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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특이한 이력의 역술인들

2021.11.29

 




                   특이한 이력의 역술인들   


 20여 년 전 쯤 오렌지카운티 플러튼 에서 특이한 한 역술인이 몇 년간 영업을 한 일이 있다. 말콤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광고도 하고 필자를 흉내 내어 모 지역 신문에 꾸준히 역학칼럼을 게제하기도 한 젊은 친구다. 이친구가 쓴 역학칼럼을 보니 꽤나 열심히 역학을 공부한 흔적이 보였다. 필자의 제자 중 중상급 이상의 실력에 도달한 이정도의 상당한 수준의 팔자분석 기법을 지면을 통해 보여주곤 했다. 아마도 이정도 사주팔자를 풀어내려면 약 4~5년 정도는 이공부에 열중 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이 친구는 스스로 광고에서 소개 한대로 동부 아이비리그 명문대 출신의 재원이다.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이 친구는 어떤 계기로 역학에 흥미를 느껴 공부를 시작 하였고, 머리가 총명하니 짧은 기간 내에 큰 진척을 이룰 수 있었다. 


이 말콤 이라는 친구는 개업을 하기 전에 용의주도하게도 시장조사를 위해 LA,오렌지카운티 일대에 있는 모든 철학원과 무속인 집을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방문해서 이 주변 역학인, 무속인 들의 수준을 가늠해 보았는데 물론 당시에도 역시 많이 알려져 있던 필자를 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처음에는 사무실도 없이 상담의뢰가 오면 맥도날드 매장 같은 곳에서 만나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에 구애받음 없이 상담을 했다한다. (하기야 하루에 손님이 고작 한 두 명이니 시간이 무슨 상관이랴!) 그러다가 재력가인 어머니를 졸라 아이스크림도 팔고 차도 파는 가게를 열어 이곳에서 상담을 하는 이른바 역학 CAFE를 개설했다. 


그러나 영업은 매우 부진했고 아르바이트 여학생 두 명(이 아르바이트 여학생 중 한명이 필자의 여식이다. 아마도 말콤은 지금 까지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딸내미가 어느 아이스크림 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무슨 인연 이었는지 그곳이 말콤의 가게였다)과 멍하게 마주앉아 있기 일쑤였고 너무 지루하면 클래식 기타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수준급 이었다 한다. 장사는 안 되도 아르바이트 학생들 주급은 틀림없이 딱딱 지불했는데 하루매상이 100불도 안 되는 적이 많았는데 주급은 어떻게 주는지 모르겠다고 딸내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기억이 난다. 이친구가 종업원인 두 명의 아르바이트 여학생을 앞에 두고 사장으로서 조회시간에 한두 마디씩 했는데 한번은 어깨에 힘을 꽉 주고 “내가 이 사주 까페를 열기 전에 이 일대 철학원이고 점집이고를 거의 빠짐없이 들려봤는데 수준이 죄다 바닥이여서 내가 최고수임을 알게 되어 자신감이 있어 과감하게 사업을 시작했다. 


그중 구도원이가 제일 낳고 열심이더라!” 라고 필자를 과분하게도(?)평가했다한다. (이것은 필자의 딸이 눈 동그랗게 뜨고 필자 면전에서 필자에게 고자질(?)한 말이므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역학인은 한곳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하다보면 상대를 직접 만나지 못해도 상대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듣게 되는데 듣고자 해서가 아니요, 손님들이 겹치다보니 그곳에 다녀왔던 분이 묻지도 않은 말에 이렇고 저렇고 이야기를 해주시기에 그렇다. 아무튼 필자는 필자의 딸을 한 달 만에 그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하고, 아빠를 도와 주말에 필자의 사무실에 나와 쎄커터리 일을 하게 하였다. 그 기간이 몇 년 되었다. 그런데 토요일과 일요일(당시는 일요일도 영업을 했었다) 딸과 함께 일하는 것이 매우 즐겁기도 하지만 매우 고되기도 했다. 


