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의 차이
몇 년 전의 일이다. 필자의 오랜 고객이셨던 K사장님은 젊은 나이에 그야말로 벼락같이 돈을 많이 버신 분이다. 필자에게는 수없이 많은 사업가 고객분 들이 있는바 구멍가게 수준의 사업을 하시는 분부터 실로 큰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분 등 그 계층도 다양한데 K사장님은 한국으로 치면 준 재벌급 가까운 부를 이룬 분이다. 그것도 40대 중반도 채 안되어서였으니 매우 대단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K씨를 처음만난 시점은 K씨 운에 망조가 들기 시작하여 점점 기울어져 가는 시점이었다. K씨의 팔자가 년 월주에 길신(吉神)이 있고 일주 및 사주에 기신(忌神)이 있는 전형적인 선부후빈의 팔자여서 그리하지 않은가 하는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여러 주에 가지고 있던 HOTEL, MOTEL 수 십동도 야금야금 팔아치울 수밖에 없는 자금난에 시달리던 차 이 운세의 반전을 위해 야심차게 추진했던 에너지 사업도 동업자간의 소송에 휘말려 고전분투하고 있던 시점에서 친구의 소개로 필자를 찾은 것이다. 필자가 이리저리 아무리 K씨 운세를 살펴보아도 솟아날 구멍은 전혀 없어보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깜깜한 운 이어서 어떤 방법도 제시할 수 없어 필자 역시 답답했다. 어떤 희망적인 소리나 해결책을 기대하고 왔던 K사장님은 다소 무례하게 “에이 괜히 와가지곤 더 답답해져서 가네!” 라고 신경질을 부리며 돌아간 것이 필자와의 첫 만남 이었는데 다시는 필자를 찾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 후에도 이런저런 문제로 자주 필자를 찾았다. 아마도 이렇게 저렇게 해보아도 필자의 진단대로 일이 자꾸 꼬여가자 필자에게 신뢰가 가기 시작 했나보다.
한번은 와서 하는 말이 “제가 망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선생님 말씀에 버럭 화가 나서 선생님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선생님 욕을 막하곤 했는데 선생님 말씀대로 운을 이기는 장사는 없나봅니다. 진작에 선생님 말씀을 믿었더라면 재기할 수 있도록 돈을 좀 빼돌려 놓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는 말 그대로 쫄딱 망 했습니다”라고 하더니 긴 한숨을 내쉬시는데 얼핏 보니 눈가에 습기가 돈다. 오죽이나 속상하면 저럴까! 하는 마음에 필자도 가슴이 찡했다. 주 은행에서 이분 재산을 이리저리 처리하면서 위로금조 인지 재산청산에 협조 하라는 의미인지 몰라도 100만불을 주기로 약속했다 하면서 그깟(?)돈으로 뭘 어떻게 해보겠냐고 하며 절망스런 말을 쏟아놓는다.
물론 옛날 전성기의 이분의 재산에 비하면 100만 불은 껌 값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 돈이면 일반인 에게는 평생 만져보기 어려운 고액이라 생각되었다. 필자 왈 “100만 불이면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 아마 10명에 1명도 이정도의 재산을 만져보지 못하고 죽을 겁니다. 내게 겨우(?) 100만 불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내게는 아직도 100만 불이라는 돈 이 있다, 라고 생각해 보세요. 옛날을 잊어버리고 욕심을 버린다면 이 돈으로도 K사장님은 충분히 행복해 지실 수 있을 겁니다” 라고 이리저리 위로를 해 드렸건만 K사장님의 표정에는 절망만이 가득하다. K사장님을 보면서 필자는 문득 예전에 책에서 보았던 내용이 생각났다.
아주 오래전 중국에 어느 큰 부자가 살았는데 그의 취미가 골동품 수집이여서 그에게는 진귀한 골동품이 많았다. 이 부자가 운수 사나워져 이런저런 사업에 계속 실패하다보니 할 수 없이 자기가 아꼈던 골동품을 하나하나 팔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부자는 실의에 빠져 밥을 구걸하는 거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거지가 되었어도 골동품 중에서도 그가 제일 아끼던 차 주전자만은 버릴 수 없어 이 주전자를 지니고 도처를 유랑하게 되었다. 당시에 다른 한 부자가 역시 골동품 수집에 취미가 있었는바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이 주전자를 차지하려 했다. 부자는 아주 높은 가격을 주고 이 주전자를 손에 넣으려했다. 점점 가격을 높여가며 흥정을 했지만 거지는 절대로 주전자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자 거지는 늙고 병들어 길을 걷기도 힘든 지경에 도달하게 되었다. 부자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주전자를 차지 하고자 했다. 부자는 거지에게 호의를 베풀어 살집을 주고 밥을 먹여주며 그가 죽기만을 조용히 기다렸다. 거지의 상태로 보아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부자는 그가 죽으면 주전자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부자의 판단대로 극도로 쇠약해진 거지가 병들어 죽었다. 뛸 듯이 기뻐한 부자는 주전자를 차지하기 위해 서둘러 거지의 집을 찾아 이곳저곳 샅샅이 뒤졌으나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거지가 죽기 전에 방망이로 주전자를 박살내어 산산 조각된 주전자를 뜰에 버리고 죽었음을! 왜 거지는 주전자를 팔아 다시 재기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결국은 그토록 아끼던 주전자를 자기 손으로 깨버리고 죽어야만 했는가? 이는 ‘예전에 그 많은 귀한 도자기를 지녔던 내가 겨우 이제 하나 남은 주전자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이에 집착하다 보니 이 주전자를 포기함으로서 굶어 죽는 최후의 순간을 면할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만 것이다.
이는 결국 아집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그토록 많은 도자기를 지녔던 자신이 이제 겨우 하나 남은 주전자를 포기할 수 없다는 그 생각 하나만이 거지의 머릿속을 채워 정상적인 생각을 가로막은 것이다. 이제 겨우 하나 남은 도자기 주전자가 아니라 아직도 내게는 이토록 귀한 도자기 주전자가 남아 있으니 이를 활용하면 편하게 살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야 했다. K사장도 ‘이제 겨우 100만 불 밖에 안 남았다’가 아니라 ‘나에게는 아직도 100만 불이라는 큰돈이 있다’라고 생각했어야 옳은 것이다. K사장님의 건강을 기원한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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