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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요절한 천재 역술인 김철주

2021.12.28

 





                       요절한 천재 역술인 김철주   


 필자의 도반인 (故)김철주는 어려서부터 동네인근에 천재로 소문난 신동이었다. 경남 진주의 부유한 선주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김군의 아버지는 꽤나 규모가 큰 고기잡이 어선 여러 척을 소유하고 있었고 진주인근에 당시는 흔치않던 놀이공원과 동물원까지 소유하고 있는 부자였다. 아들이 없어 애를 태우던 김군의 가친께서는 나이 60세가 가깝게 얻은 이아들을 금지옥엽으로 키웠다. 이미 과년하여 출가한 여러 누이들이 있었고, 김군보다 나이 많은 조카들까지 있던 상황이었다. 김군의 어머니는 작은댁으로 본가의 어머니 눈치를 많이 보며 지내셨다 한다. 하지만 두 분 어머니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았고 나중에는 한집에서 같이 지내기도 했다 한다. 


이름인 철주의 철은 鐵(쇠 철)이었고, 주는 柱(기둥 주)로서 김군의 가친께서 직접 지으셨는데 ‘쇠기둥처럼 굳게 뿌리박고 굳건하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전에 김군의 형이 출생하였는데 태어난지 열흘도 못 되 돌연히 숨지고 만 일이 있어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이런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한다. 아무튼 김군은 아버님과 두 어머니(본가 큰어머니, 생모) 그리고 누이들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개구쟁이로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부모님들이 걱정하신 것은 머리가 너무 좋은 것 같다는데 있었다. ‘천재는 단명’이라는 속설이 있어 이를 걱정하신 거였다. 김군의 말대로라면 (필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 한바 없으니...) 세 살 때 벌써 한글을 깨우쳤고 천자문을 떼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벌써 영어 알파벳을 익혔고 중학교 영어책을 술술 읽었다하니 사실이라면 천재 중 천재임이 틀림없다. 


이런 우수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기록은 단지 머리가 좋다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기록이다. 그만큼 김군의 가열찬 노력도 있었고 운도 따라 주었다 보아야 한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시험 당일 날 또는 그 직전에 컨디션이 아주 저조하거나 몸이 아프거나 했다면 이런 기록달성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니, 運(운)을 이야기 안할 수 없다. 당연히 고교졸업 후 명문대인 S대에 진학하는데 의외로 미대를 희망했다. 중학시절부터 취미로 미술부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이런 최고의 성적으로 미대를 지원한 것을 주위에서는 이해하지 못했고, 특히나 이제는 아주 연로하신 김군의 아버지가 두 팔 걷고 반대하셨다. 법대에 가서 판검사가 되어 집안의 영광이 되어야한다는 당시로는 상식격인 의당한 바람이셨다. 


허나 김군은 끝내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미대에 진학했다. 고교시절부터 김군이 흠모하던 미학과 출신의 민족시인 김지하 선배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미대 진학이후 얼마안돼 김군의 아버님이 별세하셨다. 김군은 마지막 가시는 아버님의 뜻을 꺾어 마음 아프게 해드린 것을 두고두고 마음 아파했다. 대학졸업 후 군대를 다녀온 뒤 김군은 사회에 진출하는 대신 화실을 차려 화실에 틀어박혔다. 아버님이 남기신 적지 않은 유산덕분에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고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그림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몇 날 며칠을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매달리는 괴벽은 나중에도 계속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자기가 왜 현재까지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사는지가 궁금해졌다고 한다. 인간의 운명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일었고 앞으로의 자신의 운명이 궁금했다 한다. 


김군이 느낀 것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끌려가는 듯 한 자기의 의지력에서 벗어난 무엇인가가 있고 그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한다. 이때부터 김군은 이런저런 철학과 심리학책을 집중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보고 이런 곳 저런 곳을 가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던 중 필자의 스승님과 연이 닿았다. 스승님께 이런저런 말씀을 듣고 나서 오랜 시간 생각한 끝에 스승님께 제자로 받아 줄 것을 간청하여 어렵고도 어렵게 승낙을 받았다. 스승님께서 처음 김군을 제자로 받아들이는 것을 저어한 것은 아마도 김군의 불행을 미리 짚어보셨던데 연유하지 않았나싶다. “이 공부가 쉽지가 않을터인디? 시간이 문제여! 시간이!” 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허나 김군의 천재성을 믿었던지 스승님은 승낙하셨고 김군의 용맹정진이 시작되었다. 워낙 머리가 좋아서인지 남들 3년 해야 할 공부분량을 6개월이나 1년이면 후다닥 쉽게 마스터해서 주위에서 같이 공부하던 도반들의 기를 꺾었다. 


김군의 암기력은 정말 괴물적이라 할만했다. 스승님 밑에서 공부하던 애제자 대부분이 좋은 학벌에 우수한 두뇌를 지닌이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김군의 뛰어난 천재성에는 모두가 머리를 설레설레 저을 정도였다. 예를 들면 300-400 Page 정도하는 책 한권을 보통 3-4일이면 첫 문장부터 마지막 끝 문장까지 거의 토씨하나 안빠지고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김군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이래서 신은 공평하다 했나보다. 뛰어난 암기력에 비해 응용력이 다소 부족했다. 어떤 사안을 두고 응용해서 풀어내는 능력에서는 남보다 뛰어나지 못했고 도반 몇몇에게는 뒤떨어지기 조차했다. 아무튼 역학에 대한 김군의 열정은 뛰어나 남들이 10년 해도 이룰까 말까하는 수준에 2-3년만에 도달해 내는 괴력을 보였다. 요즈음 LA에서 활동중인 괴물투수 류현진의 괴력보다도 더할 정도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김군의 별명이 ‘괴물철주’였다. 스승님도 김군의 비약적 학업성취를 보고 감탄하시곤 했다. 


“철주란 놈! 참! 괴물은 괴물이여!” 이러던 김군이 어느 날 생전 안하던 짓을 한다. 갑자기 아버지 산소에 좀 다녀와야겠다고 하며 수년간 한 번도 찾지 않던 집에 내려간다고 선생님의 허가를 얻어 산을 내려갔다. 그게 끝이었다. 진주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가다 큰 화물트럭에 받쳐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역학계의 큰 손실이었다. 만약 김철주가 공부를 마치고 세상에 나와 선을 보였다면 한국의 역학계의 역사는 김철주 이전시대와 이후시대로 구분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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