우선 출근하면 커피부터 타서 따님께 드려야 했다. 딸내미가 타 주는 게 아니라 필자가 타드려야 했다. 점심때 되면 입맛 까다로운 분이기에 런치 메뉴선정에 신중을 기해 대접해 드려야 한다. 혹시나 입맛이 없다고 깨작거리다 말면 음식이 아까 와 버릴 수도 없고 꾸역 구역 필자의 뱃속에 들어가야 하고 쪼그맣고 삐쩍 말라 티컵싸이즈 강아지 같은 녀석이 가여워 마음이 쓰리기 때문이다. 근무를 하다가 실수를 해도 야단칠 수가 없다. 언제 삐져서 아빠인 필자와 며칠씩 말을 안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삐져서 주둥이 빼물고 말상대 안 해 주는 것 이것이 필자에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문중 제일 못 견디는 고통이다. 이러니 저리니 해도 그래도 딸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아 몇 년을 주말이면 일을 시켰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사무실에 있는 예전노트를 들추다보면 아주 어릴 때 한국을 떠나 아무래도 서툰 한글로 개발새발 써놓은 딸의 필적이 남아있다. 소중해서 이 기록을 버릴 수가 없다. 말콤 선생은 나름 실력이 있지만 현실적인 독해력에서 한계가 있었던지 얼마간 고전을 하다 문을 닫고 한국으로 떠나버렸다 한다. 필자의 딸과는 잠깐이지만 종업원과 사장님의 관계였는지라 가끔 통화도 하는 것 같았는데 연세대 출신인 말콤은 예전에 신촌에서 사주 까페를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여서 아마도 그 근방에 가서 다시 사주 까페를 open 하지 않았나? 싶다. 학벌이 좋은 말콤이 이곳 LA 역학계에 명함을 내밀자 화제가 되었는데 20여 년 전 필자가 처음 이곳 역학계에 명함을 내밀던 때와 같은 화제였다. 이렇듯 요즈음은 최고의 학력을 자랑하는 이들이 역학계에 데뷔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만큼 역학에 대한 인식이 좋아 졌다는 증거여서 좋은 소식이다. 


예전처럼 역학자를 무당 취급하던 것이 많이 개선된 것이다.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역학계에 데뷔한 또 한명의 인물이 있으니 전 국회의원 이철용氏가 이이다. 이씨는 자신의 자전소설 ‘어둠의 자식들’로 유명 해졌고 그 후 ‘꼬방동네 사람들’ 등등의 사회 빈민층 실상을 담은 자전적 리얼리티 소설로 유명해 졌다. (‘어둠의 자식들’은 한국표절 문학의 대가 황석영이가 자기가 쓴 것처럼 자기 이름으로 발표했는데 원고를 넘긴 이철용氏는 당시 수배가 되어 쫓기던 처지라 항의할 수 없었고 추후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정식 출간한다) 그 유명세에 힘입어 김대중 총재의 평민당 공천을 받아 13대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돼 화제를 모았다. 


그 후에 동네 양아치 건달에서 국회위원으로 벼락출세한 기억을 못 잊어 국회의원에 몇 번 도전했으나 실패하고 그 후 이런저런 일로 먹고 살다가 급기야 포르노 소설까지 끄적였지만 옛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비실대다가 궁리 끝에 역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몇 년의 독학 끝에 통(通)이라는 철학소를 개설하여 여기저기 잡지와 TV 등에 출연하여 화제를 다시 모은다. 창녀촌 둥기(기둥서방)출신으로 교도소도 수없이 들랑거렸고 어려서 앓은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데다 초등학교 겨우 나와 갑자기 벼락출세 후 영화판도 기웃거리고, 음반도 내보고 급기야 포르노 소설까지 써보았지만 별 볼이 없자 마지막 승부수로 역학인이 된 것이다. 국회의원 출신 역학인이라는 특이한 이력으로 화제를 모으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의 역학기량을 보니 필자에게 사사한 초급수준의 제자 수준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듦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두 분의 건승을 빌어본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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