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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재수 없는 오 선생?

2021.09.25

 





                재수 없는 오 선생?


 이제 막 미국 굴지의 오일 회사에서 리타이어를 한 오 선생님은 60대 초반의 남성분이시다. 오래전 한때 회사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때 자신의 거취문제로 걱정을 하다 필자의 오랜 고객이신 S변호사의 소개로 필자를 찾은 것이 인연이 되었다. 당시 필자의 진단대로 오 선생님은 무사할 수 있었고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했던 대로 오히려 그 후 영전을 하게 되어 그때부터 필자를 무척이나 신뢰하고 중요한 일이나 어려운 결정이 있을 때면 꼭 필자를 찾아와 의논을 하고 가시곤 했다. 이런 오 선생님이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하며 필자를 찾아오셨다.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선생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아~ 이건 자다가 날벼락 맞는다고 세상에 이런 배신이 있습니까? 평생 깜빡 속았지 뭡니까?”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격앙된 소리를 하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차분히 진정을 시키고 사연을 들어보니 이랬다. 


오 선생님은 미국에 이민 오시기전 한국의 국민은행에 근무를 했었다. 당시 대학 졸업 후 은행이나 증권회사에 취직하는 코스를 최고의 엘리트 코스로 인정을 해주는 때여서 명문대 출신에 은행원이니 여기저기 혼처가 들어왔다 한다. 돈 많은 부잣집 딸에서부터 모 고위공무원 따님까지 꽤나 괜찮은 혼처가 많이 들어왔는데 오 선생님은 모두 거절했다. 그때 모 여상을 졸업하고 막 입사한 고졸 여사원에 반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하늘 날씬한 용모에 오종종하게 생긴 귀여운 외모는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깜찍했고, 목소리는 은방울을 쟁반에 올려놓고 굴린듯했다 한다. (이건 순전히 오 선생님의 표현이다. 필자가 보았던 미쎄스 오는 웅장한 드럼통 몸매에 얼굴도 무척이나 커서 과거에 그랬다는 것이 영~ 믿기지 않았지만 아무튼 넘어가자!)


오 선생님 집에서는 당연히 둘의 교제를 반대했다. “ 왜? 좋은 조건의 처자들 마다하고 가난한 집의 고졸여성이냐?” 부모님들의 반대 이유였다. 허나 오 선생님의 고집을 꺾지 못했고 둘은 결혼했다. 아들 둘에 딸 하나 슬하에 두었고, 평범하게 열심히 살다가 회사업무로 미국에 파견 나왔고, 아이들이 미국화 되어가자 퇴사하고 미국 기름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한 결단이었다. 급여 수준도 좋았고 베네핏도 아주 좋아 아무 문제없이(?) 생활해 나갔다. 부인은 결혼직후부터 가사와 육아에 전념해 왔기 때문에 외벌이었지만 오 선생님의 연봉이 꽤나 높아 집도 장만하고 저축하며 여유 있게 살 수 있었다. 


아이들도 모두 착하고 영리하여 말썽 없이 모두 좋은 대학에 진학 하였고 졸업 후 큰 아들은 항공사에, 작은 아들은 모 한인은행에 취직 하였고, 막내인 딸은 변호사가 되었다. 오 선생님의 아메리카 드림은 이렇게 완성돼 가는 듯 했다. 그런데 ‘청천벽력’이라고 갑자기 미쎄스 오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 이유도 충격적 이고 자존심 상했다. 미쎄스 오 왈 “결혼 직후부터 평생 재수없는거(?) 참느라고 혼났다! 애들 때문에 이를 악물고 참아왔는데 이제 아이들도 다 커서 지 앞길 가릴 때가 됐으니 더 이상 재수 없는 인간하고는 못살겠다. 전 재산 깨끗하게 딱 반씩 갈라서 재수 없게 시끄럽게 하지 말고 깨끗하게 헤어지자. 끝나는 것까지 재수 없게 굴지마라!” 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재수 없는’ 이라는 수식어가 미쎄스 오의 말 습관인 듯싶었다. 


가장 충격적이고 화나는 게 결혼 직후부터 자신을 ‘재수 없게’ 보았다는 점이고, 평생 그런 감정을 자기에게 가지고 있으면서 숨겨 왔다고 하는 점이란다. 이런 줄도 모르고 평생에 자신이 부인에게 했던 말, 했던 행동이 스스로 수치스럽게 느껴진다 했다. 처음에는 너무도 화가 나서 부인을 총으로 쏴죽이고 자기도 죽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자식들 생각하면 도저히 그 짓만은 못 하겠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며 “작년 말에 선생님이 올해 운세 봐 주시면서 갑자기 놀랄 일이 생긴다. 터가 흔들린다고 하셔서 올해 내가 퇴직을 하니까 그런 쾌가 나왔나 보다 짐작 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런 날벼락을 맞는다는 거였네요.” 라고하신 뒤 긴긴 한숨을 내쉬며 분해하신다. 


예전에 한 번 부부 동반으로 필자에게 와서 부인을 한번 보았을 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아무 말 없이 뚱~하게 앉아 있다가 간 부인의 모습에서 뭔가 불안함을 느꼈는데 이제야 ‘그래서 그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부인의 속마음도 모르고 부인 앞에서 애교도 떨고 이런저런 말을 해온 자신을 부인이 얼마나 꼴 같지 않고 재수 없게 보았겠느냐며 부들부들 몸을 떨며 분해하는 오 선생님에게 무엇이라 위로해 줄 말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부부는 믿음으로 산다. 깨가 쏟아지는 알콩 달콩한 사랑이야 얼마나 가겠는가? 짧으면 1년? 길면 3년? 이후 부터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며 동지애라고 본다. 자녀 양육에 대한 동지적 의무, 재산 형성에 대한 동지적 목표,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감정적 동지로서 인생 이라는 파도를 함께 헤쳐 나가는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 인 것이다. 내가 극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나와 운명을 함께 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내 인생의 동지가 나의 배우자이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생사를 같이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오 선생님은 인생의 큰 실패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쎄스오는 평생을 남편과 이혼할 기회를 노리며 때를 기다려왔다는 셈인데 이분 또한 그동안 얼마나 불행한 삶이었겠는가? 어떤 이유로 평생 남편을 ‘재수없게’ 생각했는지 명확치 않지만 남편에게 불만이 있었다면 적극적으로, 대화를 통해서 이를 해소할 충분한 기회를 서로 갖지 못했다는 점이 참으로 아쉽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가깝다는 일심동체인 부부가 이런 경우 제일 먼 사이처럼 느껴진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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