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형 착한동생
필자의 고객 중 송 씨 형제가 있다. 한 배속에서 나왔지만 형제는 너무 다르다. 우선 2살 위인 형의 경우 인물이 좋고 덩치도 크고 키도 늘씬하다. 동생은 이에 반해 얼굴도 꽤 죄죄 하게 생겼고 마른 체형에 땅 달보다. 지금은 신도시가 되었다지만 옛날 일산 방향은 군부대가 산재해 있는 시골 촌구석 이었다. 형제는 이곳에서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아래로 누이동생이 있었지만 어려서 홍역으로 죽어서 형제만 남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관심은 형 에게만 있었다. 옛날 대개의 가정이 그렇듯이 장자를 매우 우대하는 관습도 있었지만 형은 대우를 받을만했다. 잘생긴 인물에 머리도 좋아 공부도 늘 우등생이니 못생긴 얼굴에 머리도 나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도록 한글도 제대로 못 깨우치고 구구단도 외지 못하는 동생과는 너무나 대조적 이여서 사랑 받을만했다.
사랑도 미움도 ‘자기하기 나름’ 이라고 형은 하는 짓이 명석했고 동생은 미욱했다. 부모님은 시골논과 밭까지 팔아가며 집안의 희망인 형을 위해 대학교육까지 시켰지만 동생은 중학교에도 보내주지 않아서 아버지 농사일 도우며 부모님과 함께 형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형은 대학을 다니면서 어려운 집안 형편이면 누구나 다 하는 아르바이트 한번 하지 않고 하숙은 최고급 하숙만 고집하였고 용돈도 친구들보다도 훨씬 더 풍족히 가져다 썼다. 집안 형편이 좋다면야 무슨 상관 이랴만 이런 형 때문에 가족들은 어떤 경우 한 달 내내 끼니를 밀가루와 보리로만 연명해야 했다. 못 배운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못 배운 한을 형이 다 풀어줄 것이라 믿고 귀한 대학생은 돈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며 후원했다. 동생은 반대로 늘 일에 시달리면서도 부모님에게 구박만 받는 게 일이였다. ‘밥을 너무 많이 먹는 다’ ‘게을러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다’ 라고 하며 쥐어박기 일쑤였고 옷이 다 헤어져 반 벌거숭이가 되도록 옷을 사주지 않아 옷 사 달라 했다가 매만 뒤지게 맞았다 한다.
“못생기고 무식 한데다가 머리까지 나쁜 놈이 옷은 무신 옷이여!” 라는 말과 함께 형에게 부쳐줄 돈도 부족한데 병신 같은 게 가뜩이나 돈 걱정에 시름하는 부모를 더 힘들게 한다고 곡괭이 자루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이런 큰 기대 속에 형이 졸업을 했고 어찌된 영문인지 곧 실업자가 되었다. 공부는 뒷전이고 맨날 여학생 꽁무니 쫓아 MT 다, 단합대회다, 미팅이니 하여 휘돌아 쳤으니 당연한 결과였으나 등골 빠지게 뒷바라지한 부모님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집에 재수 없는 동생 놈이 있어서 형의 앞날에 마가 끼게 했기 때문” 이라고 하며 구박을 했다. 형은 사업을 한다하며 집에 그나마 남은 천수답까지 싹싹 긁어서 팔아 읍내에 나가 신문보급소 사업을 시작했다. 동생은 당연히 착 출 되어 보급소에서 힘든 막일은 도맡아 하고 배달도 남들의 3-4배 분량을 해냈으나 가뜩이나 낙후된 지역인데다가 형은 소장이랍시고 교제를 한다며 읍내다방 순례에 열중이고 사업은 뒷전이니 잘 될 리가 없었다. 결국 홀랑 망해먹고 객지로 내빼 버렸고 동생만 그 뒤처리와 시달림에 똥줄이 탔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동생은 항시 부모님을 곤경하고 무엇이든 부모님께 해 드리지 못해 안달이었다. 반면 형은 부모 형제는 뒷전이요 무조건 지가 먼저였다. 몸에 좋다거나 진귀한 음식이 생기면 무조건 자기가 먼저 꿀꺽했다. 어떤 인생의 계기로 형제가 미국에 건너오게 되었는데 이곳에서도 형과 동생의 관계는 여전했다. 다운타운에 조그마한 옷가게를 형제가 함께 운영 했는데 동생이 이런저런 문제로 필자와 자주 상담을 하였다. 이 형제의 과거 이야기도 이런저런 상담을 통해 듣게 되었다. 동생은 나이 40이 넘도록 노총각 신세였는데 형은 벌써 2번이나 결혼했고 2번이나 이혼했다. 이 과정에서 자식이 3명 두게 되었는데 조카 한명은 첫 번째 형수가 데려갔지만 두 번째 형수는 자식도 귀찮다고 내 팽개치는 바람에 동생이 두 조카를 키우게 되었다. 조카들 애기 때부터 아빠처럼 알뜰살뜰하게 씻기고, 먹이고, 재우며, 뒷바라지를 했다.
친 애비인 형은 맨날 밖으로 나도는 게 일이였다. 여자들 만나고 돈 생기면 노름장 들락거리고 유흥업소에 출근도장 찍는 게 형의 일과였다. 조그만 옷가게라고 해도 목이 좋아서 장사는 늘 잘 됐는데 노상 돈 때문에 쩔쩔맸다. 형이 명색이 사장이라고 하루에 1-2시간 머물며 가게에 와서 노닥거리다 계산대 에서 돈 집어 들고 나가기 때문이다. “형 그 돈은 안 돼! 내일 박 사장 네 집 결제해줄 돈이야. 이번에 안주면 물건 안준다고 했어!” 라고 하며 동생이 사정하면 눈을 부릅뜨고 “이 병신새끼야! 며칠만 더 참아 달라고 그래. 장사하다 보면 늦을 수도 있는 거지, 이 새끼는 무식해서 영 융통성이 없어!” 라고 하며 나무랐다. 한국에 사는 부모님들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내야 하는데 이날만 되면 동생은 똥 마려운 강아지 쩔쩔매듯이 애를 태워야했다.
형이 돈을 다 빼가기 전에 돈을 마련해서 부쳐야 두 노인네가 한 달을 살 텐데 형은 이런 것 에 영 관심이 없으니 매달 동생만 애가타서 쩔쩔 메었다. 이런 형의 방해(?)를 극복하고 겨우겨우 돈을 부쳐드리고 전화를 드리면 부모님은 노상 “아이고 늙으면 죽어야 하는데 늙은 목심이 죽지도 않고 이렇게 질기게 살아 니형 등골만 빼먹는구나. 형한테 고맙다고 꼭 전해라! 네놈도 형 속 좀 그만 썩이고(?) 이제 정신 좀 차리라. 일전에 니형 한국 나왔을 때 보니까 얼굴이 영 아니더라. 얼마나 고생이 심하겠니? 너라도 이제 정신 차리고(?) 형 속 썩이지 말고(?)말 잘 들어야 한다. 너는 평생 니형 근심 덩어리인기라!” 평생 받아온 설움인지라 이제는 만성이 되어서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자신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라주는 부모님이 야속할 때도 있다고 필자에게 살짝 고백한 적도 있다. 정말 착한 아들이요, 착한 동생이다. 지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부모에게 인정받는 형에 비해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다 참아내고 평생을 성실히 살면서도 평생 인정받지 못하는 동생이 안쓰러웠지만 언젠가 필자 앞에서 한탄하는 동생에게 필자가 해 줄 수 있었던 말은 “다 자기 팔자대로 사는 것인데 어쩌겠습니까?” 였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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