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룡득수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삼성그룹계열사에 근무하며 LA에 파견근무중인 50대 초반의 L씨는 요 몇 년 째 매우 초조한 상태에 있다. 속된말로 “별을 달 것이냐? 팽 될 것이냐?” 라는 기로에 서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별을 단다는 것은 이사(理事)로 승진하는 것을 의미하고, 팽 당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알아서 물러나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십대 중반 입사하여 30년 가까이 직장 내에서 남보다 앞서 선두 엘리트로 승승장구 해 오던 L씨에게 드디어 노년을 결정짓는 마지막 큰 시험이 닥친 것이다. 물론 이사가 된다고 해서 모든 경쟁 관계에서 벗어나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사는 계약직이기 때문에 업무 실적이 나쁘면 언제든 계약연장이 거부될 수도 있어 ‘파리 목숨’이 될 수도 있지만 이사승진에는 어마어마한 어드벤테이지가 따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이 된다.
보통 대기업체에서는 이사가 되면 개인비서에 고급승용차, 개인사무실이 공급되고 연봉수준도 어마어마하다. 이외에 판공비며 개인 업무추진비 등등 웬만한 영세사업체 사장보다도 훨씬 더 큰 수입에 사회적 지위까지 따른다. 대기업 임원이라고 하면 사회 최고위급 신분으로 대우 받는다. 비행기 탈 때도 사회주요인사로 취급돼 특별석을 배정받을 정도이고 사회구석구석 어디에서나 대우해준다. VIP가 되는 것이다. 귀족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중요한 것은 미혼자녀가 있을 경우 그 배우자를 고름에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그래서 대기업체 임원들 중에는 미혼자녀가 있을 경우 어떡하든 자신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에 출가시키려고 한다. 공직자들이 현직에 있을 때 자녀결혼을 서두르는 이유와 같다.
그것은 여기저기 자신의 힘이 미치는 곳에서 들어오는 부조금 때문만이 아니라 ‘대그룹 모 이사님따님’‘경제기획원 모 국장님 or 장관님의 아들’하는 식으로 사돈댁에 과시할 수 있으며 그만한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군대에서 별을 달아 보고 전역하느냐, 그냥 대령에서 끝나느냐 정도의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L씨는 삼성그룹에 근무하는 엘리트 그룹에서도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였고 이를 인정받아 입사동기 그룹 중 항상 앞서 승진하는 선발그룹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40대 후반에 이르면서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동기들 중에 50도 채 안되어서 벌써부터 이사자리를 넘보는 친구들이 나타나더니 생전 처음으로 승진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물론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실력에 따라서만 앞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자신보다 뒤쳐졌던 이들이 자신을 제치고 앞서나가자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처음 필자를 찾았을 때 필자가 잡은 L씨의 그해 운이 ‘환지중부’의 운이었다. ‘풍기서북 낙모하처’의 운이니 ‘노력과 능력은 있으나 써보지도 못하고 좌절하리라!’ 라고 해석될 수 있는 운이어서 불길했다. 필자 왈 “승진은커녕 까딱 잘못하면 좌천될 수도 있는 운인데 승진은 뭔 승진? 승진은 기대도 하지 말고 짤리지나 않게 바짝 몸을 낮춰야 할 운입니다.” 라고 다소 퉁명스럽게 말을 하자 L씨와 함께 앉았던 L씨 부인이 가뜩이나 날카롭게 째진 눈을 위로 치켜뜨며 무섭게 노려보며 “선생님 무슨 말씀을 그따위(?)로 하세요? 뭐 잘못되라고 재를 뿌리는 거야 뭐야? 아! 재수없어! 갑시다 여보! 뭐해요? 어서!” 성깔 한 번 매서웠다.
아무튼 바쁜 일과 속 이일을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1년쯤인가 지나서 L씨가 다시 필자를 찾았다. 와서 하는 말이 “그때 선생님 찾아뵙고 나서 선생님 말씀대로 저쪽 남미 책임자로 발령이 났더랬습니다. 미국에 있던 사람을 환경이 척박한 남미 가난한 나라의 책임자로 발령을 냈으니 직급이 조금 오르기는 했어도 결과적으로는 좌천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만둘까? 하다가 저를 이끌어 주시는 전무님이 조금만 참고 1년만 좀 기다려 보라고 간곡히 말씀하셔서 참고 기다렸는데 다행히도 다시 미국으로 발령을 받아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라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의 대장역할을 하는 전무님이 상대 라이벌 들에게 일시적으로 몰려 처신이 원활치 못했는데 어떤 계기로 입장이 반전되어 ‘전화위복’이라고 오히려 영향력이 커져 자신을 다시 좋은 자리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올해운수를 물어 그해의 L씨 운을 짚어보니 ‘대장지귀매’의 운이 나왔다. ‘갈룡득수 구제창생’의 운이다. ‘목마른 용이 드디어 물을 얻으니 세상에 유익함이 많으리라!’는 쾌여서 매우 희망적인 운세였다. 필자 왈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소식을 올해는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승진에 대한 갈증으로 시달렸는데 올해 해갈되는 운입니다.” 라고 하니 “정말입니까 선생님?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라고 하며 매우 기뻐했다. 후에 L씨의 지인을 통해들으니 필자의 예견대로 그해 L씨는 승진을 했다한다. 드디어 별을 단것이다. 한번 쯤 필자에게 들르지 않을까 했는데 그 후 통 소식이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본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 주로 머물며 사업을 진행 중이라 했다.
표독스러웠던 L씨의 부인 얼굴이 떠오른다. 잡아먹을 듯이 표독스런 표정으로 필자를 매섭게 노려보던 그 살기는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L씨는 출세해서 좋겠지만 L씨의 사모님께서 주위에 위세를 부리며 교만을 떨 생각을 하니 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쪼록 별 탈 없이 하시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서 삼성그룹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서시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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