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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행운의 사나이

2021.06.01

 



                  행운의 사나이


 얼바인 에서 고급-바를 운영하는 A씨는 40대 중반의 사업가이다. 10대 후반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이민 오게 되었는데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애를 먹다가 고등학교를 겨우겨우 졸업 한 뒤 동네 커뮤니티 칼리지를 몇 년 다니는 둥 마는 둥하다 그만 두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공부를 곧잘 했었는데 또래에 비해 너무 늦은 고3 무렵 이민을 오다보니 영어가 통 딸려서 학업에 흥미를 잃게 된 것이다. 이리저리 백수 생활을 하는 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작은아버지(숙부)가게라도 나가서 작은아버지를 도와 드리라’ 고 하셔서 꽤나 큰 규모로 세탁소를 하시던 숙부가게에서 일을 거들어 드리게 되었다. 숙부는 당시 까지도 독신 이었는데 그 나이까지 결혼을 완강히 거절하는 것을 보니 독신주의자가 아니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한다. 


이렇게 몇 년 숙부를 도와 드렸는데 무슨 영문인지 숙부가 돌연 한국으로 귀국 한다며 그 가게를 맡아서 해 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임시로 가게를 봐 달라는 소리로 알았는데 삼촌은 귀국하신 뒤 출가 하셔서 영 돌아오지 않으셨다. 이러다보니 가게는 A씨 소유가 되고 말았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백 만 불이 넘는 공장까지 딸린 세탁소 사장이 되었으니 얼 떨떨 하기만 했다 한다. 남들은 속사정도 모르고 A씨의 부모가 큰 부자여서 A씨가 이렇게 어린나이에 사업가가 되었나보다 하곤 부러워하였지만 A씨 부모님은 가난하지는 않지만 그저 작은 마켓을 운영하며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의 형편인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세탁소를 몇 년 운영하다보니 점차 싫증이 났다. 그래서 세탁소를 판돈으로 은행융자를 끼고 APT를 하나 사놓고는 자신의 꿈인 세계여행을 떠났다. 


부모님에게는 비밀 이었지만 여자 친구와 함께였다. 이 여자 친구가 임신을 하고 아들 쌍둥이를 낳는 바람에 현재의 부인이 되었지만 그때는 철부지들의 밀월여행 이었다. 유럽 여러 국과 러시아, 캐나다, 아프리카, 호주까지 거의 2년에 걸쳐서 세계구경을 다녔다. 호화판 여행은 아니었고 돈이 부족하면 그때그때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세상 구경을 한 것이다. 세계여행을 다녀와서 보니 APT값이 벼락같이 올라있었다. 세계여행 다니면서 투자한 돈의 배 이상을 번 셈이었다. 여기에다가 방세도 꽤나 올라 매달 들어오는 월세수입이 만만치 않았다. 이때는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지 못해 안달을 하던 때여서 크게 어렵지 않게 융자를 얻어 이번에는 LA인근 부에나팍에 있는 MOTEL을 사서 이것을 운영하며 이곳을 신혼집을 삼아 살기 시작했다. 


이때 벌써 아들 쌍둥이도 태어난 뒤여서 안정이 필요했다. 별로 열심히 살지도 않았는데 30도 되기 전에 큰 부자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아내인 쌍둥이 엄마는 이곳 미국에 공부하러 와있던 유학생 이었는데 자신마냥 공부에는 흥미가 없는 딴따라 유학생이여서 서로 말이 잘 통했고 노는 물이 비슷했다고 한다. 처음 만난 곳도 건전하게도(?) 나이트클럽 부킹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성격이 명랑하고 싹싹해서 주위사람들에게 인기도 있었고 애교만점의 사랑덩어리였다. 쌍둥이 엄마는 한국에서 중학교 졸업하고 난 뒤 이곳 LA에 유학을 오게 되었는데 장인, 장모 되시는 분들이 딸의 싹수로 보아 한국에 계속두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할 것 같자 이모가 살고 있던 미국에 유학차 보낸 것이다. 무남독녀 외동딸이 무늬만 이라도 학벌을 따 주기를 원해서였다. 


제주도 토박이인 장인어른은 평생을 제주도에서 감귤 농사로 늙으신 분이였는데 그 인근에서 땅 부자로 소문난 분이였다. 그냥 우연히 만나게 된 부인도 땅 부자집 무남독녀였으니 처갓집의 그 많은 땅도 결국 나중에는 A씨에게 오게 되었으니 결국 복덩이를 아내로 맞게된 것이다. A씨는 부인이 땅 부자집 외동딸이라고는 결혼 전이나 그 직후에도 생각지도 못했고 결혼할 당시만 해도 처갓집에서 A씨가 대학도 졸업 못한 사람이라고 결혼을 결사반대 했었기에 처갓집에 대한 반감도 있어 별로 처갓집 상황에 대해 알려하지도 않았다. 허나 나중에 보니 그러했던 것이다. 결혼할 당시 처갓집에서 집을 사 주겠다고 했으나 그때 까지도 자신을 반대했던 장인장모가 미워 필요 없다고 거절했고 속으로 ‘시골서 농사짓는 영감이 무슨 돈이 있다고 집을 다 사준대? 미국 집값이 장난인줄 아나?’ 라고 하며 애써 무시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처갓집 소유의 땅이 수십 만 평이 넘는다는 것을 알고는 입이 딱 벌어졌다한다. A씨는 그리 부유한 부모 밑에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던 큰 재물 복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모든 일이 술술 풀려나갔던 것이다. 


필자가 처음 A씨의 사주팔자를 보고 왈 “부모, 형제 덕은 크지 못하지만 자기 스스로의 재물 복이 아주 많군요! 20대 초반부터 횡재수가 있고 처복이 크니 부유한 처를 만나게 되어 처가덕도 많이 보게 되는 그런 운세입니다. 20대 초부터 운의 흐름이 용신, 희신운으로 계속 흐르니 계속 승승장구할 팔자이며 건강과 수명운도 좋아 건강하게 90세를 넘어 100세 가까이 장수하리라 보여 집니다.”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A씨의 재산은 지가 스스로 알아서 자고나면 쑥쑥 커지니 이제는 돈에도 관심이 시들해져있던 터에 한국에서 중, 고교를 같이 다닌 고향친구 몇 명과 만나 회포를 풀던 중 어린 시절 밴드를 구성해서 쿵-쾅 거리던 옛 추억이 발동 자신이 바를 차리고 이곳에서 옛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소일하며 일주일에 몇 번 연주도 하며 신선처럼 놀고 산다. 뼈 빠지게 죽을 둥 살 둥 노력해도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로 사는 사람도 있고 A씨처럼 평생 별로 노력도 안하는데 모든 일이 술술 풀려가는 이도 있는 것을 보면 팔자라는 게 공평치 못하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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