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50 이 넘어 팔자 속 재주를 발견하다. -문창성-

2021.07.02





                     50 이 넘어 팔자 속 재주를 발견하다. -문창성-


 필자의 지인 중 천 선생 이라는 분이 있다. 지금은 나이 60중반이 넘었지만 필자를 처음 만날 당시는 50대 초반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분은 경기도 여주 분이시다. 몇 대 조상 때부터 여주의 큰 지주 집안이여서 어릴 때부터 의식주에 풍성함이 있었다. 6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고 어릴적 부터 책을 좋아하여 많은 독서를 하였다. 허나 학과목에는 별 흥미를 못느껴 그리 열중하지는 않았으나 워낙 두뇌가 명석하여 중간 이상의 성적은 유지 하였고 대학은 서울에 있는 그렇고 그런 K대학에 진학하였다. 천 선생은 대학시절은 퓽류를 즐기며 친구들과의 깊은 우정 쌓기 정도로 끝났다. 시대가 하수상하여 툭하면 결강이나 휴강하기 일쑤여서 일부 고시파를 제외하고는 ‘먹고 대학생’이 주류였던 시기여서 가뜩이나 학업에 별 뜻이 없는 천 선생을 더욱 그리되도록 했다 할 수 있다. 


아무튼 집안이 부유했기에 학비나 생활비 걱정이 없고,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다 가질 수 있는 환경 이여서 삶의 치열함도 없었다 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 뛰어나지도 못하니 집안의 기대도 별로 없었고 다른 형제들이 워낙 뛰어나 천선생은 집안 내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한 존재였다. 학교졸업 후 몇 년 무역회사에 취업하여 직장생활을 했으나 사장이었던 학교선배와 대판 싸우고 때려 친 뒤 자신이 직접 사업에 나섰다. 어머니를 졸라 사업자금을 마련하여 첫 시작한 사업이 섬유업 이었다. 홍콩이나 마카오 등지에서 양복기지를 들여와 양복점 등에 납품하는 사업이었는데 처음에는 예상외로 여기저기 주문이 밀려들어와 정신없이 납품을 하였는데 때가 되어 수금이 되어야하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제대로 수금을 해주는 집이 열 집에 한 집 꼴로 제대로 되지 못했다. ‘외상 이라면 황소도 잡아 먹는다’는 심보로 기지를 납품받아 놓고는 돈 줄 때가 되자 ‘배 째라’ 라는 식으로 나온 것이다.


새파란 젊은 애송이가 ‘돈은 나중에 주시고 일단 한 번 기지를 써보라!’ 는 말은 ‘일단 납품을 받으시고 돈은 주셔도 좋고 안주셔도 좋다’는 말로 들려 ‘아이고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여기저기 소문이 나서 너도나도 주문을 했던 것이다. 돈 쳐 들여서 병신 짓만 하고만 꼴이 된 것이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다가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첫 아들까지 낳았다. 당시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매달 한 번 마누라와 자식 옆에 끼고서 여주 행 버스를 탔는데 어머니로부터 생활비를 얻어오기 위함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본가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손주가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시며 이런 저런 농산물과 반찬류를 바리바리 다 들고 올 수 없을 정도로 싸주시곤 했다. 물론 넉넉한 한 달 생활비를 며느리 손에 쥐어 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지만 매달 실업자로 이렇게 사는 것도 괴로워 두 번째 도전에 나선다. 자금 조달원은 물론 어머니였다. 



