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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철부지 영감

2021.07.06

 




                       철부지 영감 


 오래전 이야기 이다. 루이지애나에 거주하시는 김여사님은 미국에 이민 오신지 40년이 넘는 올드 타이머이시다. 한국에서 모 명문여대를 졸업하고 당시 결혼상대로 제 1순위 신랑감이던 일명 ‘재미교포 사업가’인 남편을 만나 결혼,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던 ‘아메리카드림’을 쫓아 미국에 이민 오시게 되었다. 친구들은 이런 김여사님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그도그럴것이 당시에는 유명한 여자 영화배우나 탈랜트들이 결혼을 하면 으레 ‘재미교포 사업가 모씨와 결혼’ 이라는 재목으로 언론매체를 장식하던 때였기에 당연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꿈에 부풀었던 김여사님을 실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것은 한국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살림을 시작하기 위해 미국에 도착하면서 부터였다. 


넓은 정원의 잔디밭과 분수대 그리고 대문에서 한참 들어가야 나타나는 대궐 같은 저택은커녕 길가에 쓰레기가 넘치는 개 딱지 같은 판잣집 (소규모의 단층 목조 주택은 영락없는 한국의 판잣집 형상이다) 사이사이를 지나 도착한 그들이 말하는 2층짜리 APT는 한국의 건축공사 현장에 임시로 지어놓은 함박 집 같았고 겨우 칸막이를 해놓은 한구석이 두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신혼집 이라는데 기가 막혔지만 더욱 기가 막혔던 것은 원 베드룸인 그곳에 사별하고 혼자된 시아버지와 마약으로 정신이 반쯤나간 장가 못간 형까지 4식구가 같이 살아야 한다는 점이였다. 남편의 비즈니스라는 것도 흑인들 우글거리는 동네의 한 가게 구석자리를 서브리스 하여 가발 등을 파는 좌판 수준의 일이였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재미교포 사업가’로 행세했던 것이다. (하기야 길거리에서 좌판 펴고 장사하는 것도 이곳에서 비즈니스라고 부르니 비즈니스맨이지 샐러리맨은 아니니 거짓말은 아니라고 우겨도 할 말은 없다) 


이런 끔직한 환경 속에서 3년을 버티며 매일매일 싸움을 하다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집에는 창피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고 냉가슴을 앓았다. 다행히도 기본 영어 실력이 있어 직장에 취직이 되었고 혼자 독수공방 하며 세월을 보냈다. 몇 번 이런저런 남성들과 인연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남자는 하나도 없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한 장탄식은 “이곳 미국에 사는 남자는 죄다 쓰레기 인간들만 있는가? 아니면 내 복이 그것밖에 안되는가?” 였고 그 후로 남자를 잊고 긴 세월을 홀로 살았다. 그런데 몇 년 전 필자가 김여사님과 상담을 하면서 “여사님 내년에는 남자분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라고 하니 “아이고 선생님도 제 나이가 몇 살인데 남자를 만납니까? 그동안 상담하시며 제 상항을 다 아시겠지만 남자라면 이제 넌덜머리가 납니다. 그런 말씀마세요” 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그 후 자신과 한 남성분과의 궁합을 묻는 전화가 왔었고 궁합은 그런대로 괜찮게 나와서 나온 대로 설명을 해 드렸고 나중에 들으니 그 영감님과 사랑이 싹터서 두 분이 살림을 합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대 영감님은 젊어서 일찍 부인과 사별을 하셨고 어린 남매 키우며 평생을 혼자 산 분이였다. 아들, 딸 다 키워서 시집, 장가보내고 나니 그동안 모아놓은 몇 푼 안 되는 돈도 다 없어졌다고 한탄하는 영감님께 김여사님은 “우리 나이에 돈이 많으면 뭐합니까? 나라에서 보조금 나오는게 있으니 그 돈에다가 우리 능력 닿는데 까지 힘껏 일해서 보태면 우리 두 늙은이 어떻게 생활이야 안 되겠어요?” 라고 하며 영감님을 위로 했다한다. 두 분의 꿈같은 신혼생활이 시작되었고 가끔 김여사님과 상담을 하다보면 전화 너머에서 들리는 김여사님의 목소리에 생기가 넘치고 무척이나 젊어지신 느낌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비록 늦게나마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영감님을 만나 가난 하지만 활기차고 행복하게 사시는것 같아 필자도 덩달아 기분이 흐뭇했다. 


이러던 어느 날 김여사님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선생님 제 팔자는 대체 왜 이 모양입니까? 늙어서까지 저만 왜 이렇게 복이 없지요? 아이고 내 팔자야~ 휴~ ” 큰 한숨을 내쉰 뒤 울먹이신다. 사연은 이렇다. 늘그막에 찾아온 꿈결 같은 사랑은 김여사님을 무척이나 들뜨게 했다. 몸이 약한 영감님을 위해 (힘든 노동시간이 끝난 뒤에) 시장에 들려 찬거리와 몸에 좋은 이런저런 음식거리를 준비하며 너무도 행복 하셨다한다. 백화점 판매직으로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겨우 50불 가까이 버는 것이 전부였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한 달 내내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세금 공제하고 손에 쥐는 돈은 800불 남짓 이지만 이 돈을 아끼고 저축하여 영감님 보약도 지어 먹였다. (오래전 이야기라서 현실감이 떨어지나 당시에 김여사님 사는 동네가 특히 미국에서 가난한 주였다) 평생 혼자 살아온 김여사님은 자기 혼자 먹으려고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없었기에 누구를 위해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고 몸에 좋은 약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행복하셨다. 또 이렇게 해 줄 수 있는 자신이 무척 뿌듯했다 하신다. 헌데 이런 행복도 잠시였다. 


살림을 합치신 뒤 2년 정도가 지나자 영감님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만나 노름을 하느라 매일 저녁 밤을 세우고 들어오기 일쑤였고 “몸에 좋지 않으니 술, 담배 좀 줄이시고 밤샘 하시는 것 좀 삼가세요. 몸도 좋지 않은 양반이 하루가 멀다하고 그러시니 어떻하실려고 그래요? 그러다 병이라도 나서 쓰러지면 어떡해요?” 라고 하는 김여사님 걱정에 벌컥 화를 내며 “니가 네 마누라야?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야! 나 좀 그냥 내버려 둬! 잔소리 좀 그만하고!” 소리소리 지르며 김여사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김여사님이 얼마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모르고 자꾸 엇나가는 것이었다. 한번은 몸이 약해 자면서도 식은땀을 흘리는 영감님이 안쓰러워 근무시간 끝난 뒤 생닭을 사고 인삼과 이런저런 약재를 준비하여 푹 고아서 저녁때 먹이려고 준비를 해두었는데 통 귀가를 하지 않아 전화를 해 보았더니 시끌벅적 하게 화투치는 소음소리 속에 전화를 받은 남편 왈 “나 지금 바쁘니까 혼자 먹어. 나 오늘 집에 못가!” 하더니 전화를 뚝 끊어 버리고 다시는 전화를 받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화도 내보고 달래도 보고 해도 영감님은 계속 영~ 삐딱하게 나온다는 거였다. 전화 말미에 “혹시 우리 영감님이 여자가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라고 묻는 김 여사님이 안타까웠다. 몸도 약해 빠지고 땡전 한 푼 없는 70이 훨씬 넘은 영감태기에게 어떤 미친 여자가 관심을 둔다는 말인가? 필자 왈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으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라고 답하면서 인생 끝자락에 찾아온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 애태우는 김여사님의 심정이 안타까웠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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