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 찾아 삼만리
오 여사님은 서울 강남에서 한정식 집을 운영하시는 50대 후반의 여성이시다. 남편은 전직 경찰 공무원으로 경찰 고위직에서 퇴직하여 한가히 지내셨던 분인데 최근에 행방불명이 되어 난리를 치뤘다. 잠깐 지방에 내려가 머리 좀 식히고 오겠다고 나선 양반이 며칠째 연락이 없자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혹시 사고라도 당한 것이 아닌가? 전화를 해도 도무지 받지를 않고 위치 추적도 되지 않으니 탈이 나도 큰 탈이 난 것이라고 짐작하고 경찰에 실종신고도 내고 난리를 쳤는데 어느 날 문득 전화가 왔다. ‘경망 떨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면 돌아갈 것이요, 경찰에 실종 신고는 잘못 되었으니 사과하고 취소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말 외에는 일절 답이 없이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어려서 조실부모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당시 광풍이 불었던 광산업에 눈이 뒤집혀서 전국을 미치광이가 되어 돌아다녔고, 병약했던 어머니는 어린 남매 뒤치다꺼리에 지쳐서 병들어 시름시름 앓다 죽으니 그때 남편 나이 일곱 살이요, 남편의 누이동생은 네 살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살던 곳이 집성촌이여서 마을 사람 거의 모두가 친척이라 이집에서 한 끼 걷어 먹이고, 저 집에서 한끼, 이집에서 며칠 묵고 저 집에서 며칠 하는 식으로 ‘동네아이들’이 되었다. 남편의 외갓집도 산하나 건너 마을이었고 이곳도 역시 집성촌이여서 외할머니, 외삼촌 등등 외가 식구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어쩌다가 한 번 외가 동네로 건너가면 외할머니가 ‘불쌍한 우리 새끼들’하며 눈물 콧물 쏟아가며 이곳저곳에서 맛난 것을 걷어 먹이고 씻겨서 하룻밤 정도 재워 보내곤 하였다. 남매에게 일이 생긴 것은 남편이 그 형편에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한다.
오빠가 학교 갔다 오면 언덕 길목에서 오빠를 기다리곤 했던 동생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친가 쪽에서는 산 너머 외가 쪽에 갔거나 친척 누가 데려가서 재우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고, 외가쪽에서는 어련히 친가 쪽에 잘 있으려니 하고 있다보니 며칠이 지났다. 그 후 며칠이 더 지나도 소식이 없자 동네가 난리 났다. 그 당시만 해도 시골에는 전화가 없으니 직접 사람이 두 발로 왔다 갔다 하며 소식을 전해야 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두 동네가 발칵 뒤집혀서 인근 지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동생을 찾을 수 없었다 한다. 사람들이 수군수군 하는 소리를 들으니 문둥이가 간을 빼먹으려고 데려 갔을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이런 불행을 겪으며 남편은 말수가 없는 아이가 되었고 늘 우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학교를 왔다 갔다 할 뿐이지만 머리는 기가 막히게 좋아서 내내 1등자리를 뺏기는 일이 없었다 한다. 동네 친척들의 십시일반 후원 속에 대처로 나가 중, 고교 학업을 마치었고 명문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영광을 누린다. 그 사이 십 수 년 연락이 없던 아버지가 고향땅에 돌아 왔으나 다른 여자와 함께였고 그 사이에 주렁주렁 자식을 달고 돌아왔다. 그 이후 아버지 돌아 가실때까지 남편은 자신의 아버지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한다.
어머니와 누이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 여사님이 남편을 만났을 때는 두 사람 모두 20대 중반이었는데 이때 남편은 일찍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경찰 간부로 특채되어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남편은 성실했고 특히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깊어 무척이나 든든한 남편이었다. 평소 지나칠 정도로 과묵한 남편이 어쩌다 혼자 술을 마시며 몰래 눈물을 글썽이는 일이 자주 목격되었는데 부인의 성화 끝에 털어 놓은 이유는 어릴 때 잃어버린 누이동생의 생사라도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경찰 고위직에 있을 때에도 틈만 나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누이동생을 수소문 하곤 했는데 자신보다 세 살 아래인 고아 출신의 여성, 어머니를 빼다 닮았으니 다행히 한 장 있는 어머니 사진과 닮은 여성 등 등 추적할 수 있는 모든 단서를 동원해서 애를 써왔고, 공직에서 물러나 시간이 충분해지자 이 일에 매달려 왔다.
필자가 오 여사님과 상담을 하게 된 것은 이곳 LA에 사시는 오 여사님 동생분이 언니가 너무 애타게 남편 걱정을 하자 혹시 올해 남편 신수에 나쁜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여 이를 알아보고자 오 여사님에게 필자를 소개하여 상담을 하게 된 것이요. 위의 내용은 몇 번의 상담 속에 알게 된 사연이였다. 필자가 오 여사님 남편분의 생년월일시를 물어 신수를 짚어보니 별 특이한 사항은 없었고 이 분의 부모 형제를 뜻하는 월주와 이분의 오행인 병화와 일지 오화 와는 충살이 심하게 작동하여 인연이 전혀 없으니 아마도 누이동생은 평생 찾을 수 없으리라고 보여 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다.
그 뒤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옛적 고향 어른 중에 누군가가 옛날 어머니를 꼭 빼닮은 이를 어떤 곳에서 스치듯 지나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지역 일대를 한 달이 넘게 미친 듯이 찾아 헤매 인 뒤 어느날 갑자기 말없이 돌아와서 한숨지었다는 오 여사님 남편의 행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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