워낙에 큰살림이고 젊은 시절부터 종갓집 대 살림에 능숙하신 어머니여서 웬만한 돈은 이리저리 굴릴 수 있을 정도의 감당은 있으셨던 거였다. 걱정이 늘어지는 어머니에게 ‘이번에는 걱정마세요.’ 라고 큰 소리를 친 뒤에 벌린 일은 농산물 도매상이었다. 중림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과일 도매상을 하던 대학 동창생과 함께 동업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는데 사업을 시작한 뒤 며칠 되지 않고서부터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사람들이 나타나 돈 내 놓으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소란을 피우는 통에 장사를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알고 보니 동창생인 친구는 사방팔방에 빚이 연 걸리듯 주렁주렁 걸려있었고, 하고 있는 가게역시 몇 달째 가게 세를 내지 못해 곧 쫓겨날 지경 이었는데 겉만 번지르르 하게 하고서 천 선생을 속인 셈이었다. 대학 동기생들과 모임이 있을 때 그 친구는 당시 귀하디귀한 마크-V 차를 기사까지 대동해서 타고 와서는 회식비까지 자기가 다 내 놓는 호기를 부렸기에 대단히 성공한 것으로 오해했던 거였다. 이런 동기생을 보고 당시 할 일없이 놀고 있던 천 선생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할 일을 찾고 있다는 이른바 여주 땅 부자 천부잣집 아들은 사기꾼에게 매끈매끈하게 기름칠해 놓은 꿀꺽 삼키기 쉬운 송편 같아 보였을 것이다. 투자한 돈만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천 선생에게 사업에 필요한 절차라고 속이고 여기저기 다가 연대보증까지 세워 놓아서 채권자들에게 ‘사기죄’ 로 고소까지 당하는 곤혹을 치뤘고, 돈도 무척이나 더 깨지고서야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사기 친 동기는 친구를 못살게 해 놓고는 남미 어느 나라 론가로 도망쳐 버려 찾을 수도 없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부잣집 아들의 시련이었다. 이후에도 의류사업, 음료수사업, 운수사업 심지어 통닭집까지 해 보았으나 제대로 한 번 서보지를 못하다가 나이 50이 넘고 만다. 이때 우연한 기회에 필자와 자리를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 필자가 천 선생을 보니 눈, 코, 입 윤곽이 뚜렷하고 얼굴색이 허여 멀거니 윤기가 있어 귀공자풍으로 보였고 특히 두텁고 붉으며 뚜렷한 입술이 더욱 더 인상을 귀해 보이게 하는 모습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천 선생이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묻기에 사주팔자를 세워보니 역시 부모를 뜻하는 인성이 용신으로 나왔고 재물을 뜻하는 水(수)가 풍성하나 자신이 스스로 이루는 부는 아니고 인덕에 의해 평생 누리게 되는 팔자여서 명문가의 자손으로 부모형제나 주위의 인덕에 의해 평생 호위호식하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사주구성이었다. 천선생의 사주를 보면서 첫째로 눈에 띄는 것이 문창성(文昌)이였는데, 이 문창성은 사주속의 흉성(凶星)을 길하게 만들며 또 지혜가 있으며, 총명하며, 문채가 수려하며, 풍류를 즐기는 선비를 연상시키는 살이다. 일간이 甲이면 일지에 巳가 있으면 문창성이 되는데 이런 식으로 乙-午, 丙-申, 丁-酉, 戊-申, 己-酉, 庚-亥, 辛-子, 壬-寅, 癸-卯가 되면 문창성이 성립된다 할 수 있다. 


필자 왈 “천 선생님께서는 평생 이런저런 사업을 하시다 실패하셨다 하셨는데 평생 헛수고만 하신 것 같습니다. 천 선생님은 문창성이 강해서 일반 사업은 맞지 않고 글 쓰는 일이나 학원사업을 하셨으면 좋았을 것을 잘못 하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선비 격 사주이지 장사꾼이나 사업가 사주가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라고 충고해 드린 것이 기억난다. 필자의 충고 때문인지는 모르나 그 후 천 선생은 강남구 대치동에서 동서와 함께 대학입시 학원을 운영하여 크게 성공 하였고 틈틈이 글을 써서 신문사에 기고도 하더니 얼마 전 책까지 출간하셨고 작은 출판사도 시작 하셨다한다. 50이 넘어 팔자 속 재주를 발견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천 선생님의 건승을 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좋아요
태그
인기 포스팅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