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山蔘)과 효도(孝道)
효도(孝道)는 인간(人間)으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이라 했다. 누구나 이를 알지만 정성을 다해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K여사는 자바시장에서 의류 도매업을 하는 이다. 언젠가 필자와 상담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어머니가 아무래도 망녕이 난 것 같아요. 우리 막내 애 먹이려고 한국에서 비싼 산삼을 구해다 놓았는데 홀랑 그것을 먹어버렸지 뭡니까? 노인네가 얼마나 더 살겠다고 그 귀한 것을 쓱싹한단 말입니까? 쯧쯧쯧!” 시어머니가 자기귀한 새끼에게 먹이려한 산삼을 먹었다고 타박하는 소리였다. 혀까지 차면서 시어머니의 만행(?)을 규탄하는 K씨를 보면서 옛 고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옛적 중국 한나라 사람 곽거(郭巨)는 집이 무척 가난했으나 효성이 지극하였다. 항시 음식이 부족하여 배를 곯는 일이 일상사였다. 곽거가 어렵게어렵게 음식을 구해 와서 어머니께 드리면 어머니는 굶주린 손자가 불쌍해 매번 손자 입에 넣어주고 자신은 아주 조금만 죽지 않을 정도로 먹었다. 이런 어머니보고 곽거는 매번 속상해했다. 곽거도 사람인이상 자기 새끼가 배곯는 모습을 보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효도(孝道)가 우선인지라 어머니께 음식을 드렸던 것이었다. 헌데 매번 어머니가 손자에게 음식을 양보하고는 허약해지시는 어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어 아내와 의논을 한 뒤 자식을 땅에 묻기로 하였다. 애끓는 마음 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한적한 곳을 택하여 자식을 묻기 위해 땅을 석자가량 팠더니 황금 솥 한 개가 나왔다.
놀라서 그 솥을 살펴보니 그 솥 위에 붉은 글씨로 <하늘이 이것을 곽거에게 준다> 라고 쓰여 있었다. 곽거의 지극한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킨 것이다. 곽거는 벼락부자가 되어 더더욱 지극 정성으로 어머니께 효도를 다했다 한다. 이 효자에 대한 고사는 우리나라에까지 전파가 되어 사람들의 표상이 되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세월이 한 참 지난 후 신라 땅에도 있었다. 삼국유사 제 5권에 이런 글이 전한다. 손순(孫順)은 모량리 사람이며 아버지는 학산 이다. 아버지가 죽자 아내와 함께 남의 집에 품을 팔아 양식을 얻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운오였다. 손순에게는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늘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손순은 민망하여 그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구할 수 없소. 그런데 아이가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어서 어머님은 늘 굶주림이 심하시오. 그러니 이 아이를 땅에 묻어서 어머니를 배고프지 않게 모셔야겠소.” 이에 아이를 업고 모량리 서북쪽에 있는 취산북쪽들에 가서 땅을 파다가 이상한 석종을 얻었다.
부부는 놀라고 괴이히 여겨 잠깐 나무위에 걸어놓고 시험 삼아 종을 두드려 보았는데 그 소리가 은은해서 매우 듣기 좋았다. 아내가 말하기를 “이상한 물건을 얻은 것은 필경이 아이의 복 인듯하니 이 아이를 묻어서는 안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손순도 아내의 말을 옳게 여겨 아이와 석종을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을 둘보에 매고 두드렸더니 그 소리가 대궐에까지 들렸다. 법흥왕이 이 소리를 듣고 좌우의 신하에게 말했다. “서쪽들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나는데 맑고도 멀리 들리는 것이 보통 종소리가 아닌듯하니 빨리 가서 조사해보라!” 왕의 사자가 그 집에 가서 조사해보고 그 사실을 자세히 아뢰니 왕이 말했다. “옛날 중국 한나라 사람 곽거가 아들을 땅에 묻으려하자 황금 솥을 주었다더니 이번에는 손순이 아이를 묻으려 하매 땅속에서 석종이 나왔구나! 이는 전세의 효도와 후세의 효도를 천지가 함께 보시는 것이로구나!” 이에 집 한 채를 내리고 해마다 벼 50석을 주어 손순의 순후한 효성을 숭상하였다.
옛 말 에 이런 말이 있다. ‘가문 자기 논에 물들어가는 모습과 제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보기 좋은 모습이다’ 이 말처럼 자기 새끼 입에 좋은 음식이 들어가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왜 그다지도 이것저것 권하며 먹이려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배가 부른데도 자꾸 먹기를 권하면 화를 내기까지 했다. 이제 어른이 되어 새끼들을 키워보니 백번 그 심정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내 새끼가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내가 먹는 것보다 자식에게 먹이는 기쁨이 더 큰 것을 충분히 알고보니 어머니는 부쩍 늙으셔 구순의 노인이 되셨다. 이제야 효도하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세월은 무정히 흘러 노모(老母)는 점점 기력이 쇠하시다. 무정한 세월이다.
화를 내는 K여사에게 필자 왈 “산삼이라 하면 무척이나 귀한 물건인데 어머니가 잡수셨으면 기뻐할 일이지 어찌 그리 화를 내십니까? 물론 허약한 막내아들 먹여서 튼튼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모정이야 내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 아이는 앞으로 살날이 구만리이니 그런 산삼 먹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 테지만, 시어머니의 경우 제가 알기로 구순이 넘으신 분인데 말 그대로 이제 사셔야 얼마나 더 사시겠습니까? 그리고 K여사님 형편이 곤궁하시다면 모르겠으나 아주 넉넉한 살림이신데 그깟(?)산삼이야 또 구해다가 아이먹이면 될 것 아닙니까?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뒤 후회하지 말고 시어머니께 섭섭한 말씀 드리지 마세요. 이왕 드신 산삼 잘 드셨다고 칭찬하시면 점수도 따고 얼마나 좋습니까?” 라고 하니 “선생님은 그 산삼이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건지 알지도 못하시면서 그런 소릴 하세요?” 라고 하며 째려본다.
“그렇게 구하기 어려운 것을 구해서 어찌됐든 어머니 드시게 했으니 효부중의 효부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시고 잊어 버리십시요!” 라고 하니 필자가 자신을 은근히 놀리고 있다고 느꼈는지 펙 하고 토라져 자리를 떠버린다. K여사가 떠나고 난 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필자에게 귀한 산삼이 생긴다면 어찌하게 될까? 몸이 약해 매년 감기에 시달리는 딸내미를 먹여야 할까? 아니면 연로하신 어머니께 드려야할까? 머리로는 당연히 어머니께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약한 딸내미를 먹이는 게 더 기쁠 것 같은 이런 불효막심한 생각은 또 무엇인가? 이래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는가 보다. 필자 또한 불효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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