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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우리아이 언제 취직이 될까요?

2021.03.12




                우리아이 언제 취직이 될까요?

                        -아이비리그 명문대 졸업자 부모의 한탄-  

 

        이글은 오래전 금융위기 당시 필자가 쓴 글이다. 


 세계 경제가 완전 파탄 직전이다. 월가에서 터진 금융 위기는 그 여파가 퍼지고 퍼져 전 세계의 경제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에서 터진 금융 위기가 전 세계 특히 유럽(EU)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PIGS(돼지들)이란 명칭으로 비유되는 포루투칼,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부도위기는 유럽 경제연합 EU의 해체론까지 나올 정도로 그 상황이 심각하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주도로 유럽 경제의 몰락을 막기 위한 이런저런 여러 가지 극단적 처방이 나오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참패한 것은 황충이 거짓 투항하여 안에서 내응하고 조조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방통이 제시한 방법 즉 여러 전함을 서로 쇠사슬로 연결해 놓고 그 위를 큰 널빤지로 덮으면 군사들이 이동하기 편하고 특히 수전 경험이 별로 없는 조조 병사들의 배 멀미를 덜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속아 그리 응했다가 오나라 군사들의 화공에 전멸한 예가 있듯이 EU 연합도 이제는 부도가 불가피한 회원국들은 피해가 최소화 되는 방향에서 도산시키고 건실한 국가들만이라도 살아남는 각자 도생의 길을 찾는 것이 오히려 유럽 연합 전체의 도산을 막는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세계 경제의 불황속에서 이런 위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하나가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의 취업문제이다. 장사가 안 되서 매출이 급감하여 한숨 짓는 어른들 문제가 더욱 심각하지만 이제 막 세상에 첫발을 딛는 젊은 인재들이 취업을 못해 실업자로 전락하는 현실은 그들의 부모인 우리 이민 1세들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자식이 공부를 잘하고 또 좋은 대학에 진학했을 때 부모는 어떤 현실의 고생도 고생이라 느끼지 못했다. 부모 세대 모두들 우리 자식만큼은 내가 겪었던 여러 가지 장애를 겪지 않고 주류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어 자신의 삶을 값지게 전개해 주기를 소망해 왔다. 이민 와서 겪었던 언어로 인한 스트레스, 인종 차별적인 알듯 모를듯한 자괴감 등 등 마이너 티로써 겪었던 나의 설움을 자식들이 확 씻어 주기를 바라며 오로지 아이들의 성공을 위해 고전 분투해 온 것이 거의 공통된 이민 1세대들의 꿈이었다. 우리들의 꿈나무인 젊은이들 의 시련은 부모들의 심장을 까맣게 타게 한다. 


LA 할렘 가에서 리커 스토어를 30년 가까이 운영해 오신 박 사장님은 매우 근면 성실하신 분이시다. 이민 오자마자 누님이 운영 하시던 가게를 인수하여 큰 어려움 없이 가게를 잘 꾸려왔다. 이 가게를 하면서 결혼도 하였고 1남 2녀도 얻었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아침 6시부터 밤 8시까지 14시간을 꼬박 일했다. 저녁 문 닫는 자정 까지만 파트타임을 썼다. 가게에 밥통을 갖다놓고 기본 밑반찬을 갖춘 뒤 아침, 점심을 해먹고 저녁만 집에 와서 먹었다. 친구도 없었지만 있다 해도 만날 시간조차 없었다. 부인만 집안 살림이 있는지라 집과 가게를 오가며 남편을 도왔다. 이렇게 삭막한 생활이지만 박 사장님은 큰 불만이 없었다.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이들이 고마웠고 특히 외아들이자 장남인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아들은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늘 최고였다. 친구들 에게 인기도 좋아 학생회장도 했고 럭비 팀 주장도 했다. 성적도 우수하여 아이비리그 명문대에 진학하자 박 사장님은 뛸 듯이 기뻐했다. 말 그대로 ‘고생한 보람’ 이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박 사장님 내외분의 꿈이자 희망 그 자체였다. 그런데 하필 아들 졸업 무렵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업체들이 도산하고 살아남은 기업들 또한 인원감축에 나서니 취업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설마 했다고 한다. ‘우리 아들이 명문 중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는데 아무리 불황이라고 해도 다른 집 애들은 다 취직을 못해도 우리 아들만큼은 다르겠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졸업하고 1년 넘게 여기저기 원서를 내 보았지만 취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시간을 벌기위해 대학원에 진학시켰다. ‘대학원 졸업하면 그때야 자리가 나오겠지...’ 라는 생각에서 였다. 헌데 대학원 졸업 후에도 취업은 되지 않았다. 아들은 부모님들에게 너무 미안해하고 당혹스러워 했다. 평생을 살면서 박수갈채만 받아오다가 갑자기 인생의 낙오자가 된 듯하여 의기소침하여 말 수가 없어졌다. 이런 아들을 보는 박 사장님 내외분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고 한다. 


이러던 아들이 최근 들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박 사장님도 아들이 집에서만 우울하게 보내는 것 보다 나을 것 같아 반대하지 않았다. 고급 양식 레스토랑 웨이터 자리였는데 식당이 고급 식당이라 주 고객인 백인들의 팁이 적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을 많이 주지 않아서 하루에 고작 4~5시간 정도였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 한인 타운에 있는 한인상대 구이 집에서 웨이터로 일하며 손님들 자리에서 고기를 가위로 잘라주고 있다고 한다. 그 모양을 보고 있자니 박 사장님 내외분 분통이 터지신단다. 아들을 구이 집 웨이터 만들려고 30년 가까운 세월을 그토록 미친 듯이 뛰어왔단 말인가? 회의가 들어 요즈음은 박 사장님도 일에 의욕을 잃고 시큰둥해졌다. 가게일도 대충 부인에게 맡겨두고 사람을 뽑아서 꾸려나가며 답답하면 등산에 나서신다. 아무 생각 없이 땀이 전신을 적시도록 산에 올라가다 보면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 뚫리는 것 같다고 하신다. 생전 안마시던 술도 요즈음에는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해 견딜수가 없을 때면 한인 타운에 나가서 시원한 생맥주를 마신다. 그러면 속이 좀 가라 앉는것 같다. 기분이 내키면 부인을 불러내서 같이 노래방에도 간다. 처음에 이런 박 사장님을 보고 부인 왈 “어머나! 오래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네? 목석같은 당신이 왠일이래요? 호호호. 아무튼 좋네요!” 라고 하며 남편의 변화에 놀라워했다. 


필자가 보기에 박 사장님은 지금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듯했다. 그래서 스스로 자기도 모르게 이를 치료하기 위해 이런 생활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아닌가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스스로의 치료법이기에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이렇듯 필자의 고객분들 중 자녀의 취업문제로 인해 고민하거나 좌절하시는 분들이 최근 들어 부쩍 많아졌다. 특히 아이비리그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아빠가 하는 리커 스토어에서 일을 몇 년째 돕거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택시 운전까지 나서는,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현상이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되는 세상이 되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 언제 취직이 될까요?” 오늘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지... 세상 참 살기 힘들어졌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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