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 대한 부모사랑의 자세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으리라. 그 사랑의 정도와 표현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K씨와 R씨는 대학 동창사이로 미국에 우연히 같은 시기에 이민 왔고 또 우연히 만나 친 형제처럼 지내는 친구사이다.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했고 첫 아이도 둘 다 아들인데다 같은 해에 낳았다. 플러튼 이라는 도시에 거의 같은 시기에 이사를 왔고, 집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곳에 찜질방을 겸한 한국식 싸우나가 처음으로 생겼고 이곳에서 목욕을 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남녀 공용 찜질방 이였기에 둘 다 가족 동반이었고 두 가족은 금세 서로 친해졌다. 사는 형편도 비슷하고 모든 여건이 비슷해 와이프 끼리도 금방 가까워졌다.
서로의 집을 서로가 자주 방문해서 함께 식사도 하고 담소도 나누다 보니 서로의 집에 숟가락 젓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로 서로의 집안 사정을 터놓고 지냈다. K씨와 R씨는 둘 다 컴퓨터 엔지니어로 직장에서 꽤나 높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예전에 필자를 찾았을 때도 두 가족 부부 동반이었다. 모든 것이 유사한 K씨와 R씨는 유독 자식에 대한 태도가 상이(相異)했다. K씨는 아들에게 거의 참견을 하지 않는 자유방임형이며 친구처럼 대하는 자세였고, R씨는 작은 것에도 일일이 규율을 정하고 예의바름을 강조하는 엄격한 아빠였다. K씨의 아들은 K씨에게 ‘아빠 아빠’ 하며 말도 반말을 했고, R씨는 부모에게 ‘아버지, 어머니’라는 호칭에 한국식으로 꼭 경어로 존댓말을 하게하는 식이였다.
필자가 처음 K씨와 R씨의 아들들을 보았을 때 반말 짓거리를 찍찍 내뱉는 K씨의 아들이 버릇없어 보였고, 어린나이 에도 단정히 앉아 어른에 대한 존대와 태도가 점잖은 R씨의 아들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필자와 면담당시 K씨나 R씨의 아들 모두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었고 별문제가 없었는데, 몇 년이 흘러 이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자 두 아이의 행동이 상이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기와는 달리 R씨의 아들이 문제였는데 예의 바르고 무조건 부모가 시키는데로 절대 복종하던 아이가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부모하고 말을 섞으려하지 않고 심지어 눈길마저 마주 치기를 꺼려하더니 급기야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고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부모에게 “왜 그렇게 자꾸 나를 쳐다봐? 제발 나 좀 그냥 내버려 두란 말이야!” 라고 소리치기 일쑤더니 급기야 물건을 던져 현관 유리창을 다 박살 내버리는 폭력까지 나왔다 한다.
R씨가 필자를 찾아와 당황한 모습으로 “선생님 그토록 예의 바르고 순종적이던 아이가 갑자기 미친것 같습니다. 무슨 말만하면 참견하지 말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폭력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이 애가 왜 갑자기 이렇게 변한 걸까요? 정말 걱정입니다” 라고 한 뒤 긴 한숨을 내쉰다. 가만히 필자가 R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나친 사랑과 지나친 관심이 아들에게는 억압으로 느껴졌던 것 같았다. 작은 사소한 것까지 이래라 저래라 부모에게서 직접 지시를 받아야 하고, 부모의 극성스런 사랑과 관심에 보답하기 위하여 어떡하든 좋은 학업성적을 보여 드려야했기에 이것이 늘 마음의 부담으로 작용 하였고 사춘기에 이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이런 R씨와는 달리 K씨의 아들에 대한 태도는 정반대였다. 지가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식이였던 것이다. K씨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이지는 않다. K씨 역시 R씨 못지않게 아들을 사랑하지만 그 표현법이 달랐다. K씨는 아들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취급하지 않았다. 아들도 자신과 같은 별개의 하나의 인격체로 보았고, 자기 인생은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는 주의여서 아주 어긋난 행동만 아니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참견하지 않았고 아들의 결정권을 존중해 주었다. 결과론적으로 오히려 K씨의 방식이 옳았다. R씨는 아들에게 너무 집착이 강했다. 집착은 구속을 낳는다. 아들을 훌륭한 인격체로 키워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강박관념이 생겨 아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도 그대로 넘기지 못하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교정하고 지시하는 구속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K씨의 무 집착이 무 사랑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들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구속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사랑일 수 있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게 집착하여 그들의 성공으로 ‘대리만족’ 하려는 성향이 있는데 이는 옳은 사랑이 아니라본다. 자신이 의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한 이가 아들의 적성을 무시하고 아들이 의대에 진학해 주기를 바라고, 판․검사가 되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한 분들이 아들이 법대에 진학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사랑의 바른 행태가 아니라본다. 필자에게도 딸과 아들이 있는바 필자는 단 한 번도 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어차피 지 타고난 팔자대로 살아가겠지!’ 라는 생각 때문이다.
걱정하고 집착 한다고 지 팔자에 성공 못할 놈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요, 어차피 성공할 팔자를 지니고 있는 놈은 똥통 속에 던져놓아도 이를 이기고 기어 나와 성공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자신이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후원은 당연히 해 주어야겠지만 그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필자가 공부하라는 소리를 안해서인지 아들, 딸 둘 다 지독히 공부를 싫어했다. 딸은 얼굴에 찍어 바르고 나가 놀기를 좋아하더니 결국 유명화장품 회사의 메이컵 아티스트가 되었다. 아들놈은 학교 다니며 애들을 툭하면 쥐어 패서 몇 번이나 학교를 옮겨야 했지만 결국 프로격투기 선수가 되었다. 다 지들 팔자대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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