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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천 만복

2021.06.03

 



                        천 만복  


 이씨조선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고종 말년 무렵 흥인문 밖 인근마을에 천씨성을 가진 갖바치가 살고 있었다. 신분제도가 무너져가는 시기이기는 하나 천인인 관계로 마음놓고 도성출입을 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 자신에 이르기까지 천민신분이 세습되어 왔기에 결혼도 같은 천민끼리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 장가를 들게 되었다. 이웃마을에 살던 무당의 딸이었는데 미색이 출중하였지만 결국 신분 때문에 갖바치의 아내가 되고만 것이다. 얼마 후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제 애미의 미모를 닮아 얼굴이 귀공자처럼 잘 생겼고 지애비의 튼튼한 골격을 닮아 뼈대가 튼실하였다. 이름을 만복이라고 지었고 그리하여 성명은 천만복(千萬福)이 되었다. 


천민으로 태어난 애미, 애비 욕심에 자기자식 만큼은 천복, 만복을 누리며 살라고 지어준 이름이지만 현실로 보아서는 택도 없는 과분한 이름이었다. 만복이가 다섯 살 무렵 지나던 객승이 천氏 집에 시주를 부탁하러왔다. 삐쩍 말라 해골바가지 같은 두상에 누더기 승복은 그냥 버려도 개도 안 물어갈 정도로 헤져있었다. 탁발승 이라기보다는 거지에 가까운 행색에도 그 눈빛만큼은 형형했다. 또 염불솜씨도 제법 구성져서 집에 들여 찬 밥술이라도 먹였더니 밥값 한답시고 그 집 외아들인 만복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나라에 큰일을 할 인물이니 잘 키우십시오. 만인의 우러러보는 큰 인물이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만복이 부모내외는 이 꾀죄죄한 걸승이 밥 한 끼 얻어먹는 것이 황공해서 이런 입 공양을 해주는구나 싶었다. 갖바치 자식이 어떻게 나라에 큰일을 하며 만인이 우러러보는 인물이 된다는 말인가? 속으로 웃고 말았다. 


천만복은 자라면서 머리가 매우 총명했고 기운도 장사여서 늘 어울리는 꼬마들의 대장 노릇을 했다. 마침 갖바치 마을에 영락한 양반이 한명 스며들어 살고 있었는데 이 사람으로 부터 글을 익히고 나서 대처로 나가 신식 학교에까지 들어갔다. 대개가 양반집 자제들인 신식 학교에서도 천만복은 늘 두각을 나타냈고 드디어 졸업 후 만주국에 진출하여 비록 일본의 괴뢰 정부이기는 하나 하나의 정식국가인 만주국 관리가 되었다. 정식 공채시험을 통해 만주국 관리가 되고 난 뒤 특유의 성실성과 리더쉽으로 승승장구한 뒤 철도국장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당시 만주국의 철도국은 단순한 철도 업무만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자체 병력으로 만주와 중국일대에 활개를 치는 마적, 비적, 지역 군벌들과 충돌 하면서 선로를 늘려 나가며 이를 수비하는 역할까지 해야 했기에 하나의 무장세력 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의 간섭이 심하고 주권이 없는 허수아비 황제인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 휘하의 나라인지라 나라의 기능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조선의 망국을 통탄한 애국지사들이 만주로 몰려들었고 우후죽순 격으로 이런저런 애국단체들이 등장하고 서로 견제하고 질시하며 다투었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군 단체와 민족주의 진영의 민족보수 독립군단체, 무정부주의인 아나키스트들의 애국독립단체 등등이 서로 엉키고 설켜서 공동의적인 일본 놈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해치고 죽이는 일로 역량을 소비하니 한심한 일이였다. 당시 이러한 독립지사들의 한심한 역량을 보고 통탄한 천만복은 자신의 독자적인 군사세력을 형성하여 우리 국민을 위해 투쟁하였다. 당시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마적이나 비적들이 침범해서 사람을 살육하고 재물을 뺏어가도 어느 누구하나 이를 적극적으로 쫓지 않았고 일본 군대라 해봐야 멀리서 요란하게 총질을 해대면서 마적이 물러가기를 기다렸다가 들어와서 피해 상황을 휙~하니 둘러보고 가는 게 일이고 중국군벌이나 토착세력들 역시 자신들의 이해사항이 없으면 모른 체하는 게 관례이다시피 했는데 천만복의 군대는 만주일대 광활한 지역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동족마을 보호에 앞장섰으며 전투경험이 많은 집단이여서 웬만한 마적, 비적들은 상대도 되지 못했기에 이런저런 세력을 굴복시키고 세력화하여 큰 군사집단을 이루었다. 


이제는 웬만한 세력의 군벌을 자처할 수 있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된다. 마적, 비적들에게는 또 다른 마적, 비적세력이라고 천만복의 군대를 폄하할 수 있겠으나 분명한 것은 천 만복 군대는 오직 조선백성 마을을 침범하여 약탈하는 마적, 비적만을 소탕하였지 그렇지 않은 마적, 비적들에게는 손도대지 아니하였다. 이래서 마적, 비적들 사이에는 조선 백성들 이주 촌을 습격, 약탈하는 것은 천 만복 부대에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것과 같다는 인식을 하게 되고 웬만큼 세력이센 마적이나 비적세력도 천만복 군대의 힘이 미치는 지역이나 세력권에서는 눈치를 아니 볼 수 없었다. 비록 천만복 군대를 이길 만한 군세를 지닌 세력이라도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천 만복 군대와 싸워 비록 이긴다 해도 힘이 다 빠진 이틈을 타서 다른 마적, 비적세력이 공격해 올 수 있기에 그랬다. 


당시 중국내부 사정도 각 지역마다 군사를 지닌 군벌들에 의해 지배되는 시기였고 중앙의 통제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 시기였기에 전국은 수천 수 만개의 지역 세력들이 나름 힘을 과시하며 서로 먹고 먹히기를 반복하던 때였다. 이렇듯 수년에 걸쳐서 우리민족과 백성을 위해 힘써온 천만복은 이 일대 우리 동포들의 큰 영웅이 되었지만 그의 이름은 역사의 어느 한 귀퉁이에도 오르지 못한다. 그가 비록 조선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조선인 마을을 지켜 주었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또 다른 하나의 마적, 비적 단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천만복의 수많은 업적은 그저 말 좋아하는 이들의 옛이야기 속에서 간간히 전해져오다 그 맥이 끊어지고 만다. 또한 그가 자손을 두지 못했기에 민족의 한 영웅의 한줄기 바람처럼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어찌되었든 만복이 어린 시절 만복이 부모에게 찬밥 한 술 얻어먹은 값으로 만복이 관상을 보아준 그 걸승은 밥값 한 번 제대로 한 셈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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