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미륵불 소동
惑世誣民(혹세무민)은 ‘세상 사람을 속여 어지러운 세상을 만든다’ 는 뜻으로 혹세무민하는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간사스럽고 요사스러운 말로 사람을 속여 자기의 이익을 취하는 이런자들은 세상의 어떤 분야에도 있어왔고 역술계 또한 예외가 아니다. 1920년 경 일제시대 때의 일이다.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신원리에서 돌부처가 하나 발견되었다. 경성 다옥정에 사는 김동익이라는 이가 이 동네 강가에서 모래를 채취하다가 강바닥의 진흙 속에서 돌부처인 지장보살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다. 높이 8척에 둘레가 6척이나 되는 이 큰 돌 미륵불상은 기이하게 여겨졌다.
자산가였던 사업가 김동익은 이부처가 행운을 주는 자손번영의 부처라 여기고 자손의 번영을 위해 150원이라는 당시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당을 세우고 이곳에 부처를 안치한 뒤 아침저녁으로 소제하며 관리를 해 두었다. 김동익이 노쇠하여 건강이 나빠지자 같은 경성에 사는 김 모여인(당시 47세)에게 이 미륵불을 돌봐줄 것을 부탁하였다. 물론 수고비를 주는 조건이었다. 김씨는 정성들여 석불을 돌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제를 하다가 뜻밖의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한다. 주의를 기울여 세심히 살펴보았더니 놀랍게도 그 석불에서 나는 소리였다고 했다. 이에 김씨는 이 소리가 틀림없는 부처님의 소리라 여기게 되었고 정성껏 기도 끝에 석불에서 나는 그 소리, 즉 부처님의 목소리를 해석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 석불과의 문답에서 금후 더욱더 열심히 석불을 돌볼 것과 석불의 소리 즉 부처인 나의 소리를 해석하여 고통과 번민에 빠진 중생들을 구원해 주라는 언질을 받게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때 석불을 처음 발견한 김동익은 이미 사망했고 김씨가 이제 석불의 주인 행세를 할 때의 이야기다. 김씨는 이 소문을 사방팔방에 퍼트렸다. 이 미륵불은 소리를 내는 말하는 석불로서 이 소리를 통해 중생의 어떤 원이나 어려움을 해결하고 성취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리하여 인근 마을에서 이 소문을 듣고 조금씩 참배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러다 한번은 경기도 광주에 사는 젊은 부부가 오랫동안 아이가 없어 고민하던 중 이곳에 와서 참배하고 기원한 끝에 미륵불의 신통함으로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다 하자 이 미륵불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먼 지방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와 점을 치고 소원을 빌게 되었다.
이런저런 소원을 빌거나 고민거리를 이야기하고 김씨의 입을 통해 부처님의 답을 들은 이들이 영험을 보았다는 증언이 여기저기서 나오자 이 부처님은 ‘우는 지장보살’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미륵불이 내는 소리를 듣고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자가 수천명에 이르렀다. 경성일대와 용산, 영등포, 인천 멀리는 광주, 목포, 부산에서까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고 심지어 내지인(일본인)까지 적지 않은 이들이 이곳을 찾았다. 물론 찾는 이들이 빈손으로 올리는 없었고 각자 적지 않은 정성(복채)을 표시하니 김씨는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다. 소원을 빌거나 점을 치는 형식은 이랬다. 기원자나 문복자가 석불의 정면에 앉아 기원을 하면 여기에 응하여 석불의 복부(또는 그 부근)에서 꾀꼬리가 우는 듯한 희미한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를 부처님이 답하는 소리라 했고 이 소리를 돌부처의 옆에 앉아있는 김씨가 해석해주는 형식이었다.
기원할 때는 밥이나 쌀 등을 바치고 여기에 더하여 한 번 물을 때마다 (또는 기원할 때마다) 쌀 석 되나 다섯 되, 돈일 경우 50전에서 1원 정도를 바치는 것이 통례였고 부자인 경우나 소원이 간절할 경우 큰돈을 바치기도 했다한다. 김씨가 떼돈을 벌자 배가 아파죽는 이들이 속출했다. 인근의 무당이나 역술인들이 그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현상은 동일한 것 같다. 필자가 이십여 년 전 처음 상담을 시작했을 때 손님이 많이 필자에게 몰리자 다른 경쟁업체에서 전화로 또는 찾아와 수없이 많은 협박들을 한 바 있고, 필자의 영업을 방해하기 위해 예약을 여러 건 쭉 잡아놓고 펑크를 내는 식으로 괴롭히는 등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으로 괴롭힌바 있는데 아마도 당시에도 그러했나 보다. 자기들은 장사가 안되 파리를 날리는데 필자만 스케쥴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자 성질이 나고 배가아파 그런 것이다.
아무튼 김씨의 지장보살 평판이 높아질수록 주변 경쟁업자들의 분노는 커졌고 급기야 경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른다. 이른바 “혹세무민으로 사기를 쳐서 떼돈을 벌고 있어 우리가 굶어 뒈지게 되었으니 저년 좀 감옥에 처넣어 주세요! 녜?” 였다. 결국 1929년 영등포 주재 경찰관이 현지에 출장하여 세밀하게 여러 가지 조사를 하였으나 ‘석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기이한 현상이 있다’라는 보고서만 제출하고 더 이상의 수사진전이 없었다. 김씨가 처벌을 받지 않자 열 받은 이들이 더욱 더 힘을 합쳐 고발하자 1932년 6월 10일 재차 수사관을 파견하였으나 역시 ‘불상의 흉상에서 기이한 소리가 나는 바 혹 물리적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라는 보고서 외에는 진척이 없었다. 경찰관(순사)들도 이 기이한 현상에 고개를 꺄우뚱할 뿐 실상은 파악하지 못했다.
두 번의 수사에서도 진상을 파악 못하자 열 받은 고발인 그분들은 급기야 영등포 경찰서장까지 찾아가 탄원한다. 드디어 유능한 민완형사 출신 당시 영등포 서장 山口昌씨가 손수 검증에 나선다. 유능한 서장은 예리한 눈으로 김씨의 눈동자를 예의주시하며 미륵불 옆에 앉아서 미륵불에서 나는 소리를 해석하던 김씨의 입술이 눈에 보일 듯 말듯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가 즉시 김씨를 체포하여 문초하기에 이르른다. 결국 이 소동은 김씨의 사기극으로 판정되었다. 이 미륵불 소리라는 것이 김씨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거의 입술을 움직이지 않으면서 내는 기막힌 재주에서 연유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경찰관들이 그렇게 옆에서 주시했어도 못 찾아낸 것을 서장은 잡아낸 것이다. 역시 대가리는 다르다! 영등포서에 인치되어 취조를 받은 김씨는 경찰의 선처로 잠깐 고생을 한 뒤 풀려나와 7~8년 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논밭을 사서 편히 여생을 보냈다한다. 기가 막힌 솜씨의 사기꾼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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