을 하려면 워킹퍼밋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없으니 어떻게 일을 하냐?’ 는 고지식한 답을 한다. ‘그렇다면 신분 없이 살아가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먹고 산다고 생각하시냐?’ 고 물으니 ‘그건 잘 모르겠다’ 는 답답한 답변을 한다. ‘그럼 일을 해 보려고 시도는 해 보았냐?’ 고 묻자 ‘그런 적이 없다’ 는 말을 한다. 어떠한 시도도 해 보지 않고 그냥 방구석에서 고민만 해온 듯해서 답답했다. ‘자녀분들은 학교생활을 잘 하는가?’ 라는 물음에 딸아이는 고등학생이여서 학교를 다니지만 아들은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신분이 없어 학교를 못가니 그냥 놀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하루에도 십여명 이상을 20년이 넘는 세월 상담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꽉 막힌 답답한 처신은 처음이었다. ‘신분 없이도 가주에서 몇 년 이상 거주하고 이곳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면 거주민 학비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신문에서라도 본 적이 없냐?’ 고 물은 즉 ‘본적은 있지만 어떻게 신청하는 줄도 모르겠고 혹시 그런 혜택을 보려다가 붙잡혀 가서 추방되면 어쩌냐?’ 는 역시 답답한 답변이었다. 필자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도우는 봉사 기관인 ‘민족학교’ 등등의 몇 군데 단체를 소개하고 이런 곳을 찾아가서 상담을 해 보라는 권유에도 혹시 자신의 신분을 약점 삼아 어떤 해코지가 있으면 어쩌냐는 답변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바쁜 일과 속에 이 일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이분이 남편과 함께 필자를 찾아왔다. 마침 한국에서 남편이 다니러 와서 함께 선생님을 뵙고 싶어 찾아왔다고 한다. 직접 만나보니 내외의 인상이 너무나 선량했다. 평생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은 손톱만치도 못할 것 같은 부부의 모습이었다. 와서 이야기 하는 사연을 들으니 부인의 대학 동창 중 한명이 이곳 LA에 거주하고 있는데 좋은 사업거리가 있으니 아이들 공부도 시킬 겸 우선 학생비자로 거주하면서 자신과 함께 일을 하면 영주권을 받는 방법은 자신이 책임지고 열어보겠다고 해서 시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에 빚까지 내서 투자를 했건만 이것이 완전 사기였다고 한다. 투자한 돈을 몽땅 날린 것은 물론이요, 업친데 덥친격으로 학생비자 신청도 엉뚱한 곳을 알선하여 그 학교가 문제가 생기면서 신분에도 문제가 생겼으니 말 그대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가 되었다는 거였다.
이런 사연을 들을 때 마다 화가 난다. 이곳 LA에는 왜 이다지도 사기꾼이 많다는 말인가! 필자가 유독 워낙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접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만 ‘착한 누구를 만나서 그이의 도움으로 어려움 없이 이곳에 잘 정착하게 되었다’는 사연은 거의 드물고 거의 대다수의 사연이 ‘누구누구에게 당했다’는 것이 주를 이루니 말이다. 이민 선배로서 이런 저런 충고를 해주고 상담을 마쳤지만 이렇게 고지식하고 답답한 처신을 하는 이들이 과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매우 근심스러웠다.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라 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어떤 일에 대해 도전해 보지도 않고 두려워한다면 그 마음속에 이미 장막이 쳐져 이미 그 일은 실패한 것이다. ‘까짓것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일단 부딪쳐서 헤쳐 나가다 보면 길이 열리는 것이다. 길을 가 보지도 않고 ‘그 길은 너무 함정과 위험이 많아 갈 수가 없어!’ 라고 단정해 버린다면 그 길은 내 마음 속에 영원히 극복 할 수 없는 험한 길로 남을 것이요. ‘까짓것 그래 한 번 부딪쳐 보자’ 는 마음으로 길을 들어설 경우 한발 한발 내딛다 보면 깜깜했던 길도 희미하게나마 윤곽이 보이기 시작 할 것이요, 나중에는 걷다가 뛸 수도 있을 것이다. 신분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어서 빨리 좋은 날이 있어 환하게 웃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본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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