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영광, 긴긴 도피생활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나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필자를 찾아와 상담을 하곤 하는 육 선생님은 미국에 온지 20여년 쯤 되는 60대 초반의 남성분이시다. 실내 인테리어 업자를 따라다니며 페인트칠을 하는 것으로 겨우 밥을 먹고 산다. 버는 돈이 충분치 못하니 혼자의 힘으로 방을 얻을 능력이 없어 비슷한 처지의 홀애비나 독신남 몇 명이 모여서 산다. 방1칸짜리 허름한 APT를 얻어 5~6명이 함께 거주하는데 때때로는 군식구가 늘어 10명 가까이가 생활을 할때도 있다한다. 보통 1인당 400불 정도를 방값으로 지불하는데 이마저도 감당 못하는 이가 있어 툭하면 서로 드잡이를 하기도 한다. 방에서 몇 명 거실에 몇 명하는 식으로 들어온 순서대로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해 잠들면 그 자리가 내자리가 되는 식이다.
식사는 1인당 백불 정도씩을 모아 한꺼번에 쌀 중에서도 제일 부피 크고 가격 싼 쌀로 몇 푸대 사다놓고 그때그때 전기밥솥으로 해먹고 반찬은 마켓에서 밑반찬 여러 가지와 김치를 사다놓고 먹는데 김치는 비싸서 매일 먹지는 못하고 주로 그냥 고추장에 밥을 비벼먹거나 간장에 대강 비벼 먹는다. 한 달에 주거비와 식비로 500불 정도면 대충 해결되기에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 돈을 저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대개 하는 일들이 페인트나 플러밍, 잔디깎기, 목수 등등의 일이여서 일을 할 때는 일당이 적지 않지만 매일 일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한 달에 10일~20일 정도 일하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2~3일 정도 밖에 일감이 없어 그 알량한 방값마저 못내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주원인은 이들 대개가 돈만 생기면 노름장이나 술집에 달려가 돈을 탕진하는데 있었다.
노름에 미쳐 가정을 돌보지 않다가 마누라에게 쫓겨난 이나, 알콜 중독이나 마약 중독이 되어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공통적인 점은 한결같이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이 자기책임이 아니라 마누라나 식구들 때문이라는 피해 의식을 지닌 이들 이라는 점이다. 즉 이 모든 것이 ‘내 탓이 아닌 남의 탓’만 하는 사람들이다. 육 선생은 한국에서 어엿한 사장님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런 말이 없었지만 요즈음 흔히 이야기하는 ‘기획부동산’사장이었다. 시골오지의 쓸모없는 땅을 아주 헐값에 사들여 이곳이 곧 개발되어 황금알을 낳는 땅이 될 것처럼 가짜 개발계획도면을 그려 자기 마음대로 주거예정지, 상업예정지 등등의 가짜 도장을 꽝꽝 찍어놓고 텔레마케터 100여명을 고용하여 이를 사기 분양하는 업체를 운영했다.
강남의 요지에 100여 평이 넘는 사무실을 임대하여 으리으리한 호화가구로 삐까 뻔쩍하게 외양을 갖춘 뒤 무작위로 부촌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전화를 걸게 하여 “사모님 좋은 개발정보가 있어 급히 연락했습니다. 어쩌구 저쩌구...” 하며 감언이설로 속여 사무실로 일단 불러낸 뒤 말을 기가 막히게 청산유수로 잘하는 직원들에게 거짓정보를 그럴듯하게 설명하게 하여 계약을 유도하는 수법으로 수십억을 벌었다. 천원에 산 땅을 보통 2만원씩에 팔았다하니 20배 장사였다. 손님이 천만원을 투자한 경우 그 땅의 원가는 50만원에 불과하고 직원에게 손님투자금의 30% 정도인 300만원을 수당으로 지급하고 나면 650만원 정도가 육 선생에게 떨어지지만 워낙 많은 직원이 계약을 해대니 모여지는 돈이 엄청났던 것이라고 했다. 육 선생은 한국에 있을 때 처음에는 노가다 생활을 했다고 한다. 중졸의 학력을 가지고 특별한 기술도 없이 취직자리가 쉽지 않았기에 ‘노가다’라 불리는 건설일용직으로 겨우 밥을 먹고 살았는데 어느 날 신문에서 꽤 그럴듯하게 직원모집 광고가 실린 것을 보게 되었다.
부동산 개발회사에서 직원을 모집하는 광고였는데 학력과 연령무관이며 열정만 지닌 사람이면 된다고 적혀 있었으며 ‘외판직 절대아님 사내근무 사무직임!’ 이라는 문구에 매력을 느껴 찾아가 면접을 보았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의외로 강남요지에 으리으리한 업체였다고 한다. 이곳에 취직하여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손님을 꼬셔내는 매뉴얼을 외우는 교육과 그때그때의 대처사항을 배운 뒤 업무에 투입되었다. 원조기획 부동산이었던 것이다. 당시는 텔레마케터 개념이 아주 생소한 때였는데 부동산 사기꾼들이 발 빠르게 이를 도입한 셈이었다. 이곳에서 운이 좋았는지 꽤나 큰 목돈을 만졌고 이 수법을 터득하여 동료하나와 함께 자신이 직접 이런 업체를 차렸다. 큰돈을 벌었고 호의호식했으나 가슴 한켠에는 늘 불안함이 있었다한다.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사기 질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함을 달래려 매일 밤 강남의 룸싸롱에서 수백만원씩을 뿌려댔다고 한다. 룸싸롱의 VIP였던 것이다 차도 외제 수입차를 타고 다니며 부를 과시했다. 노가다가 갑자기 회장님이 되어 나타나니 주위 사람들이 놀라 눈이 토끼눈이 되는 모습에 희희낙락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처럼 직원 내부에서 이익배분에 문제가 생겨 경찰의 수배를 받게된다. 이리저리 도망을 다니다 외국으로 도망칠 생각을 했으나 이미 출국금지가 내려져 이도저도 못하다 우연히 손이 닿아 많은 돈을 주고 일본으로 밀항할 수 있었고 여기서 또 돈을 써서 어찌어찌하여 멕시코로 넘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에 오게 된 것이다 물론 이 긴 여정에 빼앗긴 돈도 꽤나 많았다. 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던 것이다.
예전에 어이없는 죽음으로 한국에서 시끄러운 화제를 모았던 구원파 교주 유병언도 그리 오래 잡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어렵고 어렵게 건너온 미국에서 사단이 났다. 지니고 온 그 큰돈을 채 한 달이 되기 전에 카지노에서 노름으로 다 날려버린 것이다. 하기사 육 선생에게 사기를 당한 그 많은 피해자들의 원망의 한(恨)이 육 선생이 편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가다로 시작한 사회생활이 이제 모두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죄 짓고는 못사는 법